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서 오히려 뚜렷하게 영원해진 것들
원래 소설책을 잘 읽지 않았다.
소설을 통해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의 삶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게 되기도 하지만, 나는 소설이 무서웠다. 내가 오랜 시간 공들여 고치고자 하는 모습들이 소설 속에서는 보다 쉽게 표현이 되는 것 같아서, 그걸 보고 '오, 나도 할 수 있겠다.'라는 가벼운 마음가짐과 함께 가볍게 도전했다가 '뭐야, 안바뀌잖아.'로 나의 생각이 굳혀질까봐.
사실 그냥 나의 마음가짐이 쉽게 꺾어질까봐. 스스로를 너무 믿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멈춰버릴까봐 무서운 것들이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이유들과 더 많은 다양한 이유들로 무서웠던 게 맞는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접하게 된 소설책.
한번은 그냥 넘어갔다. 구매하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읽어보자란 생각과 한 출판사의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책을 구매하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사라진 것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아래 두 글이 그냥 마음에 남았다.
� 히메나 자신이 무엇을 얻었는지는 정말로 모르겠다. 우리가 함께한 그 시간에서. 자신의 아파트에서 보낸 그 길고 나른한 날들에서. 어쩌면 딴생각을 하게 해줄 누군가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거실에 타인의 몸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았는지 모른다. 나는 너무도 오래 칼리와 함께 지냈기에 가끔 잊고는 했다. 독신일 때는 그것만으로도, 같은 공간에 누군가가, 타인의 몸이, 얘기를나눌 다른 인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p288~289)
� 내 나이 사람들은 그 시절을, 1990년대 초반의 오스틴을 향수에 젖어 떠올리기 좋아한다. 마치 1920년대의 파리나 1960년대이 버클리를 얘기할 때처럼. 하지만 때로는 정말로 그런 곳들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 당시에도 우리는 우리가 매우 특별한 곳에서, 이 지역 역사의 매우 특별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는, 그리고 그 시기가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당연히 그 시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p310)
가족들과 같이 살면서 매일 부대끼지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느낄 때가 가장 최근에 있었다. 나에게 삶의 의미도 사라지면서 어떤 일에서도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는 몰랐다. 그냥 옆에서 '힘을 내야 해.', '넌 할 수 있어.', '응원해.'와 같은 말들이 그냥 하는 말 같았고, 와닿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다행이도 어느 순간, 문득 머릿속으로 그런 말이 들려왔던 것 같다.
'그냥 너라서 좋아해.'라는 말.
그리고 '언제나 응원해, 힘들 때 언제든 나에게로 와. 꽉 안아줄게.'
가족뿐만이 아니라 지인들에게서 가끔 전해받는 응원들. 이게 나의 가슴에 콱 닿았던 때가 있다.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손으로 어루어만져주는 느낌이 들었던 때가.
그 덕에 힘을 내서 운동도 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어떤 일에 웃기도 시작했고, 조금씩 한달 두달 세달 시간이 지나면서 해보고 싶은 것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웃지도 못하고, 어느 것도 하기 싫었던 시절을 넘어서서 벚꽃을 보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닫기 시작한 순간.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 감정은 나만 알 수 있는 감정이겠지만, 나는 이 감정을 평생 가지고 감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내가 벌써 이런 걸 느끼는 시기가 왔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하면서도, 내 모습들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준, 시간이 지나면 마냥 행복해지고 안정적일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서도 그 시간 속에서 방황하는 내가 있을 수 있음을 암시함과 동시에 그것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영원할 수 있는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건 내 가슴 속에선 영원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까먹고 잊어버려도 누군가가 내민 손, 아니 이 시간을 지내온 것을 언제든지 떠올릴 수만 있다면 나는 영원히 감사하며 열심히 살고자 노력할 수 있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내 주변에 계셔주셔서 나를 놓지 않고 끝까지 붙잡고 따스하게 안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사람들아, 덕분에 내가 더 용기있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