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지만, 가난하기에,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그림을 그려야 했던
빈센트 반 고흐.... 살아있을 때는 물감 하나 붓 한 자루 살 형편이 안되어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던 그. 그의 광기 어린 작품 활동,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그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지금은 그의 흔적들, 생 레미의 요양병원이나 노란 집이 성지순례처럼 관광객들의 필수 투어 코스가 되어있지만 고흐는 미래에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 상상이나 하였을까.
목사가 되어 그림을 취미로 그리면서 보통의 가장 일상적인 삶을 살았다면 지금 우리에게 고흐는 없다.
이미 세상에 없는 고흐. 가장 처절하게 비참하고 고달픈 인생을 살았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캔버스에 무언가를 그리는 일뿐이었으리라. 그의 집과 병원, 그림에 등장하는 카페테라스는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붐비지만 이미 세상에 없는 그에게 한참이나 뒤늦은 관심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사실 나는 반 고흐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싶었다. 아마도 그것은 그의 작품 안에 도사리고 있는 슬픔들. 붓터치 하나하나에 스민 광기 어린 절망과 울분이 내게 전이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귀가 잘린 자화상을 바라보는 것도, 어둠 속에서 감자를 먹는 사람들의 고단함을 바라보는 것도, 밀밭을 나는 수천 마리의 까마귀 떼의 움직임을 보는 것도, 무언가 이글거리듯 꿈틀꿈틀한 붓터치의 배경도 어쩌면 작품성과 예술적 가치를 떠나서 내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우리에게 가장 아름답고 친숙하고 익숙한 그림 ‘별이 빛나는 밤’도 블루의 매력을 보여준다. 별빛은 아름다우나 강변을 걷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어딘지 서글프다. 그림만 바라볼 때는 아름다움으로만 인식되지만 1886년 아를에 도착한 뒤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 작품이 단순히 아름다운 작품으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편지 속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라는 문구에서 알 수 없는 매혹은 결국 얼마나 많은 고통의 다른 표정인지를 깨닫게 된다.
정작 고흐가 별이 빛나는 밤에서 표현하고자 한 것은 빛과 어둠, 빛을 내기 위해, 맑음을 드러내기 위해 얼마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몸부림쳐야 하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어쩌면 그것은 고흐 자신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끝없이 빛나는 이상을 좇고 있지만 결국은 강변을 걷고 있는 술 취한 듯 비틀거리는 사람의 모습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 그의 생각이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너무도 자명한 사실 또한 그는 알고 있다. 모든 심장처럼 파닥거리는 예술이란 죽음을 딛고 잉태되는 것이기에.
나는 지금 아를의 강변에 앉아 있네.
맑은 강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네.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맑음 속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는 건지...
두 男女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있다네.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별이 빛나는 밤에 캔버스는 초라한 돛단배처럼 어딘가로 나를 태워 갈 것 같기도 하네.
테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듯이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네.
흔들리는 기차에서도 별은 빛나고 있었다네.
흔들리듯 가라앉듯 자꾸만 강물 쪽으로 무언가 빨려 들어가고 있네.
강변의 가로등, 고통스러운 것들은 저마다 빛을 뿜어내고 있다네.
심장처럼 파닥거리는 별빛을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네. 나는 노란색의 집으로 가서 숨죽여야 할 테지만....
별빛은 계속 빛날 테지만. 캔버스에서 별빛 터지는 소리가 들리네.
테오, 나의 영혼이 물감처럼 하늘로 번져갈 수 있을까?
트와일라잇 블루, 푸른 대기를 뚫고 별 하나가 또 나오고 있네... ”
-1888년 6월- 아를(Arles)에 도착해서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생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하면서 그는 붓꽃과 장미에 광적으로 매달린다.
붓꽃이 불안한 영혼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하면서 정원의 화단에 피어있는 붓꽃을 캔버스로 옮겨온다.
레몬 빛 노란 바탕은 감청, 보라색 붓꽃을 한층 더 강렬하게 보이게 한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한 편의 시라고 해도 좋을 것 같구나.”
"지금은 모든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단다.
끔찍했던 발작도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사라졌고 말이야.
난 이곳에서 차분한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마지막 붓 터치를 다듬으며 지내고 있어.
녹색 배경에 장미가 있는 그림을 하나 그렸고 커다란 보라색 붓꽃 다발이 있는 그림을 두 점 그렸어. 바탕을 분홍색으로 칠한 그림은 녹색과 분홍색, 보라색의 조합으로
부드러운 조화를 느낄 수 있지.”
고흐의 작품 중 <장미가 든 꽃병>은 분홍색이나 붉은색의 장미를 많이 그렸던 르누아르와 달리, 장미의 색보다는 꽃병 안에서의 움직임, 가두어져 있으나 가두어져 있지 않음을 드러내는 몸짓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꽃 또한 그의 눈에는 별과 같았으리라.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향기와 색을 드러내지만 그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고통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그러다 어느 순간 흔적 없이 소멸해버릴 것이라는 것을. 장미가 꽂혀 있던 꽃병에는 또 다른 장미나 또 다른 꽃이 자리 잡게 되리라는 것을 또한 그 모든 것이 덧없는 흔적이라는 것을.
고흐의 작품 중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작품은 조카의 탄생을 축하하는 의미로 그린 <아몬드 나무>이다. 하늘색 바탕에 아몬드 꽃이 피어있는 나무. 고흐 작품이 주는 고통과 슬픔이 이 작품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생명력, 설렘, 희망을 그린 것은 조카인 꼬마 빈센트가 자신과는 다른 삶. 희망적이고 밝은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파란 하늘 아래 만개한 하얀 아몬드 꽃들, 꽃송이 송이마다 고흐의 염원이 담겨 있을 것이다.
“나는 가난할 테고, 그림을 계속 그릴 것이며, 한 사람의 인간, 자연인이 될 것이야.
자연에 등을 돌린 인간, 끊임없이 어떤 지위나 걱정하며 자연에서 멀리 떨어진 인간은
오! 결국 뭐가 희고 뭐가 검은지 분간조차 못하게 될 것이야.
이런 이들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자신이 믿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 사람들과 정반대 편에 서 있어. ”
-1883년-
그의 편지 ‘나는 가난할 테고. 그림을 계속 그릴 것이고... 그러다 어느 순간 무엇이 희고 검은지도 분별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다’로 적고 있다. 살아있는 동안 그는 가난하였고, 그림을 계속 그렸으며. 그리고 광기 어린 혼돈 속에 생을 마감하였다.
독백이면서도 절규처럼 들리는 그의 말 "나는 가난할 테고, 그림을 계속 그릴 것이며."
그는 '가난'을 결코 변하지 않는 불변의 진리처럼 단언하고 있다. 가난... 그럼에도 가난과는 별개로 계속 그려야 한다는 말이. 더이상 내려갈 곳 없는 삶의 바닥에 이른 것 같은 순간에도 '그림을 계속 그릴 것'이라는 다짐이 가슴을 두드린다. 절망의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늘 하던 일을 반복하는 것이라는 그 단순하고 명쾌한 선언. 그 선언을 지키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않다. 절망의 순간 우리는 늘 하던 것을 접어버린 일이 수없이 많았으니까. 늘 하던 것들을 포기하는 일이 제일 쉬웠고. 최선의 방법처럼 여겼으니까.
평생을 가난하였던 그가 그의 작품이 이 시대 사람들에게 미치는 경제적, 사회적, 예술적 영향력을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며 또 어떤 글을 남길까.....
그는 아마 별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그토록 집착하였던 별들. 우주의 먼지 조각들이 뭉쳐 하나의 별이 되기까지의 과정. 시작은 우연이라 할 수 있지만 탄생의 과정은 우연이 아니다. 뜨거운 전율과도 같은 슬픔을 기어이 누군가에게 전이해주고 마는 그의 작품들........
빛바랜 캔버스 속... 백장미처럼 보이는 그의 분홍 장미들... 강렬한 붓꽃들.. 삶에 대한 열망이 꿈틀거리는 그의 작품 속 어딘가에 가난하지만, 가난하기에,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무언가를 그려야먄 했던 고흐의 몸부림이 남아있다. 그는 세상에 없지만 그의 몸부림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끝없는 자극이 되어준다. 최악의 순간이 오더라도 자신이 늘 하던 것에서 손을 떼지 말아야한다는 그의 가르침이 들려온다. 다만 늘 하던 것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얼마나 더 많은 피를 캔버스 위에 흘려야 했을까. 결국 그의 작품은 피로 쓴 시가 아닐까.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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