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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축가 이준호 Mar 06. 2019

12. 아시시를 여행하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다, 이탈리아 12편

 아시시는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다양한 높이의 길들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다. 경사가 가파르고, 차가 지날 수 없을 정도로 좁은 길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집은 자동차로 문 앞까지 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언덕배기에 좁은 골목길로 연결된 오래된 마을들이 제법 있다. 사람들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그대로 간직한 이런 마을들이 불러일으키는 향수와 오래된 것이 갖고 있는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가급적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주민들은 대부분 그런 움직임을 크게 반기지 않는다.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이 된 요즘 시대에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언덕 위 마을의 현재 구조를 유지하자고 하는 것은 순전히 현실을 전혀 모르는 '외부 시선'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 최근 도시의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낡고, 오래된 것을 잘 보존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도 중요하다.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어려운 문제이다.


 이제야 오래된 것, 시간이 쌓인 것의 가치에 주목하는 우리에게 아시시는 오랜 도시와 건물을 그대로 잘 보존하고,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참고해야 할 도시지만, 도로와 수도 등의 기반시설의 중요성을 알고 있던 로마가 계획한 도시라는 점에서는 우리가 따라 할 수 없는 도시이기도 하다.

Street of Assisi

 오르막의 경사는 차가 다닐 수 있는 정도다. 이 정도의 도로는 아시시에서도 꽤 넓은 편에 속한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에서 성문으로 이어진 길이어서 마차가 다닐 수 있어야 했기 때문이리라.


Porta San Giacomo, Assisi

 뒤쪽으로 로마 성벽의 흔적이 보인다. 성문의 꼭대기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인상적이다. 적의 침략으로부터 도시를 지키기 위해 튼튼하게 지어져 지금까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있는 것일 테지만, 꼭대기에 당당하게 서 있는 나무에서 아시시의 평화가 지속된 시간을 짐작할 수 있다.


Street of Assisi
Street of Assisi

 1층을 골목으로 내어준 것인지, 길 위에 집을 연결한 것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런 풍경은 아시시의 상징과도 같다. 1층 골목을 지나면 또다시 나오는 1층 골목, 길과 건물이 말 그대로 유기적이다.


Street of Assisi
Street of Assisi
Street of Assisi

 좁은 길임에도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고 있다. 심지어 인도가 양쪽으로 있다. 길이 더 좁아지면 인도가 줄어들지만, 높이차가 없기 때문에 상황에 맞춰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인도 위에 차를 세워 놓기도 하고, 차도로 사람이 다니기도 한다. 인도에 차를 세웠다고, 차도로 사람이 다닌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길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

 구분을 넘어서는 자유로움이 우리의 길에는 언제쯤 입혀질까?


Street of Assisi

 좁고 가파른 골목길들은 이 도시를 탐험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막다른 길도 있고, 낮은 동네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아래로 내려가는 골목 계단 벽에 있는 성인의 그림 앞에 놓인 작은 화분이 회색빛 골목을 밝게 해주고 있다.


Top view of Assisi

 아시시의 가장 높이 있는 골목을 걷다 보면 저 너머 시원한 움브리아 평원이 보이는 곳이 있다. 회색빛 벽돌로 둘러싸여 삭막함이 느껴질 때쯤 만나는 오아시스이다. 같은 색의 벽돌과 기와 너머 보이는 푸른 평원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Street of Assisi
지하도 같은 아시시의 골목길

 오래된 골목길과 경사로, 지금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법한 도시의 모습이 우리의 골목길과 겹치면서 살짝 질투가 났다. 이 길은 지금까지 잘 남겨졌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지켜질 것 같지만, 우리나라의 골목길은 머지않아 대부분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까울 따름이다.


숨은 맨홀 찾기, Assisi
숨은 맨홀 찾기, Assisi

 길은 사람과 차가 지나다니기만 하는 곳은 아니다.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다양한 것들이 길을 통해 우리에게 온다. 수도, 하수, 전기, 도시가스 등 그 사회가 제공하는 기본적인 서비스들이 그것이다. 그래서 길 위에는 그것들을 점검하는 곳인 맨홀이 여러 개 존재한다. 아시시의 맨홀은 바닥 형태를 해치지 않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바닥 포장 패턴이 바뀌는 경계에 바닥과 같은 재료로 자리하고 있다. 언뜻 보면 맨홀이 있는지 모르고 지나칠 수 있다. 사실 맨홀을 어디에 만들지는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맨홀 만드는 것까지 그렇게 신경 쓰면서 어떻게 일을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을 꼼꼼하게 챙긴 결과는 꽤나 중요한 장면을 만든다. 이 길에 있는 맨홀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고, 바닥과 전혀 다른 재질로 되어 있다면 이 길이 이렇게 차분하고 정돈된 느낌을 줄 수 있을까?


Street of Assisi
Street of Assisi

 이 길의 1층은 저 길의 지하가 되고, 이 길의 2층은 저 길의 1층이 된다. 경사지형 때문에 생기는 독특한 구조다. 덕분에 윗길로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 그 가파른 길을 마주하고 있는 집도 그 길에 맞게 만들어져 있다. 같은 길에 있는 서로 다른 세 개의 문 높이가 제각각이다.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 좁고 어두운 골목의 끝에 또 다른 작은 골목이 이어진다.

Street of Assisi

 당연하게도 아시시의 골목을 다니기 위해서 차는 소형일 수밖에 없다. 경찰차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SUV처럼 큰 차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성벽 바깥쪽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넓은 길로 되어 있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굳이 소형차를 고집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Street of Assisi

 가파르게 오르는 계단의 끝 터널 같은 골목을 너머로 윗길이 보인다. 어떤 곳은 계단의 경사로 높이차를 극복하지 못해서 길의 끝에 나선 계단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모두가 높이차를 극복하려는 시도이다.

Uprise and Spiral, Assisi

 평원 너머로 지는 해가 아시시를 노랗게 물들인다. 도시의 서쪽 끝에 있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이 가장 먼저 석양을 맞이해 준다. 산자락에 만들어진 한계 때문에 생기는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아시시는 도시와 마을 그리고 건축이 어떤 자세로 환경을 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가 아닐까 한다.

Sunset, Assisi
Basilica di San Francesco d'Assisi
Night of Assisi

 코무네 광장으로 가는 길의 밤은 상가에서 켜놓은 조명으로 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너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조명들과 산타 마리아 미네르바 소프라 성당이 아시시의 밤거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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