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스며 있다. 오월의 초록 속에 죽은 나무를 바라보다
< 나무들 >
- 필립 라킨
나무들이 잎을 꺼내고 있다.
무언가 말하려는 듯이.
새로 난 싹들이 긴장을 풀고 퍼져 나간다.
그 푸르름에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있다.
나무들은 다시 태어나는데
우리는 늙기 때문일까? 아니다. 나무들도 죽는다.
해마다 새로워 보이는 비결은
나무의 나이테에 적혀 있다.
여전히 매년 오 월이면 있는 힘껏
무성해진 숲은 끊임없이 살랑거린다.
작년은 죽었다고 나무들은 말하는 듯하다.
새롭게 시작하라고. 새롭게. 새롭게
산책로에서 죽은 나무를 보았다.
스스로 죽은 나무가 아니라 잘린 나무다.
땅 위로 드러난 뿌리, 여전히 잎은 연초록인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초록으로 번지는 시간
5월. 산책로 입구 드러누운 나무 한 그루.
나무의 죽음을 마주한다..........
새로 난 싹들이 긴장을 풀고 퍼져 나갈 때, 그 푸르름에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있다는 필립 라킨의 말처럼...
초록에는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배어있는 것이 아닐까.
모른 흐름이 중단된 나무. 정교하게 잘린 나무... 잘린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그 참혹함에 마음이 아팠다.
죽음이라는 것이.... 모든 살아있음을 찬미하는 5월의 한 복판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화단을 가꾸는 여인을 보았다. 여인의 정원은 천국처럼 보인다.
빨강 양귀비. 작약...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자잘하고 예쁜 꽃들을 가꾸는 여인.
웅크린 여인이 일어나 허리를 펴고 잠시 하늘을 바라본다.
활짝 웃는 표정보다 입술을 다문채 웃음을 머금고 있는 그 표정을 좋아한다. 절제된... 무언가 남겨둔 듯한
.. 진지해 보이는 그 웃음을.....
여인의 얼굴에서 절제된 웃음을 보았다.
여전히 매년 오 월이면 있는 힘껏
무성해진 숲은 끊임없이 살랑거린다.
작년은 죽었다고 나무들은 말하는 듯하다.
새롭게 시작하라고. 새롭게. 새롭게
매년 5월이면 무성해진 숲은 끝없이 살랑 거리고...
죽은 나무에 붙은 연초록 잎사귀들마저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거린다.
이미 나무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나무... 여전히 나무라 불릴 수 있지만..... 더 이상 나무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드러누운 채 잎사귀들은
새롭게 시작하라고. 새롭게. 새롭게를 외치고 있다.
5월의 중반을 넘어섰다. 나는 무엇을 했을까? 마음만 분주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 잘 해낼 수 있을까...
마음 한편이 부담스럽다.
새로운 곳에 뿌리내리려는 나무를 생각한다. 아무도 곁을 내어주지 않아도 아무도 틈을 내어주지 않아도 나무는 스스로 뿌리를 내려야 한다. 옥토이건 척박한 곳이건...
그 나무의 시작처럼 처음은 그러한 것이라고 위안을 삼는다.... 터를 잡는 일은 숨을 타는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힘들고 버거운 시작일 테니까...
연초록 잎을 훈장처럼 매단 채 죽어있는 나무를 본다.
이 나무도 이곳에 터를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생각한다...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나무는
누워있다. 땅 위로 뿌리를 드러낸 채..
산책로에서 마주한 초록의 죽음... 그 앞에 한참을 머물렀다.
세상을 살다 보면 원하지 않는 일, 바라지 않는 일이 이렇게 갑자기 일어나기도 한다.
나무의 죽음이든.... 그 무슨 일이든.....
경건해지는 밤....... 멀리서 새가 운다.
나무의 죽음을 애도라도 하는 것처럼/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