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두 번째

11월 내장사로의 회귀본능

해마다 거의 비슷한 시기 내장사를 향한다. 가을의 끝을 보려는 연례행사처럼...

매표소부터 내장사 입구까지 걸어 올라가는 길이 사실은 단풍을 즐기는 최선의 코스다. 거리가 상당하다. 그 길을 걷는 동안 단풍의 절정을 수없이 만나고 나면 내장사에서는 그보다 더 강렬한 단풍이 아닌 한 시선을 잡아끌지 못한다.

올해는 다리 고관절 쪽이 안 좋아 부득이 셔틀버스를 타기로 했다.

사람들의 옷차람에 가을과 겨울이 뒤섞여 있다. 매표소를 지나 셔틀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벌써 시야에서 사라진다.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점점 수가 늘어난다..

지루한 기다림. 몇 번의 셔틀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고 떠난 뒤에야 비로소 탈 수 있었다. 버스는 단풍의 골짜기로 질주한다. 순간이었다. 흐드러진 단풍잎들이 버스 창문을 두드리는 가 싶더니 벌써 도착이다.

입구까지 걸어가기로 한 일행들은 아마도 절반쯤 걷고 있는 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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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장사를 향해 걷는 길, 해마다 같은 위치에서 사진을 찍는다. 몇 번째 나무, 몇 번째 벤치, 몇 번째 돌 탑...

변함없어 보이는 모든 것들... 변함없을 리 없지만 변한 것은 '나'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나무도 돌도, 나무 밴취도 세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올해의 나도...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흘러간다'라고 이야기했다.' 같은 계곡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는 그의 말처럼... 이미 모든 것들은 흘러갔으며 흘러가고 있고 흘러갈 것이다.

그 흘러감 속에 나의 존재도, 나무의 존재도, 돌탑도 사라져 갈 것이다. 오직 흔적으로만 남는....

어느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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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고즈넉한 산사. 스님들의 독경 소리가 경내에 가득 찬다. 화로 소실된 대웅전 자리에는 간이 법당이 설치되어있다.

내장사 입구 커다란 은행나무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 명당자리다. 하트 모양 포토존까지 설치되어 있다. 저나무의 수령은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내장사의 역사와 나무의 나이는 거의 일치할 듯싶다.

셔터 누르는 소리, 말소리, 걸음 소리..... 새소리...

마스크 뒤에 가려진 얼굴. 눈으로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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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과 돌 담에 내려앉은 겨울 햇살을 찍는다. 돌 계단 위에는 나뭇잎 하나 내려앉아있지 않다. 부지런한 스님이 이른 새벽 쓸어두었을 것이다. 형형색색으로 물든 나뭇잎들을 바라보는 것도 아름답지만 이미 추락한 것들. 단풍이라 불리지 않고 낙엽이라 불리는 그 모습이 더 가을답다는 생각을 한다.

추락한 것들.... 아래로 아래로. 가지에 붙어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모습보다.. 이미 추락한 것들의 '가을 다움'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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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두 번째 피는 봄이라 한다. 봄은 꽃으로. 가을은 잎으로 피는 두 번째 봄.

단풍이 든다고 하지만 사실은 단풍이 드는 게 아니라 엽록소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본래 가지고 있던 잎의 색이 드러나는 것이다. 가을은 드러남의 계절이다.

본래의 색을 드러내고, 본래의 수형을 드러내고... 당당히 모든 것을 털어내는 비움의 군무를 추는 계절.

해마다 가을이면 나는 '가을 병'을 앓곤 한다. 바람에 거세게 흔들리는 나무.. 온몸으로 비움을 행하는 나무는 나의 정체성을 묻는 것처럼 보인다. 꽃과 잎사귀로 적당히 그러럴듯하게 포장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이 계절이 오면 드러난다. 나는 나를 감출 수 없다. 날 것.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내년 이맘때 또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또 그 나무, 그 벤치, 그 돌탑 아래 멈추어 서서 한 참을 머뭇거릴 것이다....... 가을 회귀.... 내장사는 가을로 돌아가는 내 삶의 길목에 있다. / 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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