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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Feb 17. 2024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

『나무의 말이 좋아서』 작가 김준태 지음

부제가 - 숲꽃에서 만나는 치유의 삶 - 이다.


   “산에 오를 땐 그냥 땅만 보지 마시고요. 주변에 풀 나무와 인사하고, 숲새 노래 바람 소리에도 귀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작가가 독자에게 으뜸으로 요청하는 문장이다.      


   프랜시스 베이컨이 관찰(觀察)과 경험(經驗)을 통해 진리를 찾아가는 길을 제시한다. 자연은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 과학을 강조하였다. 이후 인류는 과학의 발달과 산업화를 이루어 물질적 풍요를 누린다. 일찍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는 약소국을 착취했고, 20세기에 화학이 자연에 끼친 폐해가 밝혀져 인류의 생활방식이 완벽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레이첼 카슨이 『침묵의 봄』으로 문을 열고 앨 고어, 크레타 툰베리로 이어지는 환경 보호 움직임은 자연은 인간의 정복 대상이 아니라는 사고를 확산하였다.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은 어딘가가 잘못된 것이고 위험하다는 충고다.     

 

   관찰과 경험으로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를 냄으로써 작가는 헤겔 논리학의 고유한 체계인 변증법, 정반합(正反合)에서 합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실천한다. 작가의 합에는 생물학과 인문학이 함께하여 통섭을 지향한다.


   작가는 산에 오른다는 표현을 숲에 간다고 한다. 시골에서 태어났어도 도시에서 살거나 경쟁 사회에서 살다 보니 자연에 눈길을 보내고 관찰하기란 쉽지 않다. 산에 오르는 일은 체력을 측정하는 수단이란 역할을 한다. 숲에서 볼 수 있는 나무 이야기로 꾸민 책에서 숲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숲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이야기를 담았다. 50 개의 숲꽃을 사진과 글로 풀어낸 이야기를 읽어가며 자신의 삶 방식과 자연 친화적인 태도를 점검해 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독자라면 프롤로그에서 책이 전하는 메시지를 알아챌 수 있다.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를 통해 작가는 숲꽃에서 의지, 배려를 찾아 소개한다. 문장으로 만나기 전에는 생각지도 않았고, 알 수 없던 지혜다.  

    

   “서로의 삶터를 존중하고 꽃 피는 시기를 달리해 경쟁을 피합니다. 작은 꽃들은 함께 뭉쳐 큰 꽃을 이루고 서로 의지하면서 역경을 함께 헤쳐 갑니다. 꽃에 형형색색 무늬도 만들고 냄새도 풍겨 곤충이 잘 찾아오도록 배려합니다. 암술 수술 길이를 다르게 하고, 꽃가루 익는 시기와 암술머리 열리는 시기도 달리하여 다른 개체와 화합합니다. 수정이 끝나면 꽃색을 바꾸고 꽃잎도 떨어뜨리지요. 미처 짝짓지 못한 이웃들에게 곤충이 집중할 수 있도록, 자기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본문을 펼치면 숲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은 봄, 여름, 가을 순으로 직접 촬영한 사진과 글로 만난다. 여러해살이풀과 한해살이풀은 무엇이 다른가? 처녀치마란 숲꽃은 땅에 납작 붙어 피는데 왜 그럴까? 두 가지 물음은 뿌리와 씨앗, 지구복사에너지로 답한다. 꽃이 피고 난 후에 잎이 나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새봄을 알리는 주역이랄 만한 꽃은 제비꽃이다. 현호색에 관한 작가의 해석(혼자로는 연약하니 여럿이 뭉쳐 큰 덩치를 흉내 낸. 큰 변고가 생겨 작은 꽃 몇 개가 손상을 입더라도, 남아 있는 꽃으로 유전자를 남길 수 있다)에 수긍하게 된다. 대부분 꽃은 꽃잎이 앞으로 젖혀지는데 꽃잎이 뒤로 활짝 젖혀져 있는 얼레지는 꽃말이 ‘바람나 처녀’란다. 그럴듯하다. 산을 오를 때 내려오는 마음으로 오르자는 뜻은 성취적인 삶의 태도를 보인 사람에게 주는 조언이다. 소나무가 독야청청할 수 있는 여건에는 송진과 같은 화학 성분이 다른 식물의 생장을 방해하는 타감작용으로 풀어간다. 모데미풀로 우리 식물 이름에 일제 강점기의 상처가 있음을 알아채고 안타까워한다. 꽃며느리밥풀, 동자꽃, 쑥부쟁이에 담긴 슬픈 사연에 코끝이 찡하다. 제우스의 유혹을 견뎌낸 시녀에게 헤라가 준 선물로 무지개 여신이라 불리는 아이리스는 붓꽃이다.     


   다음은 작가가 오랜 기간 소백산, 점봉산, 덕유산, 지리산, 계룡산 등 전국 숲을 관찰한 경험과 지식이 만든 문장들일 것이다.      


   까치수영은 ‘꽃이 아래부터 차례차례 피고 지기 때문에 여름철 내내 볼 수 있는 꽃’이다. 한꺼번에 피지 않고 왜 이렇게 꽃이 피는 것일까? 자연재해에서 한꺼번에 모두 잃는 참사를 피하려는 전략이다. 숲꽃은 하얀색이 가장 많고, 다음으로 빨강과 노랑이 많이 보인다. 파랑에서 보라꽃이 상대적으로 드문데, 이들이 가을에 많이 보인다    

 


   2024년 2월 신간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를 추천한다. 2019년 출간된 『나무의 말이 좋아서』도 좋은 책이다. 『나무의 말이 좋아서』는 산을 숲으로 여기게 하고 숲으로 오라는 입문서 격이라 볼 때,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 는 한 걸음 숲에 다가선 책이다. 유시민의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나 김준태의 『꽃세상, 길을 만납니다』는 통섭(統攝)을 시도한다. 이런 부류의 책을 읽을 수 있음은 작가가 진테제(synthesis)를 찾거나, 최소한 대화가 지향하는 방향의 질적 변화를 일구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준태 #책과나무 #꽃세상길을만납니다 #나무의말이좋아서  #에세이


2024. 2. 17(토)


https://brunch.co.kr/@grhill/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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