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또 하나의 거대한 새장. 우리는 한 마리의 새
알랙산드리안 페러킷(Alexandrine parakeet, Psittacula eupatria) 은 다 자라면 몸길이가 60cm가 되는 대형 앵무새다.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 원정에서 데려온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고 한다.
귀족들에게 선물용으로 인기가 있었던 이 새는 명예롭게도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을 부여받았다.
대형 새에 걸맞은 가장 큰 사이즈의 새장을 주문하고 그곳에 둥지를 만들어주었다.
아직은 어린 새지만 하늘을 나는 새들에게 새장은 아무리 넓다 해도 감옥일 것이다. 인간이 만든 환경. 아무리 먹이가 풍부하고 제때제때 공급되는 물, 지속적인 돌봄이 있다 하여 새장이 새들의 천국일 수는 없다.
날고 싶은 본능이 좁은 새장에서 억눌려 있다. 가끔 날갯짓을 한다. 본능대로 날 수 없기에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새들이 노래한다는 말은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매미는 운다고 하고.. 새들은 노래한다고 한다.
매미의 울음과 새의 노래 사이에.... 공통되는 것은 '절규'일 것이다. 그들의 절규가 인간의 귀애는 울음으로 때로는 노래로 들리는 것이리라.
사육된 앵무새는 틈틈이 발톱도 잘라주어야 하고 비행 깃의 일부를 잘라주어야 순해진다고 한다.
야생성... 아직 비행 깃을 한 번도 자르지 않았고 발톱도 자르지 않은 알렉산드리아는 좁은 새장 안에서 분주하다... 새 장 앞에 자잘한 화분들이 햇살을 받고 있다. 새는 가끔 무언가를 응시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소리를 낸다. 무엇에 대한 몸짓인지... 무엇에 대한 호소인지 알 수 없다.
새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어렵다.
길들임과 길들여짐... 산다는 것은 길들임의 반복이 아닌가.
우리가 사는 일상,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터전도 생각해보면 거대한 또 하나의 새장이 아닐까.
모든 것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면 그의 눈에 우리도 한 마리의 새와 다를 바 없다. 우리의 비행 깃 일부와 발톱을 잘라내어 길들임의 과정을 반복해 욌을 것이다.
날지 못하는 새들이 되어 먹이와 물을 얻기 위해 일터에서 몸부림 중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을 꿈 꾸는 것은 사치스러운 행위일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어딘가로 움직이고 끊임 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
내키지 않는 일들을 즐거운 표정으로 해야 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일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치기 어린 젊은 날 나는 용감하게 안정된 직장을 박차고 나왔다.
새장처럼 느껴지는 그곳, 나의 젊음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곳에 지금껏 존재하였다면 얼마나 잘 길들여진 새가 되었을까, 윤기가 흐르는 뽀얀 털, 피둥피둥한 한 마리의 새를 상상한다.
그러나 나는 날고 싶었다. 새장 밖이 안전하지 않더라도 가둬짐을 거부하고 싶었다.
사직서를 내고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시작한 일이 학원일이었지만.... 역시 그 일도 새장의 연속일 뿐이었다.
그러함에도 영혼만은 자유로웠다....
지금도 여전히 벌이와는 무관하게 영혼은 자유롭다.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상사의 부당한 지시와... 그 당시의 여직원들이라면 당연시되던 조직문화가 나를 견딜 수 없게 하였기에 직업이 주는 잠재적 안정성 따위에는 미련조차 두고 싶지 않았다.
경제적인 것들을 고려하면 치기 어린 무모한 짓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거대한 새장을 바라보며 새 장안의 알랙산드리아를 바라보며 나의 치기 어린 무모함을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스스로 생각해본다
해가 비치는 거실... 거대한 새장과 먹이통과 물통... 그리고 앵무새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새의 움직임이
거실 바닥에 수묵화를 그려낸다. 쉴 새 없이 날개를 퍼덕이고 배회하는 끊임 없는 움직임이 한 폭의 그림이다.
붓을 손에 쥐지 않았을 뿐 새는 영락없는 동양화를 그려내는 예술인이다.
새 장 안의 삶... 11월의 시작이다. 1년 전 11월의 첫날 나는 무슨 글을 쓰고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1년 뒤 나의 모습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역시 1년 뒤 나의 모습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시간의 흐름 앞에..... 또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우리는 저마다의 새장에 갇힌 한 마리의 새다.... 삶이 그린 그림이다. 움직일 때마다 창살에 부딪는 날갯짓이 부질없을 지라도 날갯짓을 멈출 수 없는 것은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 때문이다.
윙컷을 당하지 않은 한 마리의 새처럼 그 부질없는 날갯짓을 오늘도 반복할 것이다.
그 또한 내가 그린 하나의 그림이 될 것이고 그것이 바로 내 삶이 될 것이다. /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