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지키는 일

by 여노노

옴팡지게 앓아 보니 알겠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거슬림이 없는 건 중요하다. 온몸에 거스러미를 주렁주렁 달고 까무룩 눈을 감는 육체는 이곳에 두고, 영혼은 자꾸 해야 할 일을 상기한다. 대본도 봐야 하고, 읽어야 할 책, 영화, 드라마도 한 무더기 남아 있다.

달갑지 않은 특별함이 끼어들면 불안이 가장 먼저 고개를 든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출근해서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하고 정갈하게 앉아 글을 쓰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평범함을 놓쳤더니, 열이 펄펄 끓어 이불 밖으로 나올 엄두도 내지 못한 하루에는 죄책감이 서려 있다. 오늘 하루 만이야, 아픈데 어쩌겠어, 합리화를 하면서도 그랬다. 정말 말 그대로 어제 '하루'뿐이었는데, 내가 사라지는 공포에 휩싸인다. 그 잠깐으로 어디 하늘로 솟거나 꺼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도 밀려드는 감정의 파도에는 죄의식이 자리한다. 어쩌면 예상보다도 훨씬 더, 자신을 지탱하는 건 루틴인가 보다. 나의 고군분투는 자신을 지키는 선택이었나 보다.

과거엔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꼭 여행을 다니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붙였다. 실제로도 여행을 좋아했다. 그러나 전염병으로 근 삼 년간 하늘길이 막혔음에도 희한하게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여행을 즐기던 때엔 어느 누구도 쉽게 선택하지 않는 여행지를 고르곤 했는데, 그 시절 여행이 좋았던 건 순수하게 그 행위를 선호했다기보다 타인보다 앞서나갔다는 우월감이란 불순한 의도가 섞여 있었음을 고백한다. 여행을 가지 않아 보니 알겠다. 여행이, 이직이, 결혼이 막연했던 이유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아서였다. 변화는 일상에 활력이 되기도 하지만 위협이기도 하다. 애써 안정되어 있는 잔잔함에 파도를 일으킨다.

어른이 되면 보수적이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설핏하게나마 이해해 본다. 가진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 큰 위험을 감내하기보다는 현재에 만족하는 것. 몸살로 욱신거리는 목덜미와 등허리에는 겁이 자리해 있다. 사라짐이 왜 이렇게 두려운지 자신에게 반문한다. 무엇이 악착같이 방어하게 만드는지 심연을 바라봐 본다. 이 마음을 달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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