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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충덕 Apr 04. 2024

감성의 끝에 서라

나도 시를 쓰고 싶다


   인터넷 서점에 광고가 있었다. 창조와 감성이란 단어에 끌렸고, 읽고 보니 좋은 책이다. 음치에다 예술 작품을 보는 눈도 없고, 애써 시를 외우려고 하지 않는다. 아는 시인은 대개 술을 좋아한다. 지나치게 마셔 실수한다. 시와 시인의 술버릇을 연결해 부정적으로 판단한다. 그렇게 시를 읽지 않음을 합리화해 온다. 나이가 쌓여가며 감성이 메마르고 있음을 느낀다. 쉽게 가슴이 벌렁거리지 않고, 슬퍼도 표 내지 않음이 평정을 유지하는 거라 믿고 산다. 한편으로는 이백의 시, 김수영의 시를 감상하나 와닿지 않음에 당대의 시를 읽어야겠다고 판단한다. 그래도 소년 시절 감성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감성의 끝에 서라』는 경영자와 시인의 공저다. 창의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하는 경영자와 감성을 글로 표현해 내는 시인이 의기투합, 실험으로 만든 책이다. 시인의 감성을 경영의 창조로 연결하려는 시도는 드문 일이라 프롤로그에 사연을 소개한다. “시인들은 감성의 끝에 서 있다”는 결론에서 합작이 시작된다. 

책은 3부로 구성했다.

1부는 ‘우리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 사물의 마음을 본다 ‘는 새로운 관점과 중요성을 

2부는 사물의 마음을 보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시인들이 써온 방법이 무엇인지를

3부는 시인들의 창조법을 생활 속에서 비즈니스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연습해 볼 수 있도록 배려한다.     

1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사물의 마음 보기

새로움을 보는 법 하나(간절함의 눈을 떠라 : 당신의 눈을 잘 쓰는 방법)

마르셀 푸르스트는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 했다. 화가 폴 고갱이 “나는 보기 위해서 눈을 감는다”라고 말한 뜻은 육체의 눈을 감고 마음의 눈으로 보아야만 진정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리라. 보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눈이 떠진다. 그 간절함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만든다고 한다.     


새로움을 보는 법 둘(일체화를 하라 : 대추 한 알과 만남)

대추 안에서 초승달을 보는 시인의 눈은 역지사지를 넘어선 일체화라는 비결에 만든다. 일체화는 자신이 곧 ‘그것’이 되는 것이다. 시인들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는 정도를 넘어 ‘그것’이 됨으로써 세상을 새롭게 바라본다. 일체화는 발상의 전환이다. 

장석주의 시 ‘대추 한 알’. 내가 대추가 된다는 것은 내 삶을 몽땅 가지고 대추 속으로, 대추가 처해있는 상황에 들어갔기에 탄생할 수 있다.   

  

새로움을 보는 법 셋(사물의 마음을 보라 : 붕어빵이 돼라)  

‘사람과 자연의 마음을 보는 것이 시다.’ 사물의 마음은 동사나 형용사로 표현할 수 있다. 이름 짓기를 ‘마음 DO’라 한다. 마음을 나타내는 동사(형용사)라는 뜻이다. ‘마음 DO’는 나의 마음이자 대상의 마음인 셈이다. 사물의 마음을 보는 것은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땅이자, 우리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다. 사물의 마음을 보는 것을 비즈니스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것이 사물의 마음이 가지고 있는 감성의 힘, 공감의 힘이다. 초코파이 하면 ‘情’이 떠올리듯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한 번도 되어 본 적이 없는 사물이 되어야 하고, 내 인생을 몽땅 가지고 사물 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움을 보는 법 넷(사관질통하라 : 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시인들이 발견해 낸 최고의 마음 기술은 ‘사・관・질・통’이다. 사색하고 관찰하고 질문하면 통찰이 생긴다. 박웅현의 말에 따르면 고대 중국에서 詩人을 見者라고 했다. ‘먹고사는 것이 바빠 정작 옆에 있는 사람을 자세히, 오래 보지 못했다. 사람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대의 마음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새로움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물의 마음을 볼 수 있는 방법 네 가지 틀은 감성의 눈뜨기(오감법), 관찰의 눈뜨기(오관법), 연결과 융합의 눈뜨기(오연법), 역발상의 눈뜨기(오역법)다.      


2부 사물의 마음을 보는 시인들의 4가지 창조법

감성의 끝에 서기 하나(감성의 눈뜨기 : 오감법-보고(See) 듣고(Hear) 느끼고(Feel) 말하고(Say) 행동하고(Do))

사물의 마음을 본다는 것은 사물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모든 위대한 창조와 혁신은 ‘아픔 Pain Point’을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내가 사물 자체가 되어 五感의 문을 열고 그것이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는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감성의 끝, 가능성의 끝에 설 수 있게 된다. 감성의 끝, 가능성의 끝에 섰을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전략의 씨앗을 볼 수 있다. 

# WHO – 마음 DO – WHY(민들레; 두렵다 지난 사랑의 상처가 너무 커서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 아픔 Pain Point을 보기 위한 세 가지 원칙을 ‘DON원칙’이라 하자. Deep Diving(대상에 깊이 빠져), Only One(나만의 이야기를 만드는), New One(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마음을 먹으면 사물이 되어 감성의 눈을 뜨고 사물의 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면 무슨 일을 하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생각을 해밸 수 있다.

누가(Who) 마음 DO(think) 왜 그럴까(Why)     


감성의 끝에 서기 둘(관찰의 눈뜨기 : 오관법 – 누가(Who) 마음 DO(think) 왜 그럴까(Why) 어떻게(How) 무엇을(What)) 오관법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의인화]다.

오관법에서는 사물을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것이 ‘왜, 어떻게, 무엇을’을 생각하는지를 논리적으로 객관화하여 우리가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관찰의 눈을 뜨는 것이 핵심이다. 의인화는 생각의 기초이자 창조와 창의의 바탕이다. 누가(Who) 마음 DO(think) 왜 그럴까(Why) 어떻게(How) 무엇을(What) 프레임으로 사물을 의인화하고, 마음을 읽어 ‘마음 DO’를 찾는다. 그리고 ‘왜 어떻게, 무엇을’을 찾아 생각한 동사의 마음에 논리적 구조를 만들어 준다. 이 과정에서 내가 찾고 있는 새로운 생각의 씨앗이 새로운 개념(ideation)으로 태어날 것이다.     


감성의 끝에 서기 셋(연결과 융합의 눈뜨기 ; 五連法 -형태(모양 Form) 정서(느낌 Feeling) 상징(의미 Symbol) 행동(움직임 Act) 언어(같은 말이나 뜻이 다른 Language)에서 유사점을 연결)

작은 유사점을 찾는데서 융합 Convergence이 시작된다. 연결과 융합은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연결과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에너지가 숨어 있다. 그 에너지가 ‘유사점’이라는 원리다.  나와 사물 혹은 사물과 사물을 연결하고 융합하는 것이 세상에 없는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창조의 시작이다. 

오연법을 이용한 제품 카피의 예(‘리듬을 마신다!’ ‘겨울, 입술에 시가 흐른다’ ‘아르마니 양복을 입는 근육질의 남자’ ‘주말엔 바람이 된다’ ‘내 공부방에는 밤에도 태양이 뜬다’ ‘안전한 식품, 바른 먹거리를 만드는 회사가 되고 싶다’)

누가(Who) 마음 DO(think) NEW WHO(새로운 누가) 왜 그럴까(Why) 어떻게(How) 무엇을(What)      


감성의 끝에 서기 넷(역발상의 눈 뜨기 : 五逆法 역설-모순-반전-재명명-변신)

동사나 형용사를 뒤집어라. 역설법을 사용하는 이유는 대상이 가지고 있지 않은 속성을 찾아내는 데 목적이 있다. 모순 잇기(고추는 맵지만 맵지 않다. 자전거는 굴러가지만 굴러가지 않는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다) 반전(서있는 것들 가운데 누워있다) 재명명(저금은 돈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친절 모으기다) 변신(사물의 마음을 떠올린 뒤 그 동사나 형용사를 계속해서 연결함으로써 원래의 단어를 변신시킨다. 머플러-날개-붕대). 누가(Who) 마음 DO(think) 마음 DO(뒤집기) 왜 그럴까(Why) 어떻게(How) 무엇을(What)      


『감성의 끝에 서라』 읽었으면 시를 써야 한다만, 아직은 덜 여물었다. 그저 시도해 볼 뿐이다.     


『감성의 끝에 서라』는 2014년 3월 21세기 북스에서 초판을 내놓았고, 독자가 읽은 것은 2016년 1판 7쇄, 본문 278쪽이다.     


P.S. 2018.4.18.(수)에 쓰고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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