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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Dec 12. 2023

튀르키예(터키) 역사, 조금만 알아볼까?

터키 민족 2천년 사

   2002 월드컵에서 우리는 터키를 응원했다. 언론에서 터키는 우리와 형제의 나라라고 한다. 터키는 한국전쟁에 병력을 파견해 우리를 도왔다. 왜 우리를 도왔던 것일까? 이슬람 국가이지만 아랍어를 쓰지 않는 까닭은? 혹은 터키어를 쓰면서 이슬람교를 믿는 까닭은? 아랍어와 이슬람교가 조합이 맞는데 터키는 왜 다른가? 등 몇 가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와 같은 역사와 위상과 비교하면 교과서를 통해 배운 것은 셀주크 투르크라는 이름과 오스만제국이 쇠퇴하던 시기 그 원인과 탄지마트뿐이다. 고대사에 등장하는 훈족, 돌궐, 위구르와 터키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기저기 등장하는 조각을 맞추어 이해하는 패치워크 수준이다. 다행히 이 책으로 투르크(터키)의 역사를 고대부터 현재까지 살펴볼 수 있다. 2023년 튀르키예(Türkiye)로 국명을 바꿨다.


투르크족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것은 세계사의 방향을 바꾼 기념비적 사건이다. 

투르크의 역사는 이슬람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이슬람 이전은 흉노(훈족), 돌궐, 위구르, 투르키스, 키르기스, 카를룩, 오구즈 등의 나라들이 알타이-텐샨 산맥 부근, 카자흐스탄, 하레즘 지역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며 부족연맹체를 형성했거나 나라를 만들어 왔다.     

중세 초기 동유럽에서 투르크 국가들이 흥망을 반복한다. 아틸라가 통치하던 서부 훈 제국, 아바르 칸국, 사바르족, 하자르 칸국, 페체네그 족, 킵챠크족, 우구르족과 불가리아 등이 흥망을 경험한 부족과 나라다     


747년 탈라스 전투는 제지법이 중국에서 아랍지역으로 전파된 계기로만 알고 있었으나 실체는 다음과 같다.


“트란속시아나(아랄해 남부 초원지역)에서 투르크족과 아랍군 간의 전투가 치러지던 과정에서 일부 투르크족이 당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중국은 투르크메니스탄(중앙아시아)을 장악할 절호의 기회로 보고 747년 대군을 서역으로 파견했다. 그러나 중국군(당나라 군대)은 이곳에 들어와 포악한 행동을 일삼았기 때문에 투르크 족은 그들과 결별하기로 마음먹고 이슬람 제국의 호라산 총독에게 중국군을 물리칠 군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이슬람군의 지원을 받은 투르크족은 오늘날 알마티로 불리는 탈라스 강변 일대에서 751년 7월 중국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중국군은 궤멸적인 패배를 당했다.”


   오스만제국은 1299년부터 1922년까지 존속했는데, 초기 오스만 공국은 후계자들에게 영토를 분배하는 투르크족 국가들의 오랜 관습을 버렸다. 이 결정이 오스만 공국이 한 세기 만에 투르크 족이나 이슬람 역사, 나아가 세계사에서도 위대한 제국이 될 수 있었던 주요한 원인이 됐다.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내 기독교 비잔티움 영토 대부분을 장악하고 일한국을 몰아내고 제국으로 탈바꿈한 때는 1377년이다. 이후 발칸으로 진출(비무슬림에게 생명, 재산, 종교의 자유 보장)했을 때 봉건 영주들의 정치, 종교적 박해에 시달리던 토착민들의 충성을 유도할 수 있었다. 술탄 무라드 1세는 기병대와 예니체리를 운영하였고, 술탄 마흐메드 2세는 중앙집권 국가를 완성하였으며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켰다.    

 

   러투전쟁(1768~1774) 이후 카이나자르(불가리아의 도시 이름) 조약으로 드네프르강에서 남쪽 남 부크 강(지도 참고)으로 밀려나 우크라이나와 크림반도를 상실한다. 흑해에서의 영향력이 위축되는 오스만제국 쇠퇴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왜 1차 대전에서 오스만제국은 독일과 동맹을 맺었는가?  정말 궁금하다. 자료를 보니 당시 통합진보당 지휘부는 독일이 오스만 영토에 지나친 관심을 두고 있다고 보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자 하였으나 거절당한다. 오스만 정부는 연합국(영, 프, 러)이 이미 오스만제국을 나누려 합의하고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독일과 동맹을 맺게 된다. 동맹국이 연합국에 의한 오스만제국 분할을 막아 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안타깝네)


   오스만을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독일의 계획에 따라 독일은 오스만의 허락 없이 오스만에 판매한 선박으로 러시아를 공격한다.     

   

   아르메니아(기독교[오리엔트 정교회] 국가)와 아제르바이잔(이슬람 국가)의 갈등을 지켜보며 터키의 영향력을 본다. 터키는 시아파인 아제르바이잔을 지원한다. 과거에는 오스만과 아르메니아인들이 오스만 영토 내에서 종교가 달라도 평화롭게 살아왔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서로 증오하게 되는 역사를 만들게 됐다.     


   갈리폴리전투(다르다넬스 전투)는 오스만제국이 조국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열정으로 치른 전쟁이다. 연합국의 시각에서 여러 편의 영화로 나왔다.     

   1920년대의 투르크의 상황은 구한말 우리의 처지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외세는 오스만을 나누려 기도하고, 아르메니아와 같은 비투르크 민족들은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있었으니…….  1923년 10월 29일 대 민족의회(CNA)가 터키 공화국 수립을 선언했다. 세속주의, 국가주의,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이슬람이 공식국교’라는 조항을 헌법에서 삭제했다. 이후 2차 대전에서 중립을 지키려 노력했고,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 유럽공동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외교정책을 구사했다. 정치적으로 다당제를 실현하고 냉전 시기에 서구와의 관계 강화를 위해 노력하였는데, 터키가 한국전쟁에 참여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P.S 예니체리 : 오스만제국의 보병 군단의 이름으로 황제의 직속 친위대 역할을 하는 정예 상비군단으로 14세기에 처음 조직되어 1826년에 마무드 2세가 해산할 때까지 존재하였다. 예니체리는 튀르크어 '예니센'에서 유래한 말로 "새로운 병사"라는 뜻이다. 예니체리에 속해 있었던 군악대인 메흐테르는 세계 최초의 군악대라고 한다. (나무위키에서)    


군악대 연주

https://youtu.be/ZXZMIC-Z-XA        

       


『터키 민족 2천년사』는 쉴레이만 세이디가 짓고 곽영완이 옮겨 애플미디어에서 2012년 9월 초판을 본문 258쪽으로 출간.

2015년 5월 16일 오전 9:38 쓴 글을 수정 보완함.   


브리지 오브 이슬람

https://brunch.co.kr/@grhill/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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