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으로 흐르는 시간, 가슴도 초록으로 물들고.. 그 초록 속으로
오늘도 나무 하나가
미래의 바람을 키운다
막막하고 두려운 초록을 끄집어낸다
이근화 <나무 아래 학교>
5월의 푸른 바람이 막막하고 두려운 초록을 끄집어내었다.
사람들이 순한 초록 사이를 걸어간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이, 우리가 함께 가는 이 길이 늘 이러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다툼도, 이념도, 탐욕도, 갈등도 내려놓은 채
그저 나무와 나무 사이 초록의 세례를 맞으며 걸어가는 우리는 나무들의 신전, 거룩한 곳을 향해간다.
판타 레이(panta rhei)..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한 ‘판타 레이’는 만물은 흐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무들이 초록으로 흐른다.
초록 물이 되어, 초록 꿈이 되어, 초록 시간이 되어, 초록 그림자가 되어
해마다 오월이면 성지 순례를 가듯 찾아가는 곳이 있다.
1년 전, 1년 후 그곳의 초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세속의 먼지를 털고 흐르는 초록 아래로 들어간다.
삼삼오오 길을 걷는 순례자들의 머리 위로 초록이 내려앉는다.
초록이 우리를 반긴다. 그 순정한 손을 흔들며
우리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어떠한 추함도 어떠한 탐욕도 내려놓고
온전히 ‘우리’인 채로... 온전히 ‘나’인 채로.... 그렇게 온전히 초록인 채로
< 나무의 수사학 1 > /손택수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
나무는 나의 스승
......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치욕으로 푸른 나무들 사이, 눈이 내렸다.
연두와 연두 위로 내려앉은 5월의 눈송이들
이팝나무 꽃이 흐드러진다. 꽃의 시계란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것을..
변덕스러운 날씨는 하루에도 사계절을 넘나드는데 꽃들은 오로지 제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도로변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릴 법한데도... 참을 수 없을 터인데도.........
이 도시가 가르쳐 준 반어법을 새하얀 눈꽃으로 피워낸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곧 깨닫게 되었지만 나무들은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며 살아가고 있다. 그 자리에서..
세상의 나무들은
무슨 일을 하지?
그걸 바라보기 좋아하는 사람.
허구한 날 봐도 나날이 좋아
가슴이 고만 푸르게 두근거리는
...
-정현종 < 세상의 나무들 > 부분
새들아, 산 하늘들이
나무야, 하늘의 숨결아
너희의 깃을 나는 사랑하고
너희의 가지들을 나는 한없이
사랑하거니와
......
정현종 < 푸른 하늘 > 부분
“ 나와 나 아닌 것, 이것과 저것, 서로 다른 것들이 자기이면서 동시에 자기 아닌 것이 될 수 있는 공간이 시의 공간입니다.” 정현종
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내민 초록 깃털
초록의 수액이 흐르는 나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푸르게 두근거린다고 시인은 고백한다.
5월, 봄의 절정이다.
모처럼 맞이한 연휴지만 새로 시작하려는 일 때문에 마음이 분주하다.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무조건 앞으로 걸어갈 수밖에
거룩한 초록 나무들의 신전으로 들어가듯
겸허하고 겸손하고 성실하게...... 걸어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나무처럼 뿌리내리고.
오늘도 나무 하나가 미래의 바람을 키우고 막막하고 두려운 초록을 끄집어낸다고 하지 않은가
모든 시작은 막막하고 두렵지만
그 보이지 않는 두려움 속에 잠복되어 있는 초록을 끄집어내어 보기로......../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