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만리장성 걷기 : 아브라모비치와 율라이 >
인연을 찾아 걷기, 헤매기 그리고 돌아서서 다시 걷기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은 춘천에 있는 성심 여자대학교에 출강 하면서 오래전 일본에서 아사코와의 인연을 떠올리며 쓴 자전적 수필이다. 열일곱 살 봄, 시바쿠에 있는 M 선생님 댁에서 유숙하면서 처음 만난 아사코는 성심여학원 소학교 1학년이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의 아사코는 여리고 작은 꽃 스위트피이를 닮았다. 십 년이 더 지난 뒤 다시 만난 아사코는 성심여학원 영문과 3학년으로 피어나는 목련을 닮아있었고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뒤 마주한 아사코는 일본인 2세와 결혼하여 뾰족지붕에 뾰족 창문이 있는 예쁜 집에 살고 있었지만, 시든 백합이 되어있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인연을 생각할 때마다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속 아사코를 떠올리곤 한다. 십 년여의 간격을 두고 만난 아사코의 모습을 스위트피이, 목련, 백합으로 형상화한다. 입맞춤, 가벼운 악수, 무의미한 절. 헤어질 때의 인사도 마음의 거리에 따라 달라졌다. 저자는 세상의 인연을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평생 못 만나는 것과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는 것의 차이는 크다. 저마다의 인생에 못 만나거나, 아니 만나는 인연 한두 개쯤은 누구에게나 있으리라.
나는 가끔 사람들과의 인연을 색으로 기억하곤 한다. 빨강, 검정, 터키블루, 연두, 노랑, 회색, 올리브그린, 오렌지였던 인연......가지를 뻗어 창문을 두드리던 목련이었거나 하염없이 쏟아지던 눈보라 같았던 하양으로, 삭막한 회색 도시의 하늘빛으로, 커피 얼룩이 번진 샛노란 원피스를 커피 빛 노랑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학교 앞 꽃집에서 프리지어 한 다발을 사 들고 기다리곤 했던 짙은 노랑으로, 찬란했던 시간의 흔적은 터키블루 빛으로, 상주가 되기엔 너무 젊었던 그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성큼성큼 사라져 가던 검정으로 인연들을 기억한다.
누군가 나와의 인연을 색으로 기억한다면 아마도 빨강일 것이다. 늘 같은 빨강은 아니었다. 채도와 명도가 그때그때 달라지긴 했지만, 같은 팔레트 안에 머물던 인연들, 우연이든 필연이든 세상을 캔버스 삼아 마구 섞여보던 시간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 인연을 맺고, 맺은 인연을 오래도록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켜켜이 쌓인 인연의 두께, 빛깔, 깊이, 무게가 가슴 속 다양한 색깔과 무늬의 조각보를 완성한다. 인생 연극이 끝나고 휘장이 내려올 때 무대 뒤로 사라지는 배우처럼 인생에도 언젠가는 끝이 오겠지만 인연으로 물든 시간의 흔적을 품고 가는 길은 아름다울 것이다.
흔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을 하는데 옷깃은 저고리나 옷 따위의 목에 둘러대어 앞에서 여밀 수 있게 된 부분이므로 서로 옷깃을 스치려면 상당히 가까운 사이여야 한다. 옷깃을 스치는 인연을 만들려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오랫동안의 만남이 선행되어야 할까? 또 어떤 이들은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려면 전생에 3000번의 스침이 있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3000번이라는 횟수든, 옷깃을 스칠 정도의 거리든 스침과 마주침이 모여 인연을 만드는 것이리라.
수많은 인연 중 배우자와의 인연을 동양에서는 흔히 붉은 실의 인연으로 이야기한다. 중국 당나라 때 이복언이 지은 '속현괴록(續玄怪錄)'에 등장하는 '월하노인(月下老人)’ 이야기가 붉은 실에 관한 가장 오래된 설화인데 월하노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의 붉은 실로 묶어 놓은 남녀는 아무리 원수지간이라 하여도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맺어진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어머니가 다락에 올라 애타게 혼서지를 찾으셨던 기억이 난다. 이승에서의 혼인 서약을 담은 종이를 찾아 먼 길 떠나는 이의 발목에 매어주는 것이 슬픔에 겨운 어머니의 즉흥적 생각이었는지, 당시의 풍속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영화의 한 장면처럼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지상에서의 시간 동안 함께한 이에 대한 예의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함께 갈 수 없지만 붉은 실의 인연을 기억해달라고, 죽어서도 잊지 말라는 의미였을까.
유고슬라비아의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율라이에게는 월하노인이 붉은 실을 묶어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12년 동안 예술적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율라이의 공동 퍼포먼스 < 연인, 만리장성 걷기 : The Lovers. The Great wall walk >는 1980년에 기획하였지만, 허가가 나기까지 무려 8년의 시간이 흘렀다. 1988년 마리나는 중국의 동쪽 보하이만에서, 율라이는 서쪽 고비사막에서 각자 만리장성을 향해 출발한다. 마리나와 율라이는 90일간의 대장정 끝에 만리장성의 한 지점에서 만나 결혼 선언을 할 것처럼 여겨졌는데 서로를 격려하는 포옹을 끝으로 각자의 길을 간다. ‘연인을 위한 만리장성 걷기’가 실제로는 ‘이별을 위한 만리장성 걷기’가 되어버렸다.
이 프로젝트는 국립아시아 문화전당에서 열린 <걷기, 헤매기> 전에 소개되기도 하였다. 천상의 은하수와 오작교를 연상시키는 지상의 건축물 만리장성, 동쪽과 서쪽, 물과 사막, 수많은 계단을 오르고 올라,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될 연인은 인생의 동반자가 되기보다 예술적 동지로만 남기로 결정을 내렸다. 90일 동안 만남의 목표지를 향해 걸으면서 의도하지 않은 이별 퍼포먼스로 막을 내린 것을 두고 사람들은 중국의 허가를 기다리던 시간 동안 이미 그들의 마음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게다가 2020년에 율라이는 돌아올 수 없는 세계로 먼저 건너갔다. 이제 초로에 접어든 마리나가 붉은 실의 인연을 만날 수 있을까. 어쩌면 마리나에게는 붉은 실의 인연이 무의미할 수 있다. 누구보다 자유롭기를 원했던 마리나에게 붉은 실로 연결된 누군가가 있다면 오히려 구속으로 느껴질 테니까.
8년 동안이든, 90일 동안의 일이든, 연인이든 예술적 동지든, 평생의 동반자든 서로에게 인연이란 질기고 무겁고 단단하고 깊은 것임은 분명하다. 인연을 유지하는 일도 인연을 정리하는 일도 늘 어렵다. 그마저도 인연의 몫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함께’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는 ‘따로’로 막을 내렸지만, 마리나와 율라이의 모습은 관계에 대해, 인연에 대해, 삶에 대해 화두를 남겨주었다. 만나게 되리라는 희망을 품고 만리장성을 향해 걸을 때와 짧은 포옹 뒤, 각자의 인생을 향해 걸을 때 두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보곤 한다. 결국 인생이란 인연을 찾아 걷기, 헤매기 그리고 돌아서서 다시 걷기가 아닐까.
사람 사이의 인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미줄 같은 것이 있어 만남도 헤어짐도, 우연도 필연도, 운명도 숙명도 한 거미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내게 온 인연들, 혈연이든, 문우로서의 인연이든, 사제지간 인연이든, 편집자와 작가로서의 인연이든, 행인 1과 행인 2처럼 스치는 인연이든 한결같이 소중하다. 부피와 무게와 질감과 결의 차이일 뿐 우리는 오랜 인연으로 빚어진 공동체다. 거센 눈보라, 한여름의 태양, 쉬지 않고 쏟아 붓는 장맛비, 사계절 들판의 목소리와 거침없이 불어오는 바람의 뼈를 더듬으며 우리는 걷고, 헤매고, 돌아서서 다시 걸으며 끝없이 인연을 만들어 가고 있다. /끝
<빨강 수집자의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12
<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 려원산문집/ 2022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