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주, 화요일
안녕이 있으면 이별도 있다 하던가요?
마치 인생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이 말에 이제는 익숙해 질만도 한데
내 작은 친구(아이)와의 이별엔,
특히나 갑작스러운 안녕 소식에는 칼날에 베이는 듯 가슴을 부여잡게 됩니다.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감정. 그 이름, 이별입니다.
어린이와 선생님의 관계로 만나는 이 공간에서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서로 원해서 시작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대부분은 엄마의 손에 이끌려 만남이 시작되고
그렇게 시작된 관계는 어느새 익숙함이, 익숙함은 정이 되고, 정은 사랑이 됩니다.
아이와 선생님의 관계는 계약서도, 약속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함께 지내며 즐겁게 웃고, 때로는 우는 매일의 기록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관계에 갑작스러운 이별이 찾아옵니다.
먼 곳으로의 이사로, 아니면 다른 원으로..
어제까지 함께 웃던 우리는
하루 전 이별을 통보받고 빈자리를 바라봅니다.
의자의 빈자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함께하던 공간의 온도와 리듬이 달라지는 순간입니다.
함께 했던 아이의 목소리, 눈빛, 손길이 아직도 곳곳에서 느껴지는데
그 어린 친구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은 마음을 준비할 틈도 없이 찾아오고,
남겨진 아이들과 선생님은 그 부재를 온전히 감당해 내야 합니다.
"00는 왜 안 와요?"
"이제 다시는 못 보는 거예요?"
그 질문 속에는 불안과 슬픔,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상실이 담겨 있습니다.
선생님도 같은 마음입니다.
어제 손을 잡고 웃던 아이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을 받아들여다 한다는 것은
단순한 이별을 넘어 마음속 깊은 상실과 감정의 균열이 일어납니다.
부모의 손을 잡고 왔던 아이는,
그렇게 부모의 또 다른 선택으로 이별을 남기고 떠나갑니다.
때로는 마지막 인사도 없이...
이별은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한 감정입니다.
그만큼 깊이 사랑했고 마음을 나누었기에
떠나는 그 시간이 아픈 것입니다.
부모님의 바람대로,
아이는 또 다른 곳에서 사랑을 받고 나누겠지요.
만남의 선택도,
이별의 선택도 온전한 자기의 것이 아닌 아이를 바라보며
우리는 늘 언제 올지, 언제 갈지 모르는 작은 그들 앞에서
짝사랑을 할 운명의 사람들인가 봅니다.
그래도 그래도..
우리는 늘 다짐을 합니다.
내 사랑 온전히 너에게 주겠노라고.
유아기 아이들은 이별을 '사라짐'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예고 없는 이별은 정서적 혼란과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아이의 애착 형성과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선생님은
아이의 감정을 억제하거나 회피시키기보다 감정을 함께 느끼고, 그 감정을 안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보고 싶을 수 있어"
"그 친구가 없어서 속상하지, 선생님도 그 친구가 보고 싶어."
이런 말들은 아이의 감정을 정당화하고 자기감정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됩니다.
또한 갑작스러운 이별 이후에는 일상의 안정감을 회복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약속된 루틴, 따스한 교실분위기, 그리고 선생님의 일관된 모습은 아이에게 심리적 안전지대를 제공합니다.
이별을 마주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어쩌면 상실감과 혼란의 감정일 아이에게 관계의 지속성과 감정의 수용을 배우게 합니다.
* 갑작스러운 아이와의 이별 앞에서 나는, 선생님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요?
* 이별 이후, 나는 남겨진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보듬어 주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