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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소의꿈 Jul 29. 2020

오해는 즐겨야 제맛

저 한국사람입니다.


살다 보면 이상한 소문이나 오해가 생길 때도 있지만 굳이 해명하거나 설명을 따로 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오해고 상대방이 생각하는 그 크기가 그 사람의 진심일 텐데 그 피곤함에 같이 동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직접 부딪히지 않는 이상 먼저 상대에 대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단지 내 삶이 그런 소문과 오해들로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끔은 재밌는 오해를 받곤 하는데 그런 오해는 오히려 즐긴다.      


나는 원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타인과 동승하지 않는다. 특히 남자라면 더더욱 동승하지 않는다.

계단을 오르거나 다시 기다리거나 하는 걸로 따로 간다.

영화를 너무 많이 본 혼자 사는 여자라 이해해 주길 바란다.


저녁 산책을 마치고 아파트 입구에 들어섰는데 마침 엘리베이터가 1층이어서 버튼을 누르고 재빨리 탔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밖에서 같이 가자고 손을 흔든다. 평상시 같으면 못 본 체 그냥 가지만 얼핏 보니 여자 노인분이라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눌러 동승하게 되었다.

노인이 “러 이스키?”라고 물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저절로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그랬더니 내 팔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며 반갑게 웃는다.

같은 동포라 생각했는가 보다. 내가 먼저 내렸고 노인은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러 이스키! 러시아 교포냐고 물은 건데 외국인으로 오해받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 그냥 끄덕끄덕 한 것이다.

정류소에서 버스 기다릴 때도 가끔 듣는 말이라 그냥 끄덕끄덕 하면서 넘긴다.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본다. 이 얼굴이 러시아 교포로 보이는 얼굴인가?    


20 초반 모그룹에서 첫 면접을 봤다. 그룹면접이었는데 한 면접관이 나에게만 집중 질문을 쏟아부어서 어리둥절했다. 인상이 좋다는 말을 대놓고 하기도 했는데 시골서 갓 상경했으니 촌스러운 모습에 그랬던 거 같다.

(내가 봐도 젊었을 때 내 모습은 놀랄 만큼 너무 예쁘다. 지금은 아니다) 마지막 질문은 “혹시 중국인이에요?” 네? 아닌데요! “솔직하게 말씀해주세요.”“ 아니오.. 저 한국 사람입니다”

“솔직하게 말씀하셔도 취업됩니다 안 떨어 트릴 께요”    

 

그제야 나는 면접관들이 나에 대한, 내 말투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상한 질문들을 쏟아낸 것이 이해가 되었다. “아니오.. 저... 취직 안 해도 돼요” 그렇게 말하고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 후로 나는 외국인이라는 소리를 꽤 들었다. 튀기라던가, 일본인, 중국인, 심지어 싱가포르 사람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도대체 싱가포르 사람은 어떻게 생겼길래 꼭 꼬집어 싱가포르 사람이라고 한 것일까.

어차피 다 아시아 계통인데.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는 중국인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한국말 참 잘한다고 칭찬까지 받았다.

 **회사에 근무할 때는 고객이 조선족이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아이고 취직 잘했네” 부러워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내 말투 때문에 그런 거 같아서 일상생활에서는 말을 잘하지 않았다. 네! 한마디만 해도 쳐다보며 출신성분을 캐물어서 곤욕스러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마트에서 말을 안 하고 계산했더니 마트 점원이 일본인이냐고 물어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 하고 나오기도 했다.

목욕탕에서도 일본인이냐고 묻는데 그땐 정말 신기했다. 도대체 뭘 보고 일본인?

한마디도 안 했는데.  직장동료는 싱가포르 사람 같다고 단정 짓기도 했다.  이유는 모른다. 그냥 그렇게 생겼다고 했다.


처음부터 끄덕끄덕 했던 건 아니다. 인정하니까 편했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되고 귀찮게 굴지도 않았다.

손해 볼 것도 이득 볼 것도 없어서 그냥 인정했다. 고개만 끄덕끄덕 하면 넘어갔다.

인정하면 모든 것이 편해지고 부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귀찮고 힘들어진다.      


그런데 그런 건 왜 자꾸 묻는 걸까.

다시 한번 거울을 본다. 어디가 서툴러서 일까. 어디가 불완전한 걸까.

완벽한 외국인이었으면 묻지 않았을 것이다. 긴가민가 하니까 묻는 것이다. 오해란 그런 것이다.

헷갈리게 혼선을 주는 것. 호기심을 동반한 오해.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놀랍고 불쾌했지만, 이제는 즐기는 편이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오해들이 재밌어졌다. 어떤 오해는 깊을수록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러 이스키만큼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괜히 미안했기 때문이다. 두 번 다시 마주치지 말아야겠다. 기억하지도 못하겠지만 다시 묻는다면 그때는 아니라고 말을 해줘야겠다. 동포의 눈물을 속일 순 없다.       


학창 시절에도 듣지 못했던 외국인이라는 말을 사회에 나와서 많이 듣게 되었는데     

도대체 내 얼굴에 어떤 교집합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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