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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Writes Feb 05. 2020

호주 철물점 혼자 보기 1. 여름

호주 시골에서 3년 

 혼자서 가게를 열고 닫은 지 벌써 3일째. 
무거운 열쇠 꾸러미를 들고 처음 집에 오던 날, 

'과연 내일 문이 잘 열릴까...?', '방법 시스템은 문제없이 잘 꺼질까?' 괜히 마음이 졸여져 잠을 설쳤다.

'내일 저 문이 안 열리면 피터와 바네사는 15시간을 운전해 겨우 도착한 애들레이드에서, 15시간을 다시 운전해 이곳으로 돌아와야 하나?'


 시골 철물점 문이 닫혀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도시가스도 연결돼있지 않은 집이 많은 이 시골에서, LPG 가스를 판매하는 우리 가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가스가 없으면 난방도 조리도 할 수 없다. 멜버른과 시드니의 중간 어디쯤인 이름도 낯선 이곳에서 사람들은 구글 맵에 의지해서 길을 찾는다. 그러다 갑자기 핸드폰이 고장 난다면... 두려움에 떨며 찾는 곳도 이 가게다. 시골의 하드웨어 숍(철물점 + 가전제품 판매) 은 가게 그 이상의 의미다. 


   '처음이라 그렇지... 처음엔 다 걱정 되잖아.' 나이 먹어 좋은 건 처음은 늘 힘들고 그다음은 쉬워진다는 걸 경험상 알게 되는 거다. 
 
 가게 문을 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굳게 잠긴 자물쇠를 벗겨내고 정문 열쇠를 꽂아 돌려 연다. 알람 시스템의 비밀번호를 누르면 오케이. 열아홉 개의 가게의 불 스위치를 모두 켜고 티브이도 켠다.  우선 문 옆에 가까이 놓은 화분 진열대들을 번쩍 들었다, 힘들면 질질 끌어도 봤다 하며 가게 밖에 내놓는다. 발판 진열대도 밖으로 내어 놓으면 반쯤 해결이다. 바퀴가 있는 잔디깎이 기계나 정원용 수레는 복도 양 옆으로 진열된 냉장고, 세탁기에 긁히지 않게 조심해서 밀어나간다. 빗자루를 가져다 복도에 흩어진 꽃 이파리들과 흙과 먼지를 쓸어 담는다. 티브이에서 하는 호주의 아침마당 같은 프로그램을 틀어놓고,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상쾌한 기분이다.


  호주의 작은 시골마을 하드웨어 숍을 나 혼자 지키고 서 있을 날이 있을 거라 상상해 본 적도 없다. 그렇게 인생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호주 시골의 손님들이 몰려오면 계산을 하고 잔돈을 내어 주고, 공구들을 찾아주고, 정원의 거름들도 어떤 것이 필요할지 함께 고민해 주고, LPG 가스도 리필해 주고, 페인트도 조색한다. 열쇠도 물론 깎는다! 내가! 아직 페인트 조색과 열쇠 깎는 건 어렵다. 0.1mm 정도의 눈금의 실수가, 작은 앵글의 변화가 실패/성공을 결정한다. 실패하면 고스란히 폐기한다. 가게에 적자다. 남에게 피해 입히는 걸 극히 싫어하는 나는 혹시 가게에 손해를 입힐까 두 번 세 번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래도 손님에게 불안한 내색은 절대 보이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마치 십 년은 매일 해온 일인 양 자신 있게 'No worries'를 연발한다. 내가 불안해하면 손님은 더 불안한 법이다. 조색된 페인트 색깔이 원하던 색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자신만만한 얼굴로 "Wow, perferct!"라고 먼저 선수를 친다. 옆에서 아리송하던 표정의 고객도 안심한 표정으로 뷰티풀을 외친다. 어차피 페인트 색은 바탕이 뭐냐, 몇 번 칠하냐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빨강이 노랑으로 나온 것만 아니라면... 다 괜찮다.  
 
 시골 사람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호주 사람들은 농담을 좋아한다. 호주의 시골 하드웨어 숍에서 동네 사람들과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7년 만에 처음으로 정원에서 뱀이 나왔다던가. 뱀을 쫓는 초음파 소리를 내는 기둥을 사가는 아줌마에게 아저씨는 '그거 안 들어, 우리 집에서는 아예 그 기둥에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더라니까'라고 겁을 준다. 팔에 깁스를 한 아저씨에게는..."나중에 시멘트 한 봉지 가져갈게, So harden up!(시멘트가 굳듯이 단단해 지라는 뜻)"이라며 엄살떨지 마시라 농을 던진다. 도시에 나가 사는 아이들 얘기, 몇십 년 전 사귀던 애인 얘기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알고 보니 이곳은 집성촌이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친구고 친척이고 친척이었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해야 한다. 


 어느새 하루가 다 갔다. 다섯 시 십오 분 전부터 아침에 내놓은 반대 순서로 물건들을 들여다 놓고, 다섯 시 정각이 되면 정문과 뒷문을 잠그고 열아홉 개의 불을 다 끈다. 컴퓨터 시스템에서 오늘 판매금액 정산을 하고, 아직도 플라스틱 장난감같이 느껴지는 호주 돈을 다 세고, 시스템을 리셋한다. 컴퓨터는 끄지 않는다 밤새 업데이트 가 된다. 경보 시스템을 셋업하고 정문 열쇠를 잠그고 자물쇠를 단단히 채우고, 또 못 미더워 여러 번 흔들어 본다. 어차피 다섯 시면 슈퍼 빼고 모든 가게는 문을 다 닫는다. 여름이라 8시가 돼도 해가 밝다. 집에 돌아와도 한참이나 낮이 남아있다. 특별히 할 것도 갈 곳도 없는 호주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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