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사랑인지 아닌지를 처음 의심했다.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
내가 휴대폰을 들고 웃는 시간,
통금 직전에 괜히 서두르는 발걸음,
괜히 예민해진 말투까지.
들키는 건 생각보다 조용했다.
“누구야.”
그 한 마디가
심장에 먼저 닿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아는 오빠야.”라고 말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작았는지
지금도 기억난다.
엄마는 한참 나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 거 할 나이 아니야.”
“공부나 해.”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그는 군대 휴가를 나온 스물한 살이었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 않았다.
엄마의 말은 현실이었고,
내 마음은 현실을 모르는 쪽이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사랑일까.
아니면 그냥 감정에 휘둘리는 걸까.
그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그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놓지 못했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도 못했고
같은 방향을 걷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인연의 끈 같은 건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엄마의 말은
나를 보호하려는 말이었고
나는 그걸 알면서도
마음까지 접지는 못했다.
그때의 나는
어른이 되기엔 너무 어렸고
어린아이로 남기엔
이미 너무 많이 좋아해 버린 상태였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 앞에서
나는 책상에 앉았고
문제집을 펼쳤지만
마음은 자꾸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면
조금 덜 아플 것 같았고
사랑이라고 인정하면
조금 더 책임져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정답도 없이
각자의 방향으로 걸으면서도
서로를 놓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대단한 약속이 아니라
그저 버티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랑이란 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만은 아니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
사랑은
현실과 부딪히면서도
끝까지 손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의 선택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