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트 함에 반항하다
일본 여행을 준비할 때
난 한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30분 간격으로 빡빡한 일정과 천 원 남짓의 교통비까지 예산에 넣어서 계획을 짜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나에게 피곤하게 산다고 말하지만, 난 내가 하는 일들을 도식화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어서 피곤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내 계산에 의해서 발생하는 수학적 증명, '딱 떨어짐'에 재미를 느끼는 편이었다. 물론 가끔 그렇게 얻어진 값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무튼 타이트한 계획을 그대로 이행하면서, 나와 내 동료들은 순조롭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고 놀랍게도 계획한 예산을 벗어난 범위는 5천엔 이내로 부드럽게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그건 배려가 몸에 배어있는 나의 친구들의 덕이라 생각한다. 친구들에게 떠나기 전 여행 스케줄을 결제받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독단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웃으며 이해해 주는 친구들을 보고 난 인복이 많은 편이라 생각했다.
이후에 다른 친한 친구와 세부를 놀러 가게 되었다. 세부를 갈 때 같이 간 친구는 나름 여행을 많이 다녀본 친구였다. 그 친구는 공항에 플립플롭(쪼리)을 신고, 민소매 티에 반바지를 입고 왔었다. 나도 그저 트레이닝복 차림이었기 때문에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우리가 만난 장소가 인천공항인지, 인천 약수터 인지 착각할 정도였다.
나 또한 내 여행 스타일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세부 여행은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뭘 먹고 뭘 하고 놀지 계획은 전혀 없었고, 그냥 현지에 도착해서 인터넷으로 세부에 대해 찾아보거나, 외국인과 채팅하는 SNS에서 필리핀 사람들에게 무엇을 먹을지 물어보고는 그것을 먹으러 다녔다.
옷도 백팩에 두벌 정도만 가지고 갔고,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노트북도 가지고 가지 않았으며, 비행기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지만, 대성리를 가는 기분이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세부 여행은 매우 만족이었다. 세부를 놀러 갔을 때 난 그렇게 빡빡한 여행 체질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특별한 것을 추구하지 않았고 그냥 편하게 여행을 즐기다 올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나에게 음식을 추천해준 친구와 난 아직도 좋은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친구가 생겼고, 이것이 여행의 묘미 아닐까 싶다.
요즘 들어 드는 생각은 이렇다. 어떠한 일을 하나 두고, 치밀하게 계획을 하던, 계획을 하지 않던 같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두 가지 상황의 결과를 누구도 동시에 확인해 볼 수 없으니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가 없다. 비슷한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해보면, 특정한 일에서는 계획을 세우나, 안 세우나 비슷한 결과를 가져왔었다. 특히 여행이 그랬다.
즉, 내가 조금 느슨하게 사는 것이, 누군가 보기에는 혹은 나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불안한 삶을 사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정작 결과적으로는 삶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시간을 낭비하듯 살면 안 되겠지만, 계획을 세우느라 하려는 일을 지체하는 것이 더 시간낭비 일수도 있다.
치밀하게 집중해야 할 상황이 있고, 그렇지 않은 상황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을 잘 가려내는 것은 본인의 몫일 것이다. 난 되도록이면 느긋하게 늘어질 생각이다.
쌓는 것보다는 내려놓는 법이 더 중요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