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이루지 못다 한 것들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
11월. 인디언식 용어로 모든 것이 다 사라지지는 않은 달이다.
꽃과 열매와 잎으로 가려져있던 나무의 본모습이 드러나는 계절.
절기상 오늘은 '소설'이라 한다... 겨울로 들어가는 것처럼 추위가 느껴진다. 거센 바람이 불고 약간의 비가 흩뿌린다. 그 바람의 힘에 끌려 낙엽들은 방향을 잃고 흩어진다. 도로 위로 쏟아지는 낙엽들.. 벗은 나무의 춤은 처연한 아름다움이 있다.
달리는 차들 뒤로 한 무리의 낙엽들이 깔깔 거리며 따라 달린다. 차 위에 내려앉은 형형색색의 마른 잎사귀들... 낙엽으로 뒤덮인 차.... 차에서 낙엽들을 쓸어내리는 것이 도리어 죄스러운 마음이다. 한때는 연초록이었고 한때는 진초록이었던 또 한 때는 새빨간 잎사귀들의 꿈을 감히 '낙엽'이라 부를 수 있을까.
해마다 11월이면 나목이 되어가는 나무처럼 마음이 스산해지곤 했다. 주기적인 계절병을 앓는 사람처럼.
겨울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나는 여전히 가을을 붙잡고 싶어 져서 일까.
해마다 이 계절이 돌아오면 삶의 성적표를 확인하는 기분이 들곤 했다. 감추어진 나를 드러내는 시간.
그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온전히 나로 살고 싶었으나 그리 살지 못하였고
맹렬히 달려가고 싶었으나 주춤거리며 머뭇거린 시간들이 더 많았다.
한 해를 시작하던 해. 새 달력을 벽에 걸면서 주문처럼 외우는 행복에 대한 소망들...
11달이 지나온 지금... 1월의 일기장을 펼쳐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때의 바람과 꿈에 미치지 못한 내 삶의 성적표를 마주하게 될까 두려워서다.
그래도 11월은 얼마나 고마운 달인가. 아직은 혹독한 추위가 몰려오지 않았고 볼에 스치는 바람은 아직은 견딜만하다. 나무들은 아직은 온전한 나목이 되지 않았고 아직은 견디고 있는 잎사귀들을 바라볼 수 있다.
시작의 나무와 끝의 나무는 닮아있다. 한 해의 끝과 한 해의 시작도 닮아있다.
아직은 해야 할 일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다.
두 개의 쭉 뻗은 막대기.. 얇아진 달력을 바라보며 11월이 끝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11월은 아직은 다 사라지지 않은 시간이다. 아직은 한 해의 못다 한 꿈을 꿀 수 있고 아직은 절망하지 않아도 된다.
돌이켜 생각하면 11월은 내 삶에 큰 의미를 준 달이기도 하다. 11월에 있었던 수많은 기억들. 뜻하지 않은 이별을 했거나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게 되었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수술을 해야 했거나 수상의 기쁨을 누렸거나... 극과 극의 일들이 11월에 겹쳐 있다.
기뻤거나 슬펐고 따뜻하면서도 스산했던, 행복하면서도 불행했던 11월.
모순의 얼굴을 한 11월 앞에 나는 한없이 황량했고 스산했고 슬퍼졌다.
지나온 삶과 달려가야 할 삶의 시간 속에 나는 11월을 시계의 밤 11시처럼 생각하곤 한다.
11시는 아직 자정이 되기 전의 시간. 잠을 자야 하지만 잠을 자기도 아까운 시간.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시간이다.
지난 시간 내가 이루어 온 일들이 있다면 그 밤의 시간들이 만들어 준 것들이 아닐까. 키보드 위를 달리는 나의 손의 고독함을 늦은 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가 알아주듯......
밤 11시와 꼭 닮은 11월의 표정 앞에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 본다.
아직은 모든 것이 다 사라지지는 않았다.
1월에 다이어리에 적어두었던 수많은 불확실한 꿈들과 바람들을... 아직은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아직은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아직은 꿈을 꿀 수 있다.
11월은 그런 달이다..../ 려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