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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WT Jun 25. 2022

빨가면 맛있어 vol.1

텃밭 감자 요리 : 감자 에그 샌드위치

주부 5년 차, 아직도 초보주부


감히 말하자면 여태까지 감자 요리를 한 횟수를 새어보면 적어도 백번은 넘을 것이고, 감자를 제 손으로 직접 골라 산 경험도 수십 번은 족히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빨간 감자를 사 본 적은 없습니다. 빨간색 감자가 존대한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왔죠. 사실 시장이나 마트라는 공급처에서 소비자인 제게 주는 선택지 속에서만 살다 보니, 큰 고민 없이 그냥 노란색 감자만이 감자라고 받아들이고 살았던 것 같네요.


이번에 제가 수확한 하지 감자는 빨간 감자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모르지만, 텃밭을 빌려주신 친구 아버님 말씀에 따르면, 빨간 감자가 더 맛있는 감자라고 하시더군요. 게다가 제가 제 손으로 키운 감자이니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을 것만 같았죠. 빨간 감자 맛의 궁금함을 뒤로한 채 집으로 오자마자 흙이 잔뜩 묻은 감자를 깨끗이 씻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먹일 생각에 물에 깨끗이, 그것도 여러 번 씻고 있을 때였습니다.


"깨똑!, 깨똑!, 깨똑!"



바보라니. 엄마한테 바보라는 소리 참 오랜만에 들은 것 같네요. 그것도 그럴 것이 어려서 시골 농사를 지으며 살았던 엄마에게는 감자 농사가 새로울 리 없습니다. 하지만 감자 농사가 생전 처음인 제게는 모든 게 새롭기만 하고요. 엄마 눈에는 그런 제 실수가 정말 어처구니없을 수 밖에요. 엄마와 카톡을 주고받고 나니, 저조차도 실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씻으면 저장할 때 저장성이 떨어지는구나.' 새삼 깨닫고, 냉장고를 열어 시장에서 사다 놓은 감자 봉지를 열어보았습니다. 역시나 감자는 묻은 흙과 함께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매일같이 감자를 씻어 먹었으면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바로 씻어버린 제 잘못입니다. 엄마 말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더니. 저도 우리 딸에게 자다가도 떡을 내려 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은데, 저는 아직 한참 멀었구나 싶습니다.



감자 에그 샌드위치


다음날 가족여행을 앞두고, 아이들과 함께 가볍게 점심으로 먹을 메뉴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른 게 빨간 감자였습니다. 사실 '바보'같이 흙을 다 씻어버리는 바람에 감자를 오랫동안 저장할 수 없게 되었으니, 빨리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물론 있었습니다.



감자를 냉장고에서 꺼내어, 알이 작은 감자는 알감자조림용으로 딱 맞을 듯싶어 따로 빼두고 비교적 알이 큰 감자를 골라냈습니다.



계란과 함께 감자를 삶았습니다. 빨간 감자의 맛이 궁금해서, 삶자마자 하나 꺼내서 껍질을 벗겨 먹어보았죠. 잘 익은 감자의 맛이었습니다. 감자보다는 고구마를 편애하는 제게도 먹을만한 맛이었습니다. 포크 하나를 집어, 감자와 계란을 으깨고, 그 밖의 부재료들을 볼에 넣고, 맛있게 섞었습니다.



유통기한 넉넉한 식빵을 사 와, 빵 안에 감자를 듬뿍 발라 샌드위치를 만들었습니다. 빵 하면 뗄 수 없는 흰 우유 한잔과 함께 차려놓으니, 간단한 점심으로 안성맞춤이더군요. 과연 내일 아이들도 잘 먹어줄까? 딸아이는 이 요리가 자기가 직접 캔 감자로 만든 걸 알면 어떤 기분이 들까? 아이의 표정이 몹시 궁금해지네요.


이 밭은 친구 아버지께서 아무 욕심 없이 제게 사용할 수 있도록 베풀어주신 선물입니다. 아버님께서는 어쩌면 가지고 계신 크나큰 밭의 일부분을 조금 떼 줬기에, 큰 의미가 없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집 근처에서 텃밭이라는, 우리 가족의 새로운 공간을 일궈나갈 수 있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고요. 누군가의 베풂을 받아서인지, 샌드위치를 더 만들어 이웃집과 나누고 싶어졌고, 그렇게 했습니다. 나눔은 하면 할수록 물질적으로는 빈약해질지 몰라도, 심리적으로는 풍요로워지는 신기함 힘을 가지고 있지요. 어쩌면 이런 나눔의 매력 때문에 요즘 당근 마켓도 자주 애용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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