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리다, 매달려 있다

우리는 날마다 무언가에 그리고 누군가에.. 그리고 생에...

<오래된 끝에서>

....

열매는 꽃에 매달리고 꽃은 줄기에 매달리고 줄기는 뿌리에 매달린다 뿌리는 지구에 매달려 있고 지구는 우주에 매달려 있다 매달린 것을 잊고 매달려 있다


산다는 것이 매달리는 것일까 저 여자의 가슴에 젖이 매달리고 등에 아이가 매달리고 팔에 장바구니가 매달리고 장바구니는 시장에 매달리고 저 여자는 집에 매달려 있다


'매달리다'라는 말에는 오래된 슬픔이 묻어난다 '매달리다'라는 말에는 핏방울이 맺혀있다 ' 매달리다'라는 말에는 굴욕의 기미가 있다 ' 매달리다'라는 말에는 ' 솟구치다'의 그림자가 매달려 있다 그 끝에 거꾸로 솟은 종유석이 자란다


매달리는 것은 추락을 견디는 것 오래 바람을 견디는 것 길게 휘어지는 촉수를 말아 안고 잎사귀 뒤 나뭇가지 끝에서 잠을 청한다

- 우남정 시인 -


산다는 것은 결국 매달리는 것일까?

나는 무엇에 매달려 있을까?

어쭙잖은 자존심에, 은폐된 슬픔에, 왜곡된 지식에.... 시간과 공간에...

세상의 모든 여자와 남자는 매달려 있다.

각자의 등에 짐을 지고... 그 짐을 내려놓지도 못하다가....

어찌어찌하다가 마침내는 등에 진 짐에 매달려 평생을 살아간다.


시 속의 저 여자가 집에 매달린 것처럼....

집.... 그것은 모든 가능성의 산실이면서 모든 동면의 꿈같은 곳.

'매달리다'라는 말에는 오래된 슬픔이 묻어난다 '매달리다'라는 말에는 핏방울이 맺혀있다 ' 매달리다'라는 말에는 굴욕의 기미가 있다 ' 매달리다'라는 말에는 ' 솟구치다'의 그림자가 매달려 있다 그 끝에 거꾸로 솟은 종유석이 자란다


매달리는 것은 추락을 견디는 것

시인은 얼마나 오랫동안 매달려보았을까.

시인이 매달려본 공간과 매달려온 시간. 시인은 시에 매달리고 종이장에 매달리고...

눈물에 매달리고...



매달려본 사람만이 안다. 매달리는 것은 필사적으로 추락을 견디기 위함이라는 것을...

‘매달리다’라는 말에는 핏방울이 맺혀있고, 굴욕의 기미가 들어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솟구침의 그림자가 숨어있다는 것을.

당신과 당신, 우리는 서로에게 매달려 있다.

달아나고 싶어도 매달려 있다.

굴욕과 모욕, 견딜 수 없는 슬픔을 품고.. 그럼에도

동그랗게 몸을 말아 매달려 있다 보면

어느 절벽 끝에서 달콤한 꿀 한 방울 입안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어느 순간 희망의 소식이 전해오지 않을까.

산다는 것은 결국 매달려 있는 것이다.

어쩌면 매달려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이 누구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시인의 시를 보면서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매달리며 살아가는 것이 삶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매미는 날아가고 허물만 남은...

그 노을빛 허물은 나무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었다.

깊은 어둠 속 7년의 언어를... 버리지 못하고 끝내 매달리고 있었다.

바람 앞에서도 눈보라에서도...


누군가의 부고가 카톡으로 들어온다.

매달려 있던 누군가가

오래 매달려 있던 끝에서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10월이다. 가을비 내린다. 먼 산이 젖어있다. 저 산은 또 어디에 매달려있는 것일까?

떨어지는 빗방울은 하늘에 매달린 손을 놓아버린 것. 비의 부고 같은 것...

오늘 하루. 나는 또 어디에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일까.

매달려 있음에

매달려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한 날이다. 손을 놓지 않음에........../려원


<빨강 수집가의 시간> /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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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학 개론을 읽는 시간>/ 수필과 비평사/ 려원 산문집/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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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아르코 문학나눔 우수도서 선정

2023 원종린 수필문학상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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