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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는 정물이 된 사람들이 걷고 있다

<트램 위의 정물> / 가브리엘 뮌터 1912

가브리엘레 뮌터(Gabriele Münter 1877–1962), <트램 위의 정물 Stillleben in der Straßenbahn>

1912


*트램은 도로에 깐 레일 위를 주행하는 노면전차                        

단정한 네이비 원피스를 입은 여인이 빨간 꽃이 핀 화분과 핸드백, 포장에 싸인 선물(?)을 들고 트램을 타고 있다. 저 꽃은 제라늄이 아닐까?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인 빨간 제라늄의 꽃말은 ‘ 그대가 있어 사랑이 있네’라고 한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와 관련이 있어 ‘이슬람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동그랗고 보드라우며 넓적한 연둣빛 잎, 올라온 빨간 꽃대, 제라늄꽃이 소담히 피어있다.

여인은 지금 누구를 만나러 가는 중일까?     


가브리엘 뮌터는 이 작품의 제목을 < 트램 위의 정물 >이라 지었다.

화가 뮌터의 눈에 여인도 꽃과 핸드백과 선물과 마찬가지로 ‘정물’로 비쳤을 것이다. 

트램 안의 여자는 정물처럼 꼼짝하지 않고 빨간 제라늄 화분이 흔들릴세라 두 손 모아 안고 있다. 뮌터는 트램을 타고 가는 사람보다 트램 위의 정물에 집중했다. 뮌터의 작품 속 여인도 정물이기에 여인의 얼굴은 필요치 않다. 정물이 된 사람. 그녀의 무릎에 놓인 정물과 그녀가 두 손으로 안고 있는 제라늄 화분     

때로 누군가에게 누군가는 정물이 되기도 한다.

그 자리, 그 시간에 그대로 멈춰버려도 좋을 정물말이다.

오래도록 좋은 정물로 기억되고 싶다, 언제 보아도 좋은 정물, 질리지 않은 정물,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내 말이 상대방에게 가 닿는 그런 정물로..     


< 우는 여자 > 

                                                  나희덕     


저녁 무렵 출근하다 우연히 만난 그 친구 때문에

십 년 세월을 담고 선 그녀의 눈빛 때문에

.....

마른 갈대의 숲과 그 기억 때문에

.....

곱게 자라서 만나자던 그 까마득한 약속 때문에

그러나 모든 것이 변했기 때문에,

....

이제 수치도 성스러움도 아닌 저녁 출근 때문에,

다 이해할 수 있다는 듯한 그녀의 표정을

여기에 불러 세운 세월 때문에

.....          

(부분발췌, 중략)


우연히 만난 오랜 친구.. 곱게 자라서 만나자던 까마득한 기억 속 친구는 수치도 성스러움도 아닌 저녁 출근 중이다. 시적화자인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은 다 이해할 수 있다는 그녀의 표정이다     

우는 정물이 된 그녀... 십 년 세월이 담긴 그녀의 눈빛, 세상을 다 안다는 표정 때문에 우는 정물을 바라보는 나도 우는 정물이 된다.     


사람도 그럴 때가 있다. 

만나지 않았으면 영원히 아름다운 정물로 기억되었을 것을

우연히.... 마주치고서........ 슬픈 정물로 남고 만다.    

누군가가 내게...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오래전 같은 사무실에 근무했던 이를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치고는  그 자리를 피해버리던 때가 있었다.

내 모습이 그에게 어떻게 보일지 두려워서

또 한 편으로는 내가 알고 있던 오래전 그의 모습이 아니어서...

     

거리에는 정물이 된 사람들이 걷고 있다.

저마다 자신을 닮은 화분 하나씩 들고...   누군가에게 산뜻하고 푸르고 늘 아름다운 정물로

오래도록 기억되고 싶다....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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