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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기에 사라지고, 사라지기에 아름다운 역설 앞에

칼라꽃을 등에 진 여인은  전 생을 지고 날마다 일어선다

디에고 리베라. <꽃 파는 여자>. <꽃을 나르는 남자>를 중심으로


“내게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민과 희망을 아주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 출신 배경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해 주고 더 나은 세상을 보게 해줘야 한다는 게 나의 희망입니다.”     


멕시코의 국민화가 디에고 리베라는 혁명의 영향을 받아 멕시코 벽화운동을 주도하고 지역, 문화, 민족성을 반영한 독립적이고 해방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화가다.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 이전의 멕시코의 영광과 역사를 회복하고자 하는 자부심과 소외된 민중의 고통, 민중의 삶에 대한 연민이 담겨있다.     


멕시코인들이 좋아하는 칼라꽃과 관련된 작품들이 상당히 많은데

우리에게 익숙한 그림은  <꽃 파는 여자 flower vendor>와 <꽃 나르는 남자 : flower carrier>이다.     

디에고 리배라 < 꽃 파는 여자  : Flowet vendor>1942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칼라꽃다발을 등에 지고 무릎을 꿇고 있는 여인이 있다.

거대한 꽃 바구니와 자신의 몸을 이어주는 파란 끈을 두 손으로 꼭 붙잡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시선은 딛고 서야 할 대지를 향한다. 칼라꽃 한 송이 한 송이가 그녀 삶의 무게, 그녀 목숨 값일 것이다.

여인과 칼라꽃, 어두운 색조의 바탕....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인의 무릎 옆에 누군가의 투박한 맨발이 보인다. 바구니를 붙잡아주는 손과 꽃 무더기에 파묻힌 머리가 보인다.

여인과 남자는 동시에 호흡을 가다듬어야 비로소 대지를 박차고, 짓누르는 생의 무게를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연둣빛 줄기, 길쭉한 새하얀 꽃잎과 노란 암술...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인 칼라꽃은 꽃말이 '천년의 사랑', '순수'를 상징한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하얀색의 칼라꽃이 익숙하지만 다양한 색깔로도 존재한다.     

안개꽃이 다른 꽃의 배경이 되어주는 꽃이라면 칼라꽃은 단 한 송이만으로 다른 꽃을 압도하는 힘을 지닌 꽃이다. 중심적이고 주도적인 꽃이다. 디에고 리베라가 다른 꽃보다도 망태 가득  칼라꽃을 그린 이유는 바로 그런 주도적인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대지에 무릎을 꿇고 경배하는 듯한 여인, 여인은 지금, 숨 고르기를 하고 있으리라. 

배경이 아닌 스스로 빛나고 싶고 주목받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찬 칼라꽃 더미를 등에 지고...

어둠의 시간을 지나 당당히 삶의 빛으로 걸어 나가리라...     


그의 또 다른 작품 <꽃을 나르는 남자>   flower carrier      

하얀 옷을 입고 노란 멕시코 모자를 쓴 남자가 두 팔을 바닥에 대고 엎드려 있다

거대한 꽃 바구니와 자신을 이어주는 천은 남자의 모자 색깔과 비슷한 노란색이다.

바구니에는 연분홍, 연보라 빛 아기자기한 꽃들이 가득 담겨있다.

남자의 뒤, 여인이 남자의 거대한 꽃 바구니를 받쳐 주고 있다. 

연보랏빛 꽃 무더기가 남자에게는 돌덩이의 무게로 느껴질 것이다. 고뇌하는 남자의 표정.

이미 일상이 된 노동의 흔적, 밥벌이가 신앙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 그림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두 번은 없다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밤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아름답다

(부분 발췌, 중략)     


두 번은 없는 생,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라고 시인은 묻는다

떨어지는 것이 장미인지, 돌인지 결국 별 상관없다고도 말한다. 꽃을 지든, 돌을 지든....

같은 날은 없다는 것. 반복처럼 보이지만 또한 단순한 반복은 아니라는 말이다.

존재하기에 사라질 것이고 사라질 것이기에 아름답다는 명제는 삶을 위한 한마디 압축이라 하겠다.


꽃도 마찬가지다. 존재하기에 사라질 것이고 사라질 것이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거대한 꽃바구니를 등에 지고 있다

그것은 때로 꽃처럼도 보이고 거대한 돌처럼도 보인다.

꽃이든 돌이든 그것을 지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 자신을 짖누르는 고통을 지고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야 한다는 것....

알단 일어나 걷다 보면... 세상에 보이지 않는 손들이 힘겹지만 그 거룩한 노동을 응원해 주리라는 희망을 생각한다.     


깊은 겨울이다.

절기상 대한을 넘겼다. 다음 주부터 맹추위가 온다는데 오늘은 봄의 서곡처럼 햇살이 내리쬔다

알 수 없는 것. 인생도 일기도... 예보란 늘 틀리기 마련인 것...

칼라꽃...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꽃

자기만의 힘으로 대지를 누르고 중력에 저항하는 꽃

칼라꽃을 생각하는 일요일 아침이다. / 려원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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