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시간이 많다고 믿었다
스무 살이 되자
세상이 조금 달라 보였다.
통금은 느슨해졌고
엄마의 눈빛도 예전처럼 날을 세우지 않았다.
무엇보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혼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나를 어른처럼 느끼게 했다.
그 사람은 여전히 바빴고
나는 여전히 서툴렀지만
적어도 숫자 하나가
우리 사이를
조금 덜 미안하게 만들었다.
술 한 잔쯤
함께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을 때였다.
어느 날
우리는 길을 걷다가
아무렇지 않게
같은 속도로 멈췄다.
“이제 우리라고 해도 되지 않나?”
그 말은
고백처럼 거창하지도 않았고
약속처럼 무겁지도 않았다.
그냥
지금까지 흘러온 시간을
정리하는 말 같았다.
나는 대답 대신 웃었고
그는 괜히
내 손을 한 번 더 잡았다.
그 순간
무언가 시작되었다기보다
우리가 이미 시작해 있었음을
확인한 기분이었다.
‘우리’라는 말은
둘을 묶는 단어였지만
동시에
서로의 하루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는 뜻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이
얼마나 오래 남을지 몰랐다.
그저
그 사람 옆에 서 있는 내가 좋았고
그 사람이 있는 내일을
당연하게 그렸다.
우리는
언제까지라는 말 대신
다음 주를 이야기했고
영원 대신
다음 달을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시간은
늘 우리 쪽으로 흐를 것 같았고
그래서
조급하지 않았다.
그날
스무 살의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미래에
내 이름을 겹쳐 놓았다.
아무 의심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