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돼. 여긴 우리 집이야

by 그리다

언제나처럼 파김치가 되어있는 퇴근길. 익숙한 골목을 지나 내가 살고 있는 빌라의 현관문을 연다. 1층에 놓인 우체통에 혹시 오늘 도착한 우편물이 있나 눈으로 쓰윽 한 번 훑은 후 어제처럼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내가 사는 곳은 4층. 10여 미터의 복도를 지나면 나오는 가장 끝에 위치한 방이다. 짧았던 엘리베이터의 흔들거림이 멈추고 문이 열린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구나 하며 짧은 한숨을 쉬고는 터벅터벅 복도를 걸어 집 문 앞에 멈춰 선다. 그리고는 이제 좀 쉬어야겠다는 마음에 재빠른 손놀림으로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려는 순간.

'텁-'

털로 뒤덮인 하얀 발 두 개가 우리 집 문에 다소곳하게 놓였다. 상황이 당혹스러웠던 탓일까, 아니면 그냥 지쳤기 때문이었을까? 사실 이 의문의 소리에 깜짝 놀랐을 법도 한데, 나는 덤덤하게 고개를 돌려 내 옆에 놓인 두 발을 한 번 본 후 그 발의 주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두 살쯤 되어 보이는 크기의 시베리안 허스키. 그 의문의 허스키는 특유의 그 선명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왜?'라고 묻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당당함에 시선을 바닥으로 옮겨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사는 곳 맞은편은 교회를 다니는 부부가 사는 집. 가끔씩 내가 출근할 때나 배달 음식이 도착할 때마다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났던 걸로 봐서 이 허스키는 아마 맞은편 부부가 키우는 강아지일 것이다. 머릿속으로 이런 추측이 끝나자 문득 이 강아지가 어떻게 문을 열고 나왔을까 하는 궁금함에 뒤를 쳐다보니, 마침 맞은편 집의 문이 한 뼘 정도 열려 있 것을 볼 수 있었다. 장을 보러 가다가 문이 열린 것인지 아니면 환기를 위해 열어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강아지가 저 문을 지나 우리 집 문 앞에 당당히 발을 올리고 서있다는 것뿐.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우리 집에 두 발을 올리고 있는 허스키를 쳐다보았다. 어서 문을 열라는 암묵적인 메시지가 담긴 눈빛. 나는 집주인으로서 결코 강아지에게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한동안 허스키와 눈싸움을 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허스키는 문에 붙이고 있던 왼쪽 발을 살짝 뗐다가 다시 문을 향해 내리쳤다. 마치 빨리 문을 열라는 재촉과 같았다.

"안돼. 여긴 우리 집이야."

'....?'

이윽고 강아지를 향해 말을 던졌다. 그리고 그 말을 알지 못하는 허스키는 불만이 있다는 듯 콧김을 내뿜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너희 집은 뒤쪽이잖아. 여긴 안돼."

그 말을 끝으로 허스키에게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기 위해 맞은편 집의 문을 향해 뒤돌아섰다. 이에 허스키도 자연스럽게 나의 시선을 따라 함께 자신이 살던 집의 문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었는데, 순간 아까는 보이지 않던, 말티즈로 보이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열린 문틈 사이로 머리를 빼꼼히 내밀고 이쪽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어... 한 마리가 더 있었나?'

이내 시작된 짧은 침묵. 나는 이 어색한 상황에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찰나의 순간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 말티즈의 시선에서는 '괜찮으면 나도 신세 좀 져도 될까?'라는 말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득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정신을 차린 나는 시간을 더 지체해서는 안된다는 마음에 짧게 한숨을 쉰 후 우리 집과 맞은편 집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서서 허스키에게 인도하듯 손짓을 했다.

"안돼, 안돼. 이쪽이야 너희 집으로 들어가."

그제야 허스키는 우리 집 문에 올려두었던 두 발을 떼서 방향을 이쪽으로 틀고는 유유히 자기가 살던 집으로 들어갔다. 임무를 마친 나는 우리 집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면서도 혹시나 싶은 마음에 뒤를 쳐다보았고, 2초간 복도가 조용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하며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후 샤워를 끝낸 후 침대에 털썩 몸을 누이며 생각했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 때문에 개를 무서워하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무덤덤하게 행동하며 강아지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는지를. 어찌 보면 낯선 사람을 보고도 짖지 않았던 강아지들의 덕도 있는 것 같았다. 2년 만에 처음으로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귀여운 이웃들. 다음에는 부디 오늘처럼 복도에서 어색하게 마주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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