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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Writes Feb 05. 2020

매주 목요일은 테니스

호주 시골에서 3년

  매주 목요일마다 테니스를 친다. 높은 고도에 위치해 있어 밤과 낮의 기온 차가 크고 특히 겨울에는 바람이 매섭고 서리가 자주 내리는 우리 마을이다. 바람이 강한 날은 바로 맞은편 집의 커다란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보기도 했다. 이번 주 수요일은 밤새 비가 내렸고 목요일 아침에도 매서운 바람은 그칠 줄 몰랐다. 
 
  No matter what the weather! (날씨야 어떻든 간에) 우리는 테니스를 친다. 여기 레이디들(테니스 모임이 이름이 Ladies Tennis Comp이다. 내가 제일 어릴 걸로 추정되고 도서관 사서 줄리아, 크래프트 샵 주인 셜리, 사십 대 중반에 벌써 손주가 있는 젠, 이 동네에서 함께 나고 자란 육십 줄의 레이디들 수와 케리, 성깔 있지만 나름 마음은 따뜻한 츤데레 제인, 인공 힙 수술과 관절 수술을 걱정하고 있지만 여전히 코트에서 날아다니는 칠십 대의 두 레이디들 아이린과 조이스, 등등 열명 남짓한 마을 여성들이 함께 하는데 여성들, 아줌마들이라고 하기엔 정확한 어감이 전달되지 않아 여기서는 그저 레이디들이라 칭할까 한다.)에게 이런 날씨는 일상적이라 테니스를 취소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물론 이번에 아이들 방학이 시작하면 한 달 정도는 겨울 추위를 피해 잠시 휴식을 가지겠지만... 


  비에 젖어 미끄러운 탄성이 좋은 하드 코트 대신 모래 코트에서의 경기를 한다. 모래 코트에서 경기는 이날이 처음이다.  테니스 공이 튕겨 올라 오르지도 않는 코트에서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매서운 바람 속에서 경기는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경기의 중후반쯤에 눈이 녹은듯한 차가운 비가 내렸는데 어찌나 귀가 시리던지... 하늘에서는 수십 마리의 코카투 떼가 깍 깍 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는데. 사람 목소리 같기도 한 수십 마리의 우는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며 마을을 채웠다. 
 '쟤네가 제대로 좀 하래.'
 '완전 우릴 내려다보고 비웃고 가네' 하며 레이디들이 농담을 한다. 
 바람이 쌩쌩 불어 레이디의 외침이 잘 들리지도 않는다. 공은 바람을 타고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간다. 탄성이 없는 바닥에서 공은 튕겨 오를 생각을 않았고 실수가 이어진다. 아수라장이다. 그 누구의 실력도 제대로 발휘되지 않으니 경기는 평소 때 보다 오히려 접전이다. 시간이 길어진다. 세 경기를 다 뛰고 나니 차가운 바람과 비에 귀와 손은 꽁꽁 얼었지만 심장은 뜨겁다.  Crazy 했지만 빗속에서 맨발로 춤을 췄던 언젠가의 젊은 날이 기억날 정도로 해방감과 무모함,  생동감이 넘친다. 아마 오늘의 테니스는 오랫동안 기억되어 먼 훗날 내가 아이린과 조이스의 나이가 되어도 추억할 거 같다.
 
  벌써 거의 일 년 정도 매주 목요일 테니스를 친다. 테니스 역시 한국에서는 시도해 볼 생각도 관심도 없었다. 한국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회사를 다니며 종종거리며 살았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킨텍스니 광화문이니 행사가 있는 곳에 구경 나가 종종 거리며 다니는 것이 나의 운동이었다. 오랜 컴퓨터 사용으로 뭉친 어깨 근육이나 허리 통증이 못 견딜 정도가 되면 요가를 두세 달 다니다 좀 괜찮아지고 그만 두곤 하는 것, 서른이 넘어서야 배운 자유형으로 가끔씩 수영이나 다니며 '아직 물에는 뜨네 ' 하며 스스로에 감탄하는 게 유일한 나의 운동 경험이다. 나는 운동을 싫어한다.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체력장 3급에 빛나는 하찮은 운동신경을 가졌다. 늘 학교 운동회에서 꼴찌를 도맡아 하는 딸에게 '역시 넌 내 딸이야!'. 하며 위로를 건넬 수밖에 없는... 그런 운동 치였던 내가, 꾸준함의 놀라움을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이곳에 이사 오고 한 삼 개월쯤 지나니 무료함과 답답함이 견딜 수 없이 쌓여갔고 그러던 중 레이디스 테니스 모집 광고를 보고 찾아갔다. 실력은 상관없다고 쓰여 있어 어련히 누가 가르쳐 주겠거니 하곤 그저 라켓 하나 이베이에서 제일 싼 것으로 준비해서 나간 나를 레이디들은 바로 경기에 투입시켰다. 
 '정말 초보인데...? 테니스 채를 어떻게 잡는 줄도 몰라요' 
 '괜찮아 그러면서 배우는 거지 머' 
 그저 공을 주고받으며 재미로 치는 건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세 팀으로 나누어져 팀 간 경기하고 그 점수를 일일이 기록해 그랜드 파이널까지 치르고 있었다. 처음 두어 달 정도는 정말 부끄러워서 도망가고 싶을 정도로 공 한번 제대로 쳐낼 수가 없었다. 나와 함께 치는 팀원에게 미안해서 미안해만 하루에도 수십 번을 외친 거 같다. 경기가 끝나고 악수를 할 때 건네는 '나랑 테니스 쳐줘서 고마워!'라고 하는 인사는 백 퍼센트 진심이었다. 네 번째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내 서브 순서가 되면 손에 땀이 나고 긴장됐다. 제발 사람들이 내 서브 순서를 잊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어이없는 바람을 매번 가질 정도로 나는 형편없었다.  내가 겨냥했던 코트로는 공은 결코 가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목요일 테니스 코트로 그만 나가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정도로 이 호주 시골의 생활은 무료했고, 아는 사람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다. 


  테니스라는 운동 자체를 전혀 몰라 점수를 산정하는 방법도 코트가 왜 그렇게 나누어져 있는지 코트의 어디에 서야 하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역시 그들은 가르쳐 주지 않았고 그저 눈치로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That's okay, Don't stress. You'll get there!'  무한 긍정주의 오지들! 마침 집에 아들이 하던 위 스포츠가 있길래 게임을 하며 점수 산정법이라던지를 배워 나갔다. 
 '어차피 공을 쳐낼 수는 없을 테니 점수 매기기라도 잘해 볼게요 ' 
 '미안해요''미안해요!''미안해요' 내게로 날아오는 공을 쳐내지 못할 때마다, 모든 서브들이 실패할 때마다, 어쩌다 맞받아쳐 낸 공들이 펜스 위로 넘어가 아예 홈런을 날려 버리거나 할 때마다 나는 어쩔 줄 몰라했다. 
 나에게 제인은 '절대 사과하지 마'라며 용기를 줬고
 수잔은 '이번에 우리 팀이 지면 우리 누디런 해야 해!' 하며 윗옷을 들추는 시늉을 하며 웃게 했다. 
 한국에서처럼 누가 내 자세를 지적해 주거나 라켓을 쥐는 법 등을 알려주지도 않고, 백핸드나 스텝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반복적으로 같은 자세를 끝도 없이 연습하는 법도 없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두어 달 지나자 서브가 제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직도 어떻게 딱 그 네모 안에 딱 들어가는지 내가 신기하고 기특하다. 그리고 또 여러 달이 지나자 한두 번 정도는 내게 날아오는 공들을 쳐낼 수 있었고 더 이상 담장을 넘어가는 홈런을 치지도 않았다. 이제 일 년 즈음되었는데 이제는 두세 번 정도는 랠리를 할 수 있고 가끔 내가 서브하는 세트의 포인트를 따내기도 한다. 백핸드는 아직 정말 안되지만. 이 정도를 꾸준함의 놀라움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운동 효과 외에 목요일 테니스를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는 레이디들의 수다가 너무 재미있어서다. 아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 모르는 것 빼고는 속속들이 다 아는 수잔과 케리의 육십 년째 이어지는 신경전. 둘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을 부드럽게 쳐 주지만 서로가 상대로 맞붙을 때는 인정사정없다. 공을 상대에게 쳐 보낼 때마다 
 '너 정말 죽었어'
 '칠 수나 있으면 쳐봐, 그  파보니 라켓 들 힘도 없겠네'
 '너 요새도 바지에 오줌 싸냐'
 '가서 소떼나 지켜... 오늘은 들판에서 별 보며 자나?' (요즘 케리는 풀밭을 찾아 소떼를 데리고 근방을 이동을 하고 있다.) 짓궂은 농담을 던져 가며 강 스매시를 날리는 둘의 모습은 너무 귀엽다.
 또 칠십 중반에 요새 무릎과 힙, 발목 등이 성치 않아 진통제를 먹지 않고는 견디기 힘들어하는 아이린과 조이스는 평소에는 걸어 다니는 걸 봐도 도와주고 싶을 정도의 하얀 머리의 호호 할머니 들지만. 거의 육칠십 년이 되는 구력을 뽐내듯 테니스 공을 쫓을 때는 그 절반 즈음 나이를 먹은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빠르다. 그들이 백핸드로 공을 쳐내며 긴 랠리를 할 때는 그저 걸 크러시다. 병원에서는 이제 테니스 같은 과격한 운동은 그만하시라 하지만 둘의 생각은 확고하다. '우리가 매주 한번 이렇게 테니스라도 치니까 이렇게 다니는 거지. 그만두고 집에서 가만히 죽을 날만 기다리기는 싫어'
 그리고 자타 공인 마을의 빅마우스/배드마우스 젠과 제인. 속마음을 숨기지 못해 가끔 말썽을 만들기도 하지만, 앞에서는 아름다운 말과 친절함으로 포장하고 뒤에서는 험담과 시기 질투가 난무하는 모습들의 오지의 모습에 간간이 놀라다 보니, 속이 다 들여다 보이는 그들은 오히려 순수하게 보인다. 그리고 짓궂은 농담들이 얼마나 웃기는지.
 '렛츠 스매시 잇!"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하는 젠과 함께 하는 세트는 늘 웃음이 넘친다. 
 젠이 내 실수를 짓궂게 놀리면 ' Don't pick on my girl' 이라며 감싸주는 셜리. 누구든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Darling, Love, Mate' 하며 불러 주는 너무 과하게 다정스러운 호주식 호칭은 어린아이라면 모를까 서른 넘은 아줌마에게는 아직도 쉽게 적응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감사히, 따듯하게 받는다. 아직도 어설프기 짝이 없는 실력이지만 매주 목요일이면 테니스 코트로 나서는 내가 참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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