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평 남짓의 빌라를 벗어나
아담한 주택가로 이사를 오니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
하나의 과업이 되었다.
오늘은 무엇을 버리는 날인가
내일은 또 무엇을 버려야 하나
재질이 같은 것들을 모아 두고
요령에 따라 정리해서
미리 준비해 놓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들이 쌓이고 쌓여
내 공간을 가득 채우고 만다.
그렇게 오늘도
파란 종량제 봉투와 씨름을 하는데
문득 올가을엔 이것 말고도
버려야 할 것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전에 버렸어야 했지만
그리움에, 아쉬움에 버리지 못하다가
내 안에 쌓여버린 퀴퀴한 감정들.
계절마다 버릴 수 있는 마음이 달랐고
정리해야 하는 방법도 달랐는데
내 모습이 새겨진 추억들이
쓰레기라 불리는 게 싫어서
억지로 모른척했던 것들이었다.
다시 한번 파란 봉투를 꽉 묶는다
작은 조각도, 조금의 미련도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하게.
창밖을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이제는 이것들을
문밖에 놓아두어야겠다.
새벽이 지나면
내게 잠시 머물렀던 이 무게들은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