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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hd아이를 좋게 보려고 긍정과 낙관사이를 오갑니다.

by 그림크림쌤

최근 네 번에 걸친 원고 교정 후, 책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돌아올 원고를 기다리는 동안 김주환 교수님의 <그릿>을 읽었습니다. 마음이 급했습니다. 혹여 전처럼 예민하고 여린 티라노 마음을 제대로 알아채지 못하고 일을 그르칠 까 두려웠거든요. 한 권이라도 더 빨리 읽어야 했습니다. 저도 adhd라 독서 속도가 조금 느려 답답하지만, 제 선에서는 최선을 다해 읽고 있습니다.


김주환 교수님이 그럽니다. 긍정과 낙관을 구별해야 한다고. 미신적 차원의 긍정은 아이를 도리어 더 불안하고 불편하게 해서 궁극적으로 더 큰 부정적 정서를 유발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 부분을 읽고 매우 놀랐습니다. 지금의 제 모습이 아닐까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거든요. 잘하고 있다고, 예전처럼 더는 아이를 망칠 일은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덜컥 겁이 납니다.


지난 두 편에서 썼듯, 티라노는 현재 결국 수학학원을 쉬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다니고 있는 교과 학원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티라노 학교 아이들은 전부 최소 3과목을 다니는 것과 비교하면 참으로 대조적이지요.


티라노는 2학기 들어서부터 하루 종일 체스만 합니다. 학교에서 뿐 아니라 집에서도 말입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도 하고, 저나 아빠와 보드게임으로도 합니다. 유튜브로도 실제 체스 선수들 경기를 분석해 놓은 것만 봅니다. 그래서 요샌 많이 하던 마인크래프트나 로블록스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알고 보니 본인 용돈으로 체스닷컴 유료 결제도 매달하고 있답니다. 무료 버전은 체스 경기 분석을 하루 한 번만 해주기 때문이랍니다. 유료 결제를 해서, 모든 체스 경기를 오답노트하듯 분석을 합니다. 영어 수학 때에도 그렇게나 하기 싫어하던 오답노트를, 체스에선 그렇게나 열심입니다.


한 달 전, 남편이 대뜸 체스학원에 등록했노라고 제게 고백합니다. 저와 상의도 없이, 점심시간을 쪼개어 주 2회 다니기로 했답니다. "티라노만 계속 이기면 재미 없어져 나랑 더 이상 체스 안 할까 봐"가 그 이유였습니다. 처음입니다. 늘 아이 문제는 제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갔는데, 남편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말입니다.


수학을 잠시 잃었지만, 티라노의 열정과 몰입이 돌아왔습니다. 어쩌면 다시 돌아가지 않고 수학마저 영원히 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티라노를 드디어 갇혀 있던 온라인 세상에서 꺼낸 기분입니다. 아바타로 변신한 채 사람으로 돌아오지 않던 아이가 드디어 의식을 찾은 느낌입니다.


티라노가 수학마저 쉬고 체스만 주구장창하게 되면서 게임뿐 아니라 또 하나의 변화가 있습니다. 특히 티라노와 아빠의 관계가 매우 돈독해졌다는 것입니다. 아빠가 체스학원에서 체스숙제를 받아오면 그 즉시 복사합니다. 둘은 거실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열심히 체스문제를 풉니다. 당연히 티라노가 더 빨리 풉니다. 아빠는 풀다 도저히 안 풀리면 티라노의 모범정답을 커닝하고요.


KakaoTalk_20251126_155538046.png 아빠 체스숙제를 함께 풀고 있는 티라노와 아빠. 아직도 애착인형을 안고 다니는 고딩 남아입니다.


체스에 꽂혀 하루 종일 체스만 하게 된, 어찌 보면 정상적인 고등학생의 모습이 아닌 티라노가 자꾸만 좋게 보입니다. 이대로도 괜찮다는 생각이 자꾸만 듭니다. 심지어 수학마저 돌아오지 않아도 좋다는 미친 생각도 듭니다. 이 정도 열정과 집념이면 수학이 아니더라도 그 무엇도 다 해낼 수 있겠다는 말도 안 되는 희망이 샘솟습니다.



저의 이런 시각은 과연 부모로서 올바른 긍정 시각일까요, 아니면 망상에 가까운 미신적 낙관일까요?


혹시 지금 상황이 사실은 너무 두렵고 불안해서 저도 모르게 억지로 희망 회로를 돌리는 중일까 봐 너무 많이 두렵습니다. 그러다 김주환 교수님 말처럼, 아이를 결국에는 또 망치게 되는 것일까 봐 사실은 저는 많이 불안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남편 생일인데, 어제부터 또 눈물바람입니다. 어제 있었던 일로 인해 제 adhd 뇌의 편도체가 과활성화 되었나 봅니다. 감정폭풍이 제게 또다시 몰아쳐옵니다.


태풍의 눈을 아시나요? 태풍은 저기압이라 바람이 매우 강하지만, 한가운데에는 고기압이라 도리어 매우 고요하다는 사실을요.


이번만큼은 또다시 제게 찾아온 감정폭풍을 외면하지 않을 겁니다. 도리어 감정폭풍의 한가운데로 들어갈 겁니다. 전 그렇게 이번 태풍도 해결할 겁니다.




<ADHD 교사엄마가 ADHD 아이에게 전하는 학교생활백서>가 12월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40여 년 제 ADHD극복 노하우를 티라노와 ADHD 아이들에게 전수하려는 목적으로 열과 성을 다해 썼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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