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계절과 계절 사이. 환절기는 특정 계절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가을에서 겨울로. 어떤 전이의 순간들. 계절이라는 징검돌과 징검돌 사이 무언가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환절기가 있다. 무언가 뚜렷이 구분될 수 없는 것들이 적당히 뒤섞인 것. 그중 특정한 것을 끄집어낼 수 없는 환절기의 특성. 환절기는 두 계절의 내음이 뒤섞여 있다.
겨울과 봄의 경계. 추위의 끝이 보이고 뭉클거리는 것들이 다가오고 있다. 봄과 여름의 경계. 여름은 맹렬한 기세로 봄을 밀어낸다. 꽃들은 번호표를 잘못 뽑은 사람들처럼 당황해하며 매우 분주하게 피고 정신없이 사라진다. 여름과 가을의 경계 작열하는 태양의 기세가 누그러진다. 나뭇잎들은 초록을 버리고 가을을 입는다.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 나목 위로 새하얀 것들이 내려앉는다.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건너감. 우리 눈에는 늘 같아 보이는 나무지만 나무는 인간보다 계절의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다. 겨울과 봄이 경계 추위는 다소 누그러지지만 바람은 여전히 거세다, 마른나무 가지 끝 봄기운이 내려앉는다. 연두의 시간을 보내고 연둣빛이 임계치에 이르면 여름의 경계에서 나무는 수관에 진초록을 달고 있다. 여름과 가을 사이 환절기. 나무의 고민이 깊어진다. 결실의 계절에 버려야 할 것들의 목록을 만든다. 가을의 끝. 나무의 고뇌는 깊어진다. 나무는 바람에 자신을 내맡긴다. 바람이 알아서 해주기를.
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봄으로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돌림노래처럼 반복되는 계절과 계절 사이.
돌아보면 나는 뚜렷한 하나의 계절처럼 살고 싶었으나 실제로는 환절기처럼 살고 있는 것 같다. 계절의 점이지대에서 나는 가버릴 것과 다가올 것들 사이에서 양손에 무언가를 쥐고 우물쭈물하는 아이처럼 환절기를 앓는다. 나는 지금 어느 계절과 어느 계절 사이 환절기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랑에도 환절기가 있다. 사랑의 끝은 한 계절의 끝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명확히 따지고 보면 한 계절과 다른 계절의 사이 그 점이지대 어디쯤일 것이다. 환절기 무렵에 사랑을 하기 시작했고 환절기 무렵에 헤어졌다. 봄이 시작될 무렵의 환절기에 사랑은 뭉클거리는 것들이었다. 은행잎이 날리던 겨울의 입구에서 맞는 사랑은 샛노란 조락의 언어였다.
계절과 계절 사이. 사이라는 것은 꿈을 품을 시간이다. 다가올 무언가에 대한 희망 같은 것들. 사이라는 것은 정해지지 않는 어떤 것들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한 계절의 징검다리에서 다른 계절로. 가끔 그 징검돌 위에 웅크리고 멈추고 싶어 진다.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는 바뀌기 전의 것과 바뀌고 난 후의 것이 함께 들어있다 환절기는 기다림의 시간이기도 하다. 보내야 하는 계절에 대한 절절함과 다가올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을 통째로 뒤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