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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Writes Feb 07. 2020

RIP JONO (호주 장례식)

호주 시골에서 3년 

 미스틴, 로렐라이, 브린을 학교에서 만나 함께 집으로 걸어온다. 달이가 약 8개월 전 다른 학교를 옮긴 후 처음으로 우리 집으로 온다. 색종이도 접고 김밥도 만들고 당구도 치고 닭도 쫓고. 이런저런 추억을 만들며 일 년이 넘는 시간을 월요일마다 함께 해 왔던 아이들. 8개월 만에 함께 오는 길. 아이들이 내 품에 안기는 포근함이, 즐겁게 재잘대는 밝은 목소리가, 책가방이 엉덩이 위에서 흔들리며 신나게 걸어가는 발걸음이 심장 한편에 와서 박힌다.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초록 잔디가 눈부시다. 따뜻한 햇살과 바람에 George Ezra의 Shotgun 이 타고 온다. 


I'll be riding shotgun underneath the hot sun. Feeling like a someone. 


방학을 맞아 1년 만에 한국을 방문했다. 친구들과 만남. 나와 생일인 하루 차이인 친구와 동반 생일 파티. 아이가 된 듯 기분이 좋다. 마흔에 파자마 입고 케이크도 자르고 친구들이랑 노래하고... 아이 둘 키운다고 내 생일은 있느냐 마느냐 넘어가기 일쑤였다. 아이들 생일 파티나 해줘 봤지 내 생일이라 한들 케이크 함께 자르고 노래 하나 부르는 걸로 대신한 지 오래다. 한껏 들뜬 마음으로 생일을 맞았다. 그래! 이번 생일은 나만을 위해 즐겁게 보내리라. 

생일날 아침 친구들 축하 인사가 메신저로 쏟아진다. '기분 좋은 하루야.'

그러다 한 메시지에서 눈길이 멈춘다.

'생일 축하해. 그런데... 조노가 죽었어. 34살. 심장 마 비래.'

믿을 수 없는 소식. 생일에 건네는 짓궂은 농담이라 치기엔 고약하다. 


사흘쯤 후 그의 부인 칼리가 페이스북에 사망 소식을 알렸다. 그는 공식적으로 사망했다.


  한국에서 호주로 돌아온 지 일주일 후 그의 장례식이 열렸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그의 장례식은 사망 후 이주나 지나서야 치러졌고 덕분에 그의 떠나는 길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유쾌했던 그의 성격에 맞게 가족들은 Funeral 대신 Celebration이라는 단어를 택했다. Celebration of His life. 


  호주에서 장례식은 처음이다. 시골마을의 작은 성당에서 열렸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초록 들판이 눈부시다. 성당 마당에 검은 운구차가 서있다. 2미터에 가까운 큰 키의 그가 저기에 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활달한 성격에 농담을 좋아했던 대머리 요리사 조노. 페이스북, 마을 활동 등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던 그답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 이미 성당 안의 자리가 찼고, 나무 그늘 밑에 주욱 늘어선 의자에도 빈자리는 없다. 작은 마을의 작은 성당 앞 도로에 조문객들의 차가 끝을 알 수 없게 늘어서 있다. 방명록에 이름을 쓰고 작은 팸플릿을 받는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그의 사진들과 사랑스러운 세 아이, 부인. 아름다운 가족사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추모사는 세 명의 친구들이 준비했다. 갑작스럽고 빨리 떠난 허망함과 안타까움으로 흐느끼던 첫 번째 친구. 그와 함께 한 짓궂은 장난들로 웃고 웃던 두 번째 친구. 함께 주방에서 일하며 프로페셔널했던 그에 대해 기억 한 세 번째 친구. 죽기 하루 전날에도 페이스북에 가족들에 대한 포스팅을 하며 FAMBAM! 을 외치던 그가 다음날 심장이 멈춰 버렸다는 현실이 오히려 비현실적이다. 여러 달에 거친 리노베이션을 막 마친 근사한 집을 두고, 새 학년이 될 때마다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설 때마다, 코스튬을 입을 때마다, 상을 받을 때마다 사진을 올리며 자랑스러워하던 세 아이를 두고, 십 년이 넘는 결혼 생활에도 chicken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숨기지 않던 그의 부인을 두고 한 달 전 막 34살이 된 그의 심장은 멈춰 버렸다. 친구들의 추도사를 들으며 울다 웃다 하다 보니 A Millions Dream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달이의 생일날 친구들과 함께 본 The Greatest Showman에 나온 음악이다. 그때 미스틴과 함께 이 노래를 여러 번 돌려 보며 불렀지. 미스틴은 무용을 좋아한다. 일주일에 나흘 동안 무용 수업을 받는다. 우리 작은 마을에서는 일주일 중 하루만 수업이 있어 사흘은 왕복 두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 아빠와 함께 수업에 가곤 했다. 차 안에서 잠든 그녀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포스팅하며 응원했던 아빠다. '앞으로 너와 함께 할 많은 여정을 함께 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그의 여정은 그렇게 멈춰 버렸지만 미스틴은 계속 앞으로 나가길 하늘에서도 응원할 거야. 칼리와 아이들은 그렇게 이 음악을 선택했을까. 친구들의 추도사에 이어 가족들의 추도사가 이어진다. 세 아이도 아빠를 보내며 짧은 카드를 썼다. '페이스북을 좋아했지만 아빠는 항상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최고의 아빠예요. 사랑해요.' 신의 가호를 비는 신부님의 추도사를 마지막으로 SHOTGUN 이 흐르며 그가 누워 있을 거 같지 않은 작은 관이 성당 문을 나온다. 익살맞은 표정을 지은 그가 짧은 바지를 입고 한 손에 맥주를 들고 야영용 의자에 앉아 들려 나오는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 이리라. 


Homegrown alligator, see you later.

Gotta hit the road, gotta hit the road. 

The sun changed in the atmosphere. 

Architecture unfamiliar. 

I can get used to this. 


조노를 뒤따라 나오는 칼리와 세 아이들 얼굴이 눈에 띄자마자 눈물이 끝도 없이 쏟아진다. 그의 가족들을 한 명씩 힘껏 안아 주고 까만 운구차와 함께 보낸다. 마침 하얀 구름에 쨍하니 푸른 하늘에 초록 벌판에 쏟아 내리는 햇살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이다. 하늘로 가는 소풍이던, 조수석에 앉아 떠나는 여행이던. 떠나기 좋은 날이다. 그래 조노 떠날 시간이야. 우리는 익숙해질 거야. 당신이 없는 시간들도.


  그렇게 호주에서 처음 참석한 장례식. 내 장례식도 이런 장례식이라면 좋겠다. 삼일 밤낮으로 의무감으로 온 사람들이 허망하게 울다 국밥 한 그릇 뜨고 겸연쩍게 일어나는 그런 장례식보다 그저 한두 시간 온전히 나를 추억하며 웃다 울다 가볍게 안녕할 수 있는. 이런 장례식이라면 가볍게 떠날 수 있겠다. 


  약 두 시간가량 이어진 장례식. 더운 여름 한낮에 태양을 받으며 웃고 울다 보니 정신이 멍하다.  개인적으로 그리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죽음이 이리 마음이 아프다니... 칼리는 내가 이 마을로 이사와 가장 처음 만난 사람이다. 작고 오래된 마을일수록 낯선 사람은 그 촘촘한 그물을 뚫고 들어가기 쉽지 않다. '작고 낯선 이곳에서 우리는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내게 칼리는 '괜찮을 거야. 걱정 마 '하며 웃었다. 까르르 웃는 그녀의 웃음소리에 마음이 밝아졌다. 아이들이 학교를 시작하고 달이의 반에 칼리와 조노의 큰 딸 미스틴이 있었다. 그렇게 미스틴 로렐라이 브린은 월요일마다 우리 집에 오기 시작했다. 세 아이는 집안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게 더 익숙한 우리 두 아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주었다. 아이들은 함께 넷볼을 하고 뒤뜰의 나무에 올라가고 닭을 잡고 놀았다. 세 아이들이 오기 전까지 두 아이들은 뒤뜰을 무서워했다. 이 마을엔 뱀이 나온데. 낯선 시골마을에 이사 온 두 아파트 촌놈들은 맨발로 풀밭을 뛰어다니는 호주 촌놈들과 함께라서야 자기네 집의 뒤뜰로도 겨우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세 아이들을 위해 보드게임도 하고 종이접기도 하고 한국 음식도 만들었다. 우리에겐 별거 아닌 것에 세 아이들은 신기해하고 신나 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그렇게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월요일마다 아이들은 추억을 만들었다. 그러다 조금이나마 나은 교육 기회를 주기 위해 달이를 마을의 사립학교를 전학시켰다. 달이는 새 학교에 적응하느라 미스틴은 주 4일 댄스 수업이 바빠져 자연스럽게 월요일의 데이트는 중단됐다. 


 그렇게 중단됐던 월요일의 만남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갑자기 아빠가 없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일곱 살 열 살 열한 살짜리들에게 얼마나 힘든 일일지 상상도 할 수 없다. 네 배쯤 오래 산 나도 겪은 적이 없는 것을 불공평하게도 이 아이들은 겪어버렸다. 위로할 어떤 지혜로운 말도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아이들이 한 번 더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밖에는. 아빠가 없어진 커다란 구멍을 작은 추억으로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다면. 그저 기쁠 것 같다. 이번 주 월요일에 아이들은 밀가루 반죽을 만들며 놀았다. 요즘 유행하는 슬라임을 만들려 했으나 우리 동네에서는 용도에 맞는 풀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밀가루에 동량의 물과 기타 재료를 섞고 불에 끓여 부풀어 오른 반죽에 색소를 조금씩 섞는다. 밀가루 반죽을 치대는 손짓이 분주하다. 꼭 아기 엉덩이같이 부드러워. 와 색이 너무 이쁘다. 이 반죽이 내는 소리가 너무 좋아. 바쁘게 손을 놀려대며 아이들은 끝도 없이 재잘대며 웃는다. 


Time flies by in the yellow and green.

Stick around and you'll see what I mean

There's a mountaintop that I'm dreaming of 

If you need me you know were I'll be


한동안 세 아이를 만날 때마다 SHOTGUN이라는 노래가 머릿속에 울려 퍼질 것이다.

그리고 이 유명한 노래를 어디에선가 듣게 될 때마다 나는 조노와 칼리 이 세 아이들을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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