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그림 그리기는 미술도구를 갖추지 못한 데다 재능도 없어 그 흔한 교내 가작도 받아 본 적 없다. 둘째 딸이 그림을 그려 대학에 가겠다고 하니 아찔하다. 시험문제 풀기 위해 외웠던 화가 모네와 고흐가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몇 해 전에 알게 됐고, 왜 미술 시간에 이런 걸 배우지 못했는가?!. 문명의 교류에 관한 책들을 보니 18, 19세기 아시아가 서구에 끼친 영향이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도 있었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다가 머리가 무거워 집어 들었다.
『하이쿠와 우키요에, 에도 시절』은 하이쿠란 무엇인가 소개하고, 에도 시대의 미술을 주제로 일본의 문화를 소개한다.
우키요에는 에도 시절 그러니까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교토에서 에도로 막부를 옮긴 이후 상공업의 발달에 따른 경제적 풍요와 정치적 안정 속에서 서민들의 수요에 맞춤으로 나타난 판화 중심의 일본 미술의 흐름이다.
하이쿠는 5.7.5의 음수율을 지닌 17자로 된 일본의 짧은 정형시이다. 오랜 전통에 따라 지금도 대중 시로 자리 잡고 있다.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젖은 물소리”와
“산길 걷다가 나도 몰래 끌렸네, 제비꽃이여”
“얼마 동안은 꽃 위에 달이 걸린 밤이겠구나”는 하이쿠 작가 바쇼의 작품이고,
“구름 삼키고 꽃들을 토하누나, 요시노산아”
“봄비로구나, 소곤대며 걸어가는 도롱이와 우산”은 부손의 작품이고,
"꽃그늘 아래선 생판 남인 사람 아무도 없네"는 잇사의 작품이다.
책은 그림과 하이쿠를 배치해 이해를 돕고 공감하게 한다.
하이쿠는 와닿지 않는다.
『하이쿠와 우키요에, 에도 시절』은 국내 일본 문학 전문가인 최충희 님과 일본 미술 전문가인 강병식 님이 하이쿠와 에도 시대의 미술에 대한 해설을 앞에 두고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어울리는 우키요에와 하이쿠를 넉넉하게 여백에 배치하고 있다.
우타가오 히로시케의 ‘명소에도백경’이 가장 많이 실려 있지만, 가장 인상적이고 익숙한 우키요에는 가츠시카 호쿠사이가 만든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다. 가나가와 앞바다의 큰 파도는 밀려드는 서양 문물과 사상에 일본이 뒤집힐 듯한 모양새의 배 두 척으로 묘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