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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은 돌아오리라.어느날 이 짐승은 잉크에 빠져죽으리라

내 안으로 들어온 곰 한 마리가 불러주는 언어를 받아 적다

< 곰의 이론 1>

비센떼 끼라르떼

책장의 가장 깊은 곳에 잠겨있으면서, 사막에 사는 코브라 같은 편안함을 지녔다. 망각의 충실한 전사로, 바람에 떠는 마지막 솔밭의 쾌락을 짓밟는다. 송두리째 증오뿐인 자기 자신에 지쳐서 마침내 그는 솟아난다, 벌거숭이 배고픔과 날카로운 어금니를 더 불고. 놈처럼 잡식 동물은 세상에 없다. 연필에 붙은 납을 질겅거리며 엄청나게 잉크를 들이켠다. 건반이며 테이프며 남은 것 모두 입술로 가져간다. 말없음표를 트림처럼 내뱉으며 멀어져 간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은유의 똥을 길가에 남기면서. 그러나 그래도 이 짐승은 어딘가 고귀한 데가 있다. 책상 위에 지우개를 남긴다.


시인의 시 속에, 그 어느 책장 속에 숨어 있는 시인의 시혼, 곰 같은 자신감. 모든 것은 다 사막으로 망각으로 가는 길이기에 시인의 열정은 더욱 곰 같아 보인다.

시인은 실패로 끝날 줄 알면서도 그 망각의 자료를 키우는 가장 충실한 전사다. 꼭 시를 써야 하는가. 꼭 예술을 해야 하는가. 꼭 이 부질없는 망각의 여물을 쌓아야 하는가. 자신에게는 자신의 시적 충동에 대한 증오뿐. 기아에 헐떡이는 짐승처럼 연필이며 잉크며 있는 대로 들이마시며 써대는 글들. 그러나 그것은 시인의 생명성의 욕구, 그 알지 못하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인생”이라는 은유가 낳은 똥이나 쓰레기들이기에, 시인의 길은 결국 트림 같은 말없음 표의 아쉬움뿐.

끼라르떼의 ‘곰’은 끝내 어떤 주어진 상징적 의미로 귀결되지 않은 시인의 기운이다. 시 속 곰의 움직임의 상징적 의미는 이미 만들어져 있었던 게 아니라, 오히려 시 속에 시어로 떨어지면서 의미를 요구하는 창조적 상징이다. / 민용태 해설


< 곰의 이론 10 >

비센떼 끼라르떼


처음부터 곰이었다. 곰을 따라 나는 갔다. 나를 따라 곰이 왔다. 곰이 나의 가슴으로 걸어갈 때, 그 발톱이 나의 손 있는 데를 움켜잡았다. 오늘 오후는 짐승의 푹신푹신한 가죽을 양탄자처럼 사용한다. 짐승의 살인 무기는 박물관에 걸린 목자르개 칼처럼 손 하나 데지 않았다. “곰의 가죽을 주려거든 먼저 그 곰을 죽여라.” 나는 모든 무기를 다 갖고 있는 걸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이런 트로피를 믿지 않는다. 마치 사냥에 이기 사냥꾼이 늘 반쯤 채워진 목마름으로 남듯이. 한가운데 날카로운 연필을 못 박아 쓰던 어린 시절의 장난들. 그 곰은 돌아오리라. 그리고 어느 날 짐승은 이 잉크에 빠져 죽으리라.


시인의 살아있음과 그 생명력이 사를 쓰게 한 것이라면 물론 ‘곰’이 나보다 먼저였다. 그러나 말라르메 이후 시인은 자기의 ‘곰’을 죽이고 자기의 감정이나 느낌을 죽이고, 말이 시를 쓰게 하기를 바랐다. 시어를 다듬고 닦고 담금질하고.... 그러나 그렇게 얻는 시도 시인을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이제 시인은 시를 쓰기 이전 그 어린 시절의 꿈과 시혼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곰과 나는 결국 같은 숙명 속에서, 한 잉크 속에서 생사를 같이하게 될 테니까/ 민용태 해설


글을 쓰는 우리 안에 무언가가 있다.

그것을 식물성과 동물성을 모두 지닌 것....

때론 짐승이라 불릴 정도로 야만적이고, 때론 나무, 풀, 꽃이라 불릴 정도로 고결하다.

비센떼 끼라르떼 시의 영혼 같은 ‘곰’... 연필에 붙은 납을 질겅거리며 잉크를 들이켜고, 건반이며 테이프며 남은 것 모두를 입술로 가져가는... 말없음표를 트림처럼 내뱉으며 멀어져 가는 곰.. 처음부터 곰이었고 곰을 따라갔고, 곰이 나를 따라왔고 곰이 나의 가슴속으로 걸어갔다.

시를 쓰기 이전, 시인이라 불리기 이전의 꿈과 시혼을 되찾고 싶은 비센떼 끼라르떼의 마음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 줄기차게 읽었던 책 중 하나가 ‘곰의 동굴’이었다. 저자도 기억나지 않지만 빨간 가죽 표지의 서양 소설집이었다. ‘곰의 동굴’을 읽던 날 밤은 어김없이 곰 꿈을 꾸었다.

거대한 곰을 동굴 속에서 맞닥뜨리는 꿈. 두려웠던가... 뒤돌아 도망치려 하나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못하다가 깨어나는 꿈. 늘 반복되는 꿈이었다.

곰에 대한 글을 읽으면 온종일 곰 생각을 하고 그 생각들은 깊은 밤, 타박타박 꿈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책꽂이와 책.... 아버지가 근무하던 학교 도서관의 거대한 책꽂이들... 어린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몇 권 되지 않은 00 여고 도서관.

햇빛이 거대한 책꽂이 사이로 비칠 때, 거대한 골리앗들의 그림자가 만들어졌다.

책들 사이사이에, 곰들이 있었으리라. 비센떼 끼라르떼처럼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던 곰 한 마리들이

책갈피 사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으리라. 연필 끝에 붙은 조그만 지우개를 질겅질겅 씹다가 검푸른 잉크를 들이마시고 트림을 뱉어내는.... 거대한 곰들.


어린 나는 책갈피 속의 ‘곰’을 만났을까?

아버지는 당시 꽤 신학문이라 할 수 있던 ‘영문학’을 전공하셨다.

문학을 하셨던 아버지... 사실 나는 책과 글을 좋아하는 아이였지만 ‘문학’의 길을 걸으리란 생각은 별로 해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과학도다운 논리와 냉철함이 강한 학생이었다.

어느 날, 글을 쓰고 글이 등단을 이끌어오고, 수상도 하고... 창작지원금도 받아 2권의 산문집을 내었다. 아마도 그것은 내 안의 ‘곰’이 한 일일 것이다.

내 안의 곰을 직접 볼 수는 없다. 다만 진득하고 인내심 강한 곰이 분명하리라...

내 유년시절 아버지가 근무하던 학교 서가의 책갈피 사이에서 뛰어나와 내 가슴속으로 들어왔으리라. 먼 길 돌아... 소위 ‘문학’이라는 부캐를 가질 때까지 곰은 웅크리고 있었을까.

들이마실 잉크도 질겅질겅 씹어댈 지우개도 없는 마른 심장 안에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을까.


아버지는 세상에 없고.... 아버지가 남겨준 거룩한 유산. 책과 글을 사랑하는 마음이 내 안에 ‘곰’ 한 마리를 불러왔다. 곰 한 마리가 불러주는 언어를 타이핑하고 있다.

들이마실 잉크는 없어도... 검푸른 잉크처럼 쌉싸름한 커피를 마실 수는 있다.

책상 위 지우개 가루는 남지 않아도 생각의 편린들은 남아있다.

5월이 간다. 우리는 모두 초록 속에 있다.

우리의 이름은 ‘오월’이다./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산문집/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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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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