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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Writes Feb 08. 2020

농사는 타이밍. 텃밭 가꾸기

호주 시골에서 3년 


 시골에 오면 최소한 매끼 신선한 야채와 과일은 실컷 먹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마을에 하나 있는 슈퍼의 야채, 과일들은 가격은 캔버라에 비해 2배 가까이 비싸면서 늘 시들시들 형편없었다. 게다가 종류도 양상추, 버섯 등 몇 가지에 한정되었다.  한국처럼 좌판에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없었다. 어느 봄날 뒤뜰에 가득 핀 민들레를 보고 얼마나 고들빼기 김치가 먹고 싶었던지. 호주에서 민들레는 농약을 뿌렸을지 모르니 먹으면 안 된다던데… 그걸 못 참고 싱싱한 이파리를 잔뜩 뜯어다가 소금물에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더니 좀 살 것 같았다. 초록 잔디가 가득한 뒷 뜰을 보며 결심했다. 

‘농사를 지어야겠어. ‘

그저 신선한 야채를 실컷 먹고 싶어 농사를 짓기로 결심했다. 


 나름 문학소녀였던 학창 시절, 소로우의 <월든>과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을  읽으며 자급자족의 소박한 삶을 꿈꾼 적이 있다. 아이 둘을 낳아 키우며 일하며 일상을 살아 내느라, 서랍 깊이 넣어 뒀던 전원생활의 꿈을 지금 반강제로 하게 된 게 아닌가! 한국의 쳇바퀴 도는 사는 삶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 번쯤은 내 손으로 농사를 지어 한 바구니 가득 고추며 상추, 깻잎을 따서 채워, 쌈장에 찍어 먹고 싶었다.


 우선, 집주인에게 연락해 뒷 뜰에 밭을 만들어도 되는지 허락을 먼저 받았다. 그녀는 텃밭으로 바꿔도 좋은 곳을 알려 주었다. 식물이 뿌리를 내리려면 흙이 부드러워야 한다. 발로 쾅쾅 삽을 눌러 박으면 삽이 꽉 땅에 박혀 뒤집히 지 않을 정도로 딱딱했다. 욕심을 버리고 조금씩 퍼서 뒤집어 놓으면 뒤집힌 흙 안에는 돌 투성이었다. 옆집에서 갈퀴(rake)를 빌려와 윗면을 살살 긁어내어 큰 돌을 걸러 내고, 또 뒤집기를 한참이나 한 후에야 어느 정도 땅이 골라졌다. 가게에서 모종을 종류 별로 사 와 매일매일 물을 주며 기다렸다. 이번에는 서리가 문제였다. 내가 사는 이 시골마을은 호주에선 나름 지대가 높고 눈까지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봄에도 아침이면 서리가 내렸다, 그러면서 낮의 햇볕은 뜨거웠다. 모종들은 추위와 더위 사이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이파리가 까맣게 말라 가며 죽어 버렸다. 이번에도 모종을 한 트레이나 사 와서 이번에는 frost cloth라고 부르는 하얀 부직포로 덮어 뒀더니 다행히, 잘 자랐다. 애를 먹이던 오이는 한번 뿌리를 깊게 내리고 덩굴을 뻗어 나가기 시작하자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토마토, 호박도 얼마나 잘 자라던지, 몇몇 가지에 에너지를 집중해 주기 위해 자주 가지치기를 해줘야 했다. 가게에서 나무 버팀목을 사다가 오이, 토마토의 줄기를 묵어 뒀더니 줄기가 점점 굵어져 갔다. 가끔씩 주는 물과 약간의 비료만으로도 작물들은 잘 자라서 아이들은 밭에 가서 오이와 토마토를 따먹으며 신기해했다. 

'우리가 키운 거야!' 첫 해에는 들인 노력에 비해 나름 소득이 좋았다. 


 시골에서도 집 계약이 일 년 후 끝나, 마을 안에서 이사를 해야 했다. 이번에 우리가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닭을 키울 수 있는 곳이었다. 강아지 한 마리만 키우면 안 돼? 고양이 한 마리만 키우면 안 돼? 하면서 애완동물 노래를 부르던 달이와 병아리를 키우기로 합의를 봤다. 애완동물이 키우고 싶던 달이와 신선한 달걀이 먹고 싶었던 나, 나쁘지 않은 합의였다. 추운 겨울날, 생후 3일 된 병아리 두 마리를 집에 데려왔다. 솜털을 벗고 깃털로 갈아입는데 약 6주가 걸린다. 그동안 24시간 인공 램프 아래에서 따뜻하게 키운다. 삐약 삐약 거리며 노는 모습이 꽤나 귀엽다. 긴 겨울밤 한참이나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물 한 모금 부리에 머물고 하늘로 고개를 젖혀 마시는 모습. 화롯불을 피우면 가까이로 와 새근새근 잠자던 모습. 그리고 먹이를 주면 넉넉히 줘도 서로 꼭 뺏고 뺏기며 술래잡기하듯 안달을 내던 모습이 너무 우스워 한참이나 아이들과 웃었다. 한데, 덩치가 커 갈수록 냄새가 심해져 집 문을 열면 닭똥냄새가 견디기가 힘들어졌다. 마침 페이스북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 광고가 나왔고, 달이와 집 구경을 간 우리는 여기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넓은 뒷마당에 멋진 닭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집 안에서 닭똥 냄새를 맡기 않아도 된다! 지금 사는 집 앞 정원에 아름다운 꽃이 잔뜩 있는지는 이사 와서도 한참이나 몰랐다. 이사 올 때 당시 날씨가 추워서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이사를 하고 봄이 되자 이번에는 더 큰 텃밭을 가꿨다. 60년이 넘게 이 집에서 살다가 한 달 전쯤 요양원으로 옮긴 그웬 할머니와 아들 내외는 내가 닭을 키우고 텃밭을 일군다고 했다니 너무 좋아하셨다. 오랫동안 정든 집이 활기 있는 모습으로 유지되어 기쁘다고 하셨다. 이번에는 욕심을 더 부려 가지, 양파, 당근, 샐러리 등 가게에서 구할 수 있는 모종을 다 사서 심었다. 식물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궁금했다. 보라색 가지 꽃이 그렇게 이쁜지, 양배추가 속에서부터 차 오르는 게 얼마나 신기한지... 경이로웠다. 그런데, 비가 잘 오지 않았다. 2018년은 호주에서 드물게 가물었던 해라며 신문과 티브이에서 가뭄에 대해서 우려하는 기사가 쏟아 나왔다. 어찌나 건조하고 땅이 메마른지 아침저녁으로 흠뻑 수돗물을 줘야 했다. 비료도 더 주고 열심히 가꿨지만, 저번 집에서 보다 수확은 별로 좋지가 않았다. 그래도 이제는 다섯 마리로 늘어난 닭들이 매일 낳아주는 달걀과 함께, 토마토, 오이, 상추, 고추를 원할 때 신선하게 따 쓸 수 있었다.

‘별이야, 밭에 나가서 파 두 줄기, 호박 하나, 고추 두 개만 따와! 된장찌개 끓여 줄게!’

호주의 시골마을에서 호박 넣은 된장찌개를 바글바글 끓여 우리 닭이 낳은 달걀로 계란 프라이를 해서 차린 소박한 식탁은 어떤 진수성찬보다 만족스러웠다. 

그웬 할머니가 원래 키우던 다년생 식물인 루밥은 스스로 자랐다. 슈퍼에 가면 꽤 비쌋는데, 공짜로 원하는 만큼 실컷 따다 쓸 수 있었다. 빨간 루밥 줄기를 잘게 잘라 동량의 설탕을 넣고 졸이면 새콤달콤 루밥잼이 되었다. 그걸 플레인 요구르트나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먹으면 호주의 여름 맛이 났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 닭수리 오 형제가 일주일 만에 목숨을 잃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 매일매일 한 마리에 하나씩 다섯 개의 달걀을 선물해 주던 귀한 닭이었다. 시드니로 휴가를 간 바네사와 피터를 대신해 일주일 동안 혼자 가게를 보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뒤뜰에서 트램폴린을 뛰고 놀던 아이들이 뛰어온다. 

'엄마 블루베리(파란 알을 낳는 닭에게 지어준 이름)가 죽었어'

장난이라 생각하고 반장 난으로 대답했다. 

'왜 죽어? 너희가 먹었냐?'

'아니 엄마, 목이 없어졌어'

'뭐? 누가 잡아먹었음 다 먹었겠지. 왜 목만 잘라갔다니?'

누구 하나 알 길이 없다. 

오랜만에 볕이 좋아 마당에 풀어놨더니 이 사달이 났나 싶어 남아있는 세 마리를 닭장에 몰아넣고 단단히 잠가둔다. 차마 죽어있는 닭은 무서워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사흘에 거쳐 닭은 하나씩 둘씩 목만 잘라서 죽었고 결국엔 한 마리도 남지 않았다.


  늘 닭 다섯 마리가 토마토, 애호박을 뜯어먹으며 뛰어놀던 우리 뒷 정원은, 초록 잔디만 무성하게 되었다. 올봄에 마지막으로 농사를 한번 더 지어 볼까 했지만, 크리스마스에 시드니 방문 계획도 있고, 이사 준비와 아이들 전학 문제로 바쁠 일이 많아 관리를 못할 것 같아 포기했다. 그러던 중 올여름 최악의 가뭄과 산불이 호주를 덮쳤다. 크리스마스를 즈음해 마을 주위를 둘러싼 산불은 두 달이 넘어도 꺼질 줄 모르고 아직도 진행 중이다. 언제 불길이 마을을 덮칠지 몰라 대피 가방을 싸고, 대기를 한 날도 여러 날. 정원을 가꿀 정신이 없었다. 100년 만의 최악의 가뭄으로 강바닥이 보일 정도로 수량이 줄어 정원에 물을 주는 것도 금지될 정도로 물을 절약해야 한다. 올해 농사를 시도했다면 처절한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수고와 날씨의 도움이 필요했다. 비가 충분히 와야 하고, 서리를 피해야 한다. 적당한 햇빛이 필요하다. 날씨의 변화에 따라 일주일 후에 심었으면 잘 자랐을 오이가 서리를 맞아 죽어버려 새로운 모종을 몇 번이나 사 와야 했다. 하지만 날씨는 예측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미루지 않고 마을로 이사와 바로 텃밭을 가꾼 것도 좋은 타이밍이었다. 올해 처음으로 농사를 시도했다면 수확의 기쁨은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은 타이밍인 것처럼 농사는 타이밍이었다.  



호주 시골에서 가꾼 텃밭
애완 병아리. 오렌지와 레몬이라고 이름을 지어줬다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준 귀여운 병아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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