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뒤뜰 은행나무를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기도하는 것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나무와 아래에서부터 위로 시선을 더듬어 올라가 바라보는 나무는 다르다. 수도원 뒤뜰에 수령이 오래된 은행나무가 한 그루 있다. 그 나무 이래에서부터 나무줄기를 찬찬히 더듬어 위로 바라본다.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로 파고들면 나무들이 우는 소리를 낸다. 쏴아 쏴아 파도소리 같다. 깊은 산 속이라 수많은 새들의 합창도 들려온다. 쯔빗쫑 쯔빗종... 트윗 트윗... 쪼로로롱...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새들의 돌림노래가 이어진다.


연초록 어린 나무가 진초록으로 물들어 간다. 나무들은 바람과 햇빛에 민감하다. 햇살과 바람의 결이 달라지면 물들기 시작한다. 황금나무로 변한 은행잎들 그 아래는 온통 황금밭이다. 주차해둔 차 앞 유리는 온통 황금빛이다.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팔을 세차게 흔들어 잎들을 떨군다. 나목이 될 때 나뭇가지의 수형이 비로소 드러난다. 수많은 팔을 사방으로 대칭적으로 뻗고 있는 나무, 그 가지 위로 새들이 날아와 앉는다. 가지 사이로 겨울 하늘이 조각나 있다


외롭고 쓸쓸한 날. 무언가 세속의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날. 세속의 때를 잔뜩 묻힌 채 수도원으로 향한다. 봉쇄 수도원이라 미사 참석은 제한적이다. 수녀님들의 그레고리안 성가를 듣는다. 수녀님들이 부르는 성가와 나무들의 합창.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떠올린다.

눈을 감고 있으면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른다. 그레고리안 성가 때문인지, 그날따라 가슴에 콕 박히는 신부님의 강론 때문인지 아니면 바람에 흔들리는 은행나무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자기 이름을 부르며 우는 새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쯔빗쫑 쯔빗종 우는 새의 이름은 '쯔빗종'이 아닐까 혼자 생각한다.


한 시간을 달려 깊은 산골로 들어와 수도원 미사에 참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얼마나 자주 '나'로 살고 있는 것일까? 나로 살고 싶으면서도 나로 살지 못한다. 그렇다고 남을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 어정쩡한 위치 속.. 나를 찾을 수 없다. 수도원 사람들은 내 뜻대로가 아닌 주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또 한 남자는 묵상 중이다. 아마도 그들 역시 나와 같은 이유로 이곳으로 달려왔으리라. 세속의 것들. 덕지덕지 붙은 이기심과 욕망들을 내려놓으려 안간힘을 쓴다.


은행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나무 사이로 바람이 전하는 말과 새들의 합창을 녹음한다. 찰나적인 시간들이 나를 넘어서 지나가고 새들의 소리가 서로 뒤섞인다. 수도원 뒤뜰 은행나무 아래 차를 세워두고 난 늘 똑같은 자세로 나무를 바라보고 늘 똑같은 자세로 벤치에 앉는다. 나무는 늘 거기 그곳에 있다. 나무는 내 존재를 알고 있을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 나무 아래 수목장 되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한다. 늘 마음을 빚지고 있는 나는 기꺼이 그 은행나무를 위해 온 몸을 내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로지 묵언으로 제 가진 것 털어내며 기도하듯 팔을 펼쳐 든 나무들의 숭고함. 침묵이라는 언어를 가진 나무에게 내가 지닌 전부를 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 날이 언제든..... 수도원 뒤뜰을 돌아 내려오는 길, 손 흔드는 샛노란 은행나무가 보인다.

`

이전 11화나무들의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