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미술관 예술기행 시리즈
9. 티치아노와 루벤스의 선의의 경쟁
누군가와 경쟁을 하게 된다면,
발전을 이루거나
퇴보를 하게 된다.
티치아노와 틴토레토의 관계처럼
모짜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처럼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경험하고 바라본 책과 들었던 음악의 선율 속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 몸부림침을 본다.
나 역시
절판된 “클래식의 쾌락”이라는 책 덕분에,
대학 1학년 시절
귀에 음악을 달고 살며
도서관에서
이름을 남기겠노라 3일 2권 목표로 파고 들었다.
당연히
교실보다는
따스한 운동장에 누워
시험지 걷는 소리를 들으며 웃다가
교수님께 귀 잡혀 끌려간 그 시간이
나를 바꾸었다.
“삶은 자신이 품은 가치를 머리 속이 아닌 상대가 이해하고 받아 들여 공동채를 이루는 목표”를 꿈꾸도록 자극해 주셨다.
그때, 모짜르트에 심취했던 교수님은 “카피의 인생이 아닌, 네가 원하는 발걸음 닫는 곳에 머리두겠다는 그 목표를 꼭 이루기 바란다.”라며 격려해 주셨다.
원하던 일에 목숨을 걸었지만, 상처였다.
그래놓고
타조 대가리처럼 다시 고개를 틀어박아 보았지만
변한건 없다
티치아노의 그림을 보는 순간 바로 그 느낌이었다.
최초의 캔버스를 만든 자이고, 대제국의 황제가 자기 앞에서 무릎 꿇고 붓을 주어주는 자가 자신이라고 으스대고 싶었을거다.
십자군 전쟁의 이득을 노린 베네치아의 형국은 모든 발전를 이루었지만, 왜 그 화려하고 맑고 투명한 베두타와 벨라투라 등 모든 기법이 내면을 감추고 허세와 과장의 면모를 드러내려 했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나무랄 거 없는 최고의 작품이다. 그러나 벨라스케스보다 더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미소를 짓게하는 무리요의 따스한 그림이 좋듯, 티치아노의 보이려는 화려함보다 루벤스가 그려내는 “인간은 인간이다.”가 더 친근하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적 갈등과 움직임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감추임 없이 들어냄으로 플랑드르의 왕자다운 감정의 섬세함을 나누고 있기에 그림 앞에서 그냥 미소를 짓는다.
이미 아담과 하와로 두 그림를 비교중이다. 그런데 아담의 어깨에 곰팡이가 올라오고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으로,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이해하기 정말 중요한 자리이며, 선후배의 그림 속 주인공에만 길들여져 있는 우리의 눈을 루벤스는 끄집어 내려 한다. 고야의 옷을 벗은 마하와 그 옆에 있는 티치아노의 비너스와 큐피드 그리고 파이프 오르간을 치는 남자 중 어느 작품이 “야하냐?”라고 하면 다들 머뭇 거린다.
다들 누드라 머뭇 거린다. 왜? 유럽인들은 누드화 앞에서도 당당하다. 바닷가에서도 수영복 상의를 안 입고 있는 것도 당당하다. 동양인만 살짝 흘려 본다.
신이 만든 가장 완벽한 몸매임에도, 그 주제를 잊으니 누드만 보인다. 인체만 보인다. 그러니 없어진 낙엽만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
그림이 말을 해도
오늘 이 시대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자기가 듣고 싶은 곳만 듣고
타인의 말은 귀찮으면 끊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이런 모습이 싫다.
루벤스는 티치아노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선배의 시선을 넘어서며 사람들에게 주인공이 뭘 말히려하는지를 차분하게 안내하고 있다.
그래서
루벤스의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난다.
“사람이 이럴 수 있구나.”하게 되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선배의 기개를 교묘히 비껴가며 깍아내리지 않고 걷는 발걸음을 보노라면 저절로 탄성이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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