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3개의 모나리자 이야기

스페인 미술관 예술기행

by jairo

8.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3개의 모나리자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이야기는 KBS 다큐멘타리를 통해 좀 더 깊게 다가갈 수 있었고, 최근 한길사에서 출간한 조르주 바사리의 책을 통해 그 배경을 세밀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일워스의 모나라지와 루브르의 모나리자, 그리고 프라도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카피본 모나리자까지 3개의 그림이 여전히 다빈치의 삶에 대한 갈등과 고민을 드러내는 소재가 되고 있다.


아일워스는 루브르와는 다른 얼굴 형태를 지녔기에 아직도 논쟁 중에 쌓여 있는데,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기대가 된다. 스위스에서 소장하고 있는 아일워스는 루브르보다 10년이나 앞서 있는데, 그 가치의 이동을 승인하는 건 내가 가진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기에 더더욱 루브르가 어려워하는 이유일 것이다.


과거처럼 대범하게 무리요의 무염시태를 고가로 구입해서 스페인에 소장되었던 5편의 프랑스 작가 그림과 교환했듯이 다른 대안을 내 놓던지, 아니면 복원을 통한 공정성을 드러내기를 소망해 보지만, 언제나 기다림은 관람객의 몫이다.


아무도 관심없던 작품이 도난을 당한 후, 그 가치가 급 상승함으로 지금은 그 앞에 체류시간이 5초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닌, 그저 그 그림 앞에서 사진을 눌러 보았다는 것 외에는 의미가 사라졌다.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에 보면 이런 글이 있다. ‘그림을 소장한 사람은 그걸 모든 이들에게 공유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것이다.’라는 의역을 했지만, 그 가치관으로 티센 미술관을 오픈해 준 것인데, 루브르는 무슨 목적일까?


프라도 미술관에서 머물다보면, 다른 이들이 보라한 작품 외에는 그냥 지나치는 그림들이 많다. 물론, 나도 단체 팀과 1시간 30분동안 13작품 외에는 못 본다. 그 그림의 역사가 아닌, 그림을 보는 방법을, 그림을 구분하는 기준점을 알려주지만, 너무 시간이 부족하다.


좀 더 여유로운 감상은 불가능한 것일까?


프라도 미술관은 모나리자의 그림을 르네상스 초기 발생의 방에서 옮겼다. 제일 외지고 구석진 곳으로 찾아가야 볼 수 있다. 무슨 의도일까? 몇 몇 작품이 따라갔지만, 구조적인 순환 속에서 설명하려 할 때 맥이 끊어지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미술관의 의도가 분명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래전 다음 방에 있는 페드로 베루게테의 그림 방과 그 옆 플란데스의 방을 지나가는 입구에 걸려 있다보니 감상도 어려웠고 전세계 단체 팀이 그 앞을 막고 있으니 당연하다 하겠다.


그래도 아쉬운 건 좀 더 그림이 모든 이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하는 아쉬ᅟᅮᆷ이다. 그냥 대여형식으로라도 3개의 그림을 나란히 전시할 근거는 없을까? 세계최고의 미술관을 만들었던 티센가문이 스페이에게 넘긴 이유가 있듯이 말이다.


중년 부인의 희노애락을 품고 있는 루브르이 모나리자의 시선을 살펴보면 다빈치의 의도가 입꼬리와 눈의 크기로 인해 보여진다. 당시 유산을 통해 아픔을 품고 있는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지오콘도가 의뢰했지만, 어찌 자녀를 잃은 아픔을 쉽사리 잊곘는가! 그래서 반 데르 웨이든은 죽은 예수 옆에 진짜 죽은 여인처럼 어머니 마리아를 그렸던 것 아닌가!


루브르의 모나리자를 평생 들고다니며 지속적인 작업을 멈추지 않았던 다빈치가 아일워스를 그릴 때 첫 마음의 상태를 느끼게 해 준다. 아일워스가 있기에 루브르로 변하면서 어떤 심리상태이며 어떤 인생의 굴곡을 겪었는지가 더욱 명확하게 잘 드러나 있음을 본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스승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며 따라그렸던 제자의 붓터치에서도 사연이 묻어남을 본다.


강의 물줄기가 어떻고, 뒷 산의 배경이 어떻고 안개처럼 사라지는 스푸마토가 어떻고를 떠나 한 여인의 인생사 속에 숨겨진 아픔의 이유를 항변하고 있는데, 그걸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3편의 작품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생 속 삶의 자취가 스티그마로 남는 것을 보게 된다.

keyword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