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나 하라는 말 앞에서

그날 나는 사랑인지 아닌지를 처음 의심했다.

by 그릿 grit

엄마는 다 알고 있었다.

내가 휴대폰을 들고 웃는 시간,

통금 직전에 괜히 서두르는 발걸음,

괜히 예민해진 말투까지.

들키는 건 생각보다 조용했다.

“누구야.”

그 한 마디가

심장에 먼저 닿았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아는 오빠야.”라고 말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작았는지

지금도 기억난다.

KakaoTalk_20260219_181846894.jpg

엄마는 한참 나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 거 할 나이 아니야.”

“공부나 해.”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그는 군대 휴가를 나온 스물한 살이었다.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 않았다.

엄마의 말은 현실이었고,

내 마음은 현실을 모르는 쪽이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사랑일까.

아니면 그냥 감정에 휘둘리는 걸까.

그를 좋아하는 마음보다

그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더 놓지 못했다.

우리는 자주 만나지도 못했고

같은 방향을 걷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인연의 끈 같은 건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KakaoTalk_20260219_181846615.jpg

엄마의 말은

나를 보호하려는 말이었고

나는 그걸 알면서도

마음까지 접지는 못했다.

그때의 나는

어른이 되기엔 너무 어렸고

어린아이로 남기엔

이미 너무 많이 좋아해 버린 상태였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 앞에서

나는 책상에 앉았고

문제집을 펼쳤지만

마음은 자꾸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면

조금 덜 아플 것 같았고

사랑이라고 인정하면

조금 더 책임져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정답도 없이

각자의 방향으로 걸으면서도

서로를 놓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KakaoTalk_20260219_182200069.jpg

지금 생각하면

그건 대단한 약속이 아니라

그저 버티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날 이후로 나는

사랑이란 게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만은 아니라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는 것.


사랑은

현실과 부딪히면서도

끝까지 손을 놓지 않으려는

마음의 선택이라는 걸.

이전 04화내가 혼자 애틋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