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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준성 Dec 21. 2018

ep5. 우주선을 갖고 싶었다

#공간의 미학

내가 음악에 꿈을 품은 후로 가장 좋아하는 프로듀서 한 명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페럴 윌리암스 일 것이다. 신선한 미니멀 사운드와 진보된 감각의 면모를 잘 보여준 음악가였고 아직도 현업에서 활발히 좋은 작품들을 많이 보여주는 프로듀서이다. 어릴 때 유명 프로듀서의 작업실을 볼 때면 나도 언제 가는 꼭 저런 작업실을 갖겠다고 마음먹었었다.  


어릴 적에 지금은 많이 사라진 '음악 하는 형들' 작업실을 놀러 갔을 때도 난 항상 부러웠었다. 알 수 없는 기계들 사이에서 의자에 걸터앉아 작업을 하는 모습은 흡사 우주선의 조종사 같았다. 나도 그런 우주선을 가지고 싶었다. 오로지 음악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 그러한 공간을 너무도 갖고 싶었고 간절히 바랐던 탓인지 나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고 30평 정도의 작업실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약 11년 정도가 걸렸던 거 같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인생의 빅 이벤트를 겪으면서 애정 하던 작업실을 정리해야만 했다. 집과 회사, 그리고 작업실까지 왔다 갔다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집, 회사, 작업실 간의 거리는 2km가 채 안되었지만, 내 행동 패턴과 시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나는 잘 알고 있었기에 작업실을 유지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주선을 집으로 가져올 계획을 세웠다. 먼저 나의 영원한 동반자에게 양해를 구했고, 와이프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그녀는 음악을 위한 우주선이 나에게 단순한 취미생활이거나 여흥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전혀 반대의견 없이 진행되었다. 그 대신 베란다에 바 테이블을 설치해주고 인조잔디를 깔아서 카페처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안방은 와이프 마음대로 꾸며도 좋다고 우리는 합의했다. 


유전자가 참 무서운 게 내 아버지도 집에 우주선 같은 공간이 있다. 내가 기억이 나지도 않을 만큼 어릴 적에 아버지는 전파사를 하셨고 지금 아버지의 우주선 안에는 신기한 기계들이 즐비해 있다. 

나의 우주선


공간이 사람에게 차지하는 의미는 꽤 크다. 우리가 지저분하다고 느끼는 돼지도 넓은 우리 안에서 생활하게 한다면 구역을 나눠서 용변과 식사와, 잠을 자면서 청결히 생활한다고 한다. 빡빡한 일상 속에 작은 우주선 하나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그게 작은 쪽방이거나 거실을 파티션으로 나눈 공간이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몰두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라면 모든지 상관없지 않을까?


드라이브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동차를,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주방을 나만의 우주선이라고 생각하고 애정하고 가꾼다면 그 안에서 생산적이고 좋은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오지 않을까?


조종을 못하면 어떠리
그냥 우주선이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 멋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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