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그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피어나기 때문.
봉오리
골웨이 키넬(1927~2014)
봉오리는
모든 만물에 있다.
꽃을 피우지 않는 것에게도.
왜냐하면 모든 것은 그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피어나기 때문.
그러나 때로는 어떤 것에게 그것의 사랑스러움을
다시 가르쳐 주고
봉오리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말로, 손길로 다시 말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정말 사랑스럽다고.
그것이 다시금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꽃을 피울 때까지.
프란체스코 성인이
암퇘지의 주름진 이마에 손을 얹고
말로, 손길로 땅의 축복을 내리자
암퇘지가 흙으로 늘 지저분한 코에서부터
먹이와 오물로 뒤범벅된 몸통을 거쳐
영적으로 말린 꼬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길고 육중한 몸을 앞뒤로 전부
기억해 내기 시작한 것처럼.
등허리에 튀어나온 단단한 등뼈에서부터
그 아래 크게 상처 입은 심장을 거쳐
전율하며 꿈결처럼 젖을 뿜어내는
속이 다 비치는 푸른 젖가슴에 이르기까지
그 열네 개의 젖꼭지와
그 아래서 그것들을 물고 빠는 열네 개의 입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길고 완벽한 사랑스러움을.
3월은 봉오리의 시간.. 골웨이 키넬은 봉오리는 모든 만물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꽃을 피우지 않는 것에게도.
왜냐하면 모든 것은 그 내면으로부터
스스로를 축복하며 피어나기 때문이라고
봉오리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말로 손길로 축복하는 일.
프란체스코 성인이 암퇘지의 주름진 이마에 손을 얹고
말로, 손길로 땅의 축복을 내리자 먹이와 오물로, 흙으로 뒤범벅인 된 암퇘지가
자신의 길고 육중한 몸을 앞뒤와 전부를 기억해 내기 시작한 것처럼.
자신의 길고 완벽한 사랑스러움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처럼.
저마다의 봉오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피어날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
누군가 말과 손길로 이마를 어루만져 주기를 기다린다.
틈을 비집고 피어난 꽃들........ 씨앗이 그곳에 정착하기까지, 틈을 뚫고 봉오리를 밀어 올리기까지
누구의 말과 손길의 축복을 받았을까... 3월 햇살은 찬란해도 바람은 거세기만 한데. 제 몫을 다하기 위한 거룩한 몸부림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무언가 뭉툭한 느낌이 다리에 와닿았을 때 깜짝 놀라 바라보니 줄무늬 고양이다.
야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고양이의 눈, 그 눈동자 안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담겼을까?
카센터 앞의 줄무늬 고양이 한 마리. 앞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있다.
시멘트 길과 철골 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고양이, 자기 안에 봉오리를 가진 당당한 고양이다.
길냥이 같아 보이면서도 카센터의 주인 같은 고양이, 표정에 비굴함이 없다.
프란체스코 성인이 고양이의 이마에 말과 손길로 축복해준다면 자신의 완벽한 아름다움을 기억해 내겠지.
봄날.... 저마다 제 안의 봉오리들이 안달을 하는 시기..
무엇을 하는지 모르게 시간이 간다.
시간의 열차에 올라타 목적지를 잃어버린 채 정처 없이 달리고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봄날.
창밖으로 보이는 산에 하얀 꽃들이 피어있다.
이 바람 속에도, 제 안의 봉오리들이 서둘러 봄 날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