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독은 너무 시끄럽지 않은지

고독의 은밀한 깊이는 언어로 표기될 수 없다

우리를 관통해간 고독들.


에드워드 호퍼

" 특별히 고독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그림을 단순화하고 식당을 크게 그림으로써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도시의 고독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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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어둠이 내린 도시, 전면이 유리로 된 카페의 창문을 통해 카페 형광등의 푸른빛이 길가를 비추고 있다. 카페는 도시에서 분리된 섬처럼 보이고 카페에는 있는 사람들은 어두운 도시에서 빠져나온 고독한 사람들, 정물처럼 보인다. 호퍼는 도시 속 고립된 사람들의 일상을 포착한다. 포착된 인물들은 동작이 없다.

호퍼 그림의 배경은 주로 호텔방이나 극장 휴게실, 아파트, 주유소, 야간의 술집 등 미국의 일반적인 도시 풍경이며 등장인물은 혼자 또는 함께 소통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다. 인간의 외로움과 고독의 정서가 깊게 배어있는 호퍼의 작품은 단순히 일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가려진 심리적 요소, 그 내부를 응시하게 해 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홀로 고독한 사람, 또는 군중 속에서 조차 고립되어 있는 사람의 모습은 당시 미국 도시인들의 모습이기도 하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림 속 인물들은 많아야 2-3명 정도이다. 같은 방안에 있어도 한 명은 창밖을 보고 다른 한 명은 신문을 본다. 아무도 없는 방, 아무도 오지 않은 것 같은 방에서 아무것도 입지 않은 여자가 서있다. 창문으로 빛이 비친다. 특별할 것도 없다. 눈부신 그녀의 나신은 더 이상 유혹적이지 않고 도리어 건조해 보인다. 책을 보는 청록색 옷을 입은 여자. 침대 위에 막 일어나 자세로 앉아있는 남자. 그들의 사연이 무엇이건 그들 방으로는 환한 빛이 들어온다. 그러나 그들 모두의 얼굴에서 고독이 읽힌다.

20세기 풍요로움의 시대 미국을 관통한 고독. 여전히 지금도 고독은 유효하다. 호퍼의 망막에 찍한 고독과 그가 빛에 버무린 고독보다 지금의 고독은 더 깊고 더 쓰다.

고독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도시의 밤은 고독들로 가득 차 있다.



*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생각한다.


체코의 국민 작가 보후밀 흐라발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서 “당신의 고독은 너무 시끄럽지 않으십니까? ”라고 묻는다. 이 책에서 '나는 36년째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고 있다.'와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라는 문구가 끝없이 반복된다. 한터가 바라본 하늘은 왜 인간적인지 않은 것일까? 한터는 가방에 오직 책 세 권이 들어있다는 이유만으로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며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쓸 만한 책 한 권을 건질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나로 살아간다. 오직 자신의 압축기와 함께 은퇴할 그날을 기다리며 외삼촌의 뜰에 자신의 압축기를 가져다 진열할 생각을 하는 고독한 남자다.

어린 집시 여인은 불을 지키고 소시지를 먹고 스튜를 끓이며 연을 날리는 것에 행복해하는 여인이다. 여인은 우연히 나타난 것처럼 우연히 사라졌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그래도 저 하늘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연민과 사랑이 분명 존재한다. 오랫동안 내가 잊고 있었고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삭제된 그것이..."

기억 속에 완전히 삭제된 그것들은 무엇일까? 한터에게 있어서. 한터가 하늘이 인간적이지 않다고 하는 이유는 책의 여러 부분에서 등장한다.

누군가가 쓴 책을 누군가는 교정하고 누군가는 삽화를 그려 넣은 그 책을 현장 학습 온 어린 학생들이 야만스럽게 달려들어 찢어내고 있다. 한터는 차라리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 이런 일들은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욕조 속의 세네카처럼 폐지가 가득한 압축 통속으로 들어간다. 이젠 완전한 미지의 세계로 진입한다. 소장이 한터를 해고하고 젊은 직원 두 명을 채용한 순간....... 폐지 더미 속에서 단 한 권의 보물을 발견할 의망이 사라져 버린 한터는 이제 그 자신이 서서히 압축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온전히 잊힌 그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고 이미 재가 되어버린 어린 집시 여인과 연을 날린다.


기계 문명의 도입이 앗아간 한 개인의 소박한 꿈. 단지 책을 사랑했던 한터 개인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문명의 야만에 좌절하는 개인의 고뇌를 그린 작품이다. 그의 일시적인 사랑이었던 여인들의 모습도 한터의 고독함을 드러내 주는 배경이기도 하다. 고독하다는 것. 모든 것이 넘치는 시대, 충족되고 채워지는 시대에 과거보다 더 고독하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너무 자주, 너무 쉽게, 너무 요란하게 고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짜 고독한 이는 고독하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고독을 언어로 표현하는 이들은 적당히 고독한 자들일 것이다. 고독은 은밀한 깊이를 지닌 단어다.

한터는 폐지 더미에서 찾아내는 단 한 권의 보석을 찾는 희망이 사라지자 스스로 한 권의 폐지 다발이 되어 압축 기안으로 사라진다. 평생 분신이었던 압축기에 자신을 맡기는 순간 압축기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만들어버린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 넘치는 고독들 사이에서 당신의 고독은 너무 시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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