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굽은 등과 주름진 얼굴과 마디 굵은 손을 기억하며...
"어미", "어머니", "엄마"
같은 의미이나 다른 느낌이다.
어버이날이다. 해마다 5월은 행사가 많은 달. 가정의 달이라는 말이 맞다.
감사할 일도. 챙겨야 할 일도 많다.
엄마가 된다는 것, 어머니가 된다는 것, 어미가 된다는 것..
엄마로 산다는 것, 어머니로 산다는 것, 어미로 산다는 것...
같은 의미인데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엄마인가, 어머니인가, 어미인가.
내 위의 여인들의 계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미의 어미의 어미의
엄마라는 단어는 친구처럼 다정하고 따뜻하다.
어머니라는 말은 어딘지 존중받는 느낌, 거룩하고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
어미라는 말은 사전적 의미로도 ‘어머니를 홀하게 부르는 말’이라 되어있다.
모성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어미’다
누군가의 ‘어미’가 된다는 것은, 누군가의 ‘어미’로 산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찬란한 슬픔일까? 아니면 무거운 기쁨일까? 두 가지 역설의 중간이 아닐까 싶다.
어린 시절.... 살던 들장미 벽돌담이 있던 집.
창고 겸 방치된 작은 부엌 정도로 쓰던 곳에서 어느 날 아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발걸음이 드문 곳이어서 어미고양이는 새끼들을 그곳에 두었었나 보다.
아기 울음소리 같은 고양이 소리를 따라가다가 우연히 그 어미의 눈과 마주쳤을 때
그 강렬하게 쏘아보는 듯한 시선에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그날 어미는 다른 곳으로 둥지를 옮겼다. 온통 밤처럼 검은 털을 지닌 어미가 아기고양이들을 한 마리씩 물고 담을 넘어가고 있었다.....
지금도 느릿느릿 담을 넘어가던 그 어미의 등을 생각한다.
어미란 참 질긴 언어구나.
어미란 말은 슬프고... 벗어버릴 수 없는 천형 같은 단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몸 안에 생명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여인들만의 특권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생명을 지켜내는 일은 어렵고 버겁다.
그 생명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보는 일... 어미의 길이다.
담을 넘어가던 검은 털의 어미는 어떻게 되었을까.... 안부가 궁금하다.
꽃집에 카네이션 화분이 즐비하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사도 드릴 이가 없다.
카네이션 바구니를 보다가 박인로의 ‘조홍시가’ 생각을 잠깐 했다. 반중 조홍 감을 보고도 드릴 이 없음을 설워하는..
하루 종일 라디오에서 어머니 노래가 흘러나왔다.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곡조다.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1941년 석판화 카테콜 비츠
케테 콜비츠(Käthe Kollwitz, 1867~1945)는 근대 독일의 역사 속 고통에 찬 민중의 몸짓을 기록한 화가다.
석판화 ‘씨앗을 분쇄하지 말라(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1942년
"인생에는 유쾌한 면도 있는데 왜 당신은 비참한 것만을 그리는가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정확한 답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만은 명확히 말해 두고 싶다. 나는 처음부터 프롤레타리아의 생활에 동정을 하거나 공감을 했기 때문에 그들을 그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들에게서 단순 명쾌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녀의 삶은 궁핍하지 않았고 유복했지만 어느 순간 그녀의 작품들은 노동자들의 고통과 아픔, 삶에 억눌린 자들을 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들과 손자의 죽음 때문일 수도 있다. 케테 콜비츠는 1차 세계대전에서 아들을 2차 세계대전에서는 손자를 잃었다.
"페터는 절구로 빻아서는 안 될, 씨앗으로 쓰일 열매였다. 그는 뿌려질 씨앗이었다. 나는 씨앗 한 알, 한 알을 뿌리는 사람이며 재배자이다. 한스(차남)는 어떤가. 그는 미래를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으로서 성실히 봉사할 것이다. 그것을 인식한 이래 나는 다시 명랑해져서 냉정을 되찾고 견실해졌다." -
1915년 2월 15일 일기에서
석판화의 작품명을 알기 전에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며왔는데 작품 제목은 더 강렬하다.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품에 감싸 안은 여인, 나이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품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팔을 벌려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여인은 이미 세상의 야만을 알고 있는 표정이다. 쉽게 짓이겨진다는 것을, 의도와는 무관하게 분쇄되고 아무렇지 않게 버려진다는 것을.
여인의 팔은 가냘프지 않다. 여인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두 아이와는 달리 다른 한 아이는 세상에 대해 무지한 시선이다.
무기들 들고 싸우는
전쟁에서만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될까? 1.2차 세계대전의 참혹함이 2025년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모든 현실이 전쟁 같은 곳.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되는 것인데..
카테콜 비츠는 고백한다.
“나는 전쟁을 위해 아들을 낳지 않았다.”라고
살아있어야 할 사람의 부재.
참혹함........
어미의 날이다. 물론 아비의 날이기도 하다.
엄마, 어머니, 어미라는 느낌과 마찬가지로 아빠, 아버지, 아비라는 느낌도 제각각이다.
나는 아빠라는 단어보다 ‘아버지’라는 단어에 익숙한 사람이다. 아마도 그 시절엔 엄격한 아버지상이 강조되는 시대였으니...
‘아비’라는 단어는 어딘지 모르게 비루하고 슬픈 느낌을 준다.
생계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은 절박함이 묻어나는 단어.
오늘은 ‘어미와 아비의 날’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되기에
어미로 살아야 하고 아비로 살아야 하는 날.
찬란한 슬픔과 무거운 기쁨 사이에 멈춰있는 날.
담을 넘어가던 검은 털의 어미고양이 등을 생각하는 밤.
그들의 굽은 등과 주름진 얼굴과 마디 굵은 손을 기억하는 날...‘어미와 아비의 날’이 간다.
1년 단 하루..... 무언가 축하받는 기분을 잠시 느끼는 날.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 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