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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다 Oct 05. 2021

도서관의 불청객들

 도서관에서는 다양하게 구비된 책만큼이나 다양한 사람을 만나볼 수 있다. 친절하고 교양 있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에 흔히 '진상 손님'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존재하는데, 이들은 각자만의 방식으로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괴롭히곤 한다. 독특한 방식으로 이용자와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여러 도서관을 다니면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불청객들에 대해서 몇 줄 남겨보고자 한다.


1. 빌려간 책을 훼손해놓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

 도서관에서 책이 훼손되는 일은 비교적 평범한 일이다. 책장이 찢겨 나가거나 밑줄이 쳐져 있거나 포스트잇이 덕지 붙여져 있는 경우가 많고 자주 빌려가는 책의 경우 이런 경향이 심하다. 보통의 경우 책이 훼손되었을 때, 이용자 분께서 도서관에 전화를 하셔서 이런저런 이유를 말씀해주시는데 이럴 때는 도서관에서도 친절하게 "괜찮습니다."라며 사후 처리에 대해서 안내를 해드리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훼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설마 모르겠지'하는 마음으로 책을 반납하시는 분들은 문제가 된다.

 한 가지 예시로 과거에 비를 맞은 것인지 도저히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젖은 책 한 권이 도서관에 반납된 적이 있다. 나는 책을 반납한 이용자에게 전화를 걸어 "빌려가신 책이 물에 젖은 상태로 반납이 되었는데, 혹시 이와 관련해서 알고 계신 게 있으신가요?"라고 점잖게 물었으나 그 이용자는 "그 책 원래부터 그렇게 되어 있었는데요? 나 혼자 빌려간 것도 아닐 테고 그쪽에서 관리 잘못한 거 아니에요?"라며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면서 한숨을 연거푸 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내 모니터에 떠있는 '도서 대출이력'에는 해당 책이 그 사람 외에는 아직 아무도 빌려간 적 없는 새책이라고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잘못한 사람으로 낙인을 찍히는 게 싫은 것인지 아니면 훼손된 책 비용을 지불하기 싫은 것인지는 몰라도 이럴 때는 정말 골치가 아프다. 사실 도서관에서는 훼손에 관한 문의를 할 때 정말 이 사람이 훼손을 한 것이 맞는지 내부적으로 철저하게 조사한다. 괜한 오해로 억울한 사람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도 있고, 공공기관 특성상 민원이 가장 무섭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나의 경우처럼 훼손을 했는지를 묻는 전화를 때는 증거가 90% 이상 갖쳐진 경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나는 모르는 일이다.'라며 모르쇠로 일관하면 '네 알겠습니다.' 하며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다.


2. 자료실 안에서 큰 소리로 전화하는 사람

 도서관에 들어오면 전화기가 알아서 비행기 모드로 전환되는 것도 아니기에 자료실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리는 것은 당연히 그럴 수 있다며 넘길 수 있다. 다만 이것이 문제인지 아닌지는 이어지는 행동으로 결정된다. 자료실 안에서 전화가 올 때는 보통 빠르게 전화를 끊고 자료실 밖에서 전화를 한다거나 작은 목소리로 "지금 도서관이야. 나중에 전화할게"라며 핸드폰을 무음으로 전환하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가끔은 벽에 붙어있는 '전화통화 금지'라고 적혀 있는 팻말을 못 본 것인지 자료실 안에서 전화통화를 크게 하는 사람이 발생한다. 원치 않는 가정사와 일상들을 밖으로 떠들어대는 불청객은 직원뿐만 아니라 이용자들에게도 눈총을 받는데 이미 전화기 너머의 세상에 빠져버린 불청객은 그런 시선들을 모른 척한다. 가끔 주의를 주기 위해 "전화 통화는 밖에서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을 하면, '잠깐 기다려봐'라는 식으로 손바닥을 이쪽을 향해 펼치고 전화를 계속 이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이럴 때는 은근히 무시받는다는 기분이 들어서 속이 상하곤 한다.


3. 다량의 책을 모두 사서에게 찾아달라는 사람

 사서에게는 '참고봉사'라는 개념이 있다. 책을 정리하고 대출, 반납을 하는 것 외에도 이용자가 자료를 찾기 편하게 기타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것에는 책을 찾아주는 행위도 포함이 된다. 도서관에 가본 사람은 알듯이 "죄송한데 저 이 책 못 찾겠는데요?"라고 하면 사서들이 "제가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하고 서가를 돌아다니는 게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부탁이 선을 넘을 때 발생한다.

 과거에 자료실 데스크에서 있을 때 어떤 중년의 이용자분이 자료실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평범한 일상이다 보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했는데, 그분은 입구에서 고개를 돌려 자료실을 이리저리 살피더니 곧장 데스크로 와서 책을 찾아달라며 A4용지 세 장을 내 앞에 턱 하고 내밀었다. A4 용지에는 대충 휘갈겨 쓴 것 같은 책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나는 이런 주문이 당황스러웠던 터라 "여기 적혀있는 것들 중에 어떤 책을 찾아드리면 될까요?"라고 되물었다. 그 이용자분께서는 "전부 다. 내가 찾아보니까 하나도 안보이더라고."라며 모든 책을 찾아달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찾아보긴 뭘 찾아봐요. 서가 쪽은 가보지도 않고, 오자마자 바로 데스크로 왔으면서...'라는 푸념을 잠깐 떠올렸으나 '그래 뭐, 이런 일도 겪어봐야 경험이 생기는 거지'라며 마음을 돌이켜 수십 권이나 되는 그 책들을 모두 찾아주었다. (물론 찾는 동안 데스크로 찾아오는 이용자분들이 많아서 데스크와 서가를 오가며 바쁘게 뛰어다니긴 했지만.)

 한 두 권의 책을 찾는 것은 정말 아무렇지 않고 뿌듯한 감정마저 들지만, 거의 심부름을 시키듯 다량의 책을 찾아달라고 사서에게 부탁하는 것은 오히려 반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용자분들이 한 번 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4. 반납이 안 된 책을 반납했다고 우기는 사람

 도서관에 무인 반납기가 도입이 되었기도 하고, 아날로그식 반납함도 함께 병행됨에 따라 반납과 관련된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반납과 관련된 일은 잘못이 사서 측과 이용자 측에서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 굉장히 조심스기도 하다. 사서가 책 반납을 처리하는 과정 중에서 놓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이용자분이 무인으로 반납을 하다가 반납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가는 경우가 가장 보편적인 일이다. 그래서 전화를 할 때도 책이 서가에 있는지, 반납함 모퉁이에 끼어 있는지, 서가 뒤쪽으로 넘어간 건 아닌지 등을 면밀하게 살펴본 후 전화를 하게 된다. 문제는 책 훼손이 발생했을 때처럼 증거가 명확하게 확인되어서 전화를 했음에도 자기는 모르겠다며 모든 잘못을 사서에게 넘길 때 발생한다. 기본적으로 도서관에서는 데스크에서 다량의 책을 빌리고 반납할 때 정보들을 확인한다. "오늘 반납하신 책이 23권이신데 맞으신가요?"라거나 "빌리신 책 중에 1권이 오늘 반납이 안되셨는데, 이 책은 지금 읽고 계신가요?"하고 말이다. 보통은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서 다량의 책중 한 두 권이 반납이 안되면 관련 상황을 메모하게 된다. '0월 0일 책 0권 반납, 1권(XXX0000000)은 미반납. 이용자분도 사실 확인'. 이후 이용자분께서 미반납이 된 책을 기억하시고 남은 책들을 반납해주시면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으나 자기가 확인한 사실을 잊고 "저 그때 다 반납했는데요?"라면서 우기기 시작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이때 도서관 내부에서는 너무 자주 마주한 상황이라 한숨을 쉬면서도 정확한 사실 확인을 실시한다. 사서들이 옹기종기 모여 당시에 반납처리를 했던 사서를 찾고, 메모를 했던 당시의 기록이나 기억들을 확인한다. 좀 더 과하게 대응한다면 CCTV까지 돌려보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은 이전 절차까지만 확인하더라도 명확해지기에 이런 경우는 드물다. 심증과 물증이 확고해지면 당시에 일처리를 했던 사서가 직접 이용자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대화를 하며 그때 당시를 회상하게 만들어준다. 일방적으로 당신이 잘못한 거라고 쏘아붙이는 것이 아닌 '그때 책이 반납 안 되셨는데 혹시 기억나세요?'라며 유하게 되묻는 식이다. 이 절차에서 이용자가 수긍하고 "집에서 그 책 찾아볼게요"라고 마무리가 되면 좋은데 "기억 안 나는데요? 전 분명 다 반납했는데?"라고 하면 "알겠습니다."라는 말로 조용히 전화를 끊는다. 왜냐하면 이런 걸로 왈가왈부했다가는 민원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민원을 두려워하는 공공기관의 특성상 고심 끝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반납처리를 해주게 되는데, 이때 이용자가 상황을 모르고 '이것 봐라 결국 너희들 잘못이었던 거잖아'라며 전화를 하면 속은 두 배로 타오르기 시작한다.


 이것 외에도 사실 어린이들의 회원가입이 어렵다는 이유로 욕을 하는 사람이나 연체가 100일이 넘어 반납 독촉 전화를 걸면 수화기 너머로 육두문자를 내뱉는 사람. 대뜸 우리 도서관에 전화를 걸어 다른 도서관의 운영시간과 자기가 찾는 자료가 있는지 등을 찾는 사람 등 신기한 불청객들이 있으나 이것은 생략하기로 한다.


 결국은 우리 모두 유니폼을 벗고 건물을 나가면 같은 주민이고 이웃이다. 나는 식당에 갈 때나 편의점에 갈 때에도 '참 고생이 많으시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항상 고맙다는 말을 전하곤 한다. 이는 우리가 말 한마디에도 따뜻함과 차가움이 오가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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