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건너가기 위해서는 오늘의 밤을 거쳐야 한다는 것

에블린 드 모건 <밤과 잠> 어둠을 밝음을 향해가는 통과 의례

더스티 핑크 옷을 입고 하늘을 나는 여인은 ‘밤’(NIGHT)이다.

그녀가 짙은 갈색 망토로 하늘을 덮으면 어둠이 쏟아져 내린다. 그녀는 이미 반쯤 잠에 빠져든 빨간 두건 청년의 손을 잡고 있다. 청년의 손에는 붉은 양귀비 꽃이 들려있고 그녀가 날아가는 방향에 따라 양귀비 꽃이 아래로 흩날린다. 양귀비는 빅토리아 시대 수면제 혹은 아편의 용도로 쓰였다. 청년의 이름은 ‘잠( SLEEP)’이다.

에블린 드 모건의 1878년 작 < 밤과 잠 >은 신화적 요소를 지니고 있는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작품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움과 순수함... 밤이 내리기 전의 밝음을 조용히 덮어가는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하늘과 땅, 거의 배경은 단순하고 밤과 잠의 구도에만 중점을 둔 작품이다.

에블린 드 모건 (밤과 잠).jpg

애블린 드 모건의 < 밤과 잠>의 구도가 샤갈의 작품 < 도시 위에서> 에도 반영된 듯싶다.

사랑에 빠진 샤갈과 벨라가 하늘을 나는 장면, 샤갈은 뒤를 바라보고 벨라의 시선은 앞을 향해있다. 벨라는 꽃을 뿌리고 있지 않으나 이미 그들의 사랑이 온 도시 위로 쏟아져 내린다.

샤갈은 “우리의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진정한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깔은 바로 사랑의 색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이 도시 위를 날며. 온 도시에 사랑의 색을 입혀주는 것인지도.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사랑이 공기의 저항조차 받지 않고 끝없이 지속되기를 바랐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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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은 벨라를 처음 보던 날 그녀에게서

"그녀의 침묵은 내 것이고, 그녀의 눈동자도 내 것이었다. 그녀는 마치 내 어린 시절과 부모님, 내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고, 나를 관통해 볼 수 있는 것 같았다. “

이런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침묵.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눈동자...

하지만 사랑은 영원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오직 함께 있을 때에만, 오직 살아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


< 밤과 잠> 밤은 어머니이고, 잠은 아들이다. 밤과 잠의 눈은 거의 감겨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는 ‘밤’은 한 손으로는 어두운 갈색 망토를 펼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아들 ‘잠’의 손을 꼭 잡고 있다. 밤은 아름다운 핑크 (정확한 색채로는 더스티 핑크) 색상 옷을 입고 입다. 아들 잠의 손에서 양귀비 꽃이 내릴 때 우리는 잠에 빠져 드는 것일까?

끝없이 앞으로 나아가려는 내일로 건너가기 위해 오늘의 잠과 오늘의 밤을 거쳐야 한다.

이 어둠은 내일로 가기 위한 당연한 통과 의례 같은 것이리라.

결코 놓지 않으며 전진하는.... 심지어 반쯤 눈이 감긴 채로도 앞으로 나아가는 밤의 여인.

밤의 시간을 건너 아침을 맞았다.

그녀의 수고로움을 거쳐 ‘다음날’이라는 거룩한 선물을 받았다.

감겨있던 눈꺼풀이 자연스레 열렸고 부산하게 아침 일과를 시작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티베트 속담 ”당신이 눈을 떠보면 다음날이 아닌 다음 생일 수도 있다 “는 말을 늘 생각하곤 한다.

잉여의 하루가 주어졌다.

9월이 되고 보니 조금은 초조해진다. 계절의 시계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진하는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을 한다... 오늘 밤의 여인과 여인의 아들 잠이 찾아오기 전까지... / 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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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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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르코 문학 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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