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주, 금요일
소금에 절여진 배추가 이젠 숨이 죽었나.
틈이 날 때마다 찾아가 상태를 살피는 아이들의 시선이 분주합니다.
한 명이 확인할라 싶으면 쪼르르 이어지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마치 아기 새들 같습니다.
그런 조바심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해결책!
배추가 준비되는 동안 우리는 양념 만들기에 돌입하기로 합니다.
먼저 우리들의 먹거리 위생을 위해 손 씻기는 필수입니다.
둘째, 빨간 양념이 묻어도 괜찮을 어두운 계열의 옷을 입고 등원했지만 이 역시 위생을 위한 앞치마와 머릿수건을 필수입니다.
셋째, 우리들을 위한 전용 칼이 필요합니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 한다고 우리들의 전용 칼은 단단한 플라스틱 재질. 울퉁불퉁 재각각 굵기의 무채가 완성되는데 필요한 주요 도구입니다.
먼저 선생님의 시범이 있습니다.
커다란 도마에, 커다란 무를 놓고 커다란 칼로 싹둑.
동그란 원기둥들이 차례대로 탄생합니다.
원기둥을 세워 칼이 스칠 때마다 또 다른 모양의 무가 탄생합니다.
'오도독오도독' 선생님의 맛보기는 표정에서 시작하여 무 씹는 소리만으로도 입맛이 다져집니다.
하얀 무를 먹기 좋게 썰어 친구들 입속에 쏙쏙쏙..
모두들 입을 벌리고 기다리는 모습들이 역시나 아기 새들 같습니다.
이번엔 무채를 써는 시범을 보이고, 우리 친구들도 그들만의 작은 칼로 무채를 썰어냅니다.
큰 그릇에 모인 무채들은 마치 하얀 눈이 쌓인 들판 같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손길로 만들어낸 무채를 바라보며, 이제 곧 배추와 만날 순간을 상상합니다.
고춧가루, 새우젓, 멸치액젓, 마늘, 갓, 간 배 가 모여 양념이 완성되길 기다립니다.
하얀 옷을 입었던 무들은 어느새 빨간 옷을 입기 시작했고 교실에는 매운 내음이 퍼집니다.
양념 맛이 어떤가? 또 한 번의 선생님 시식이 시작됨과 동시에
"나도 먹어볼래요" 여기저기서 들리는 모험정신.
'스읍~ 스읍~' 맵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표현되는 아이들의 의성어에 웃음이 납니다.
이제 드디어 절인 배추가 옷을 입기 시작합니다.
배추의 결들을 하나 둘, 들추어 붉은 옷을 입히고 하얀 속살이 물들어가는 과정에 창작자가 되어 그들만의 배추가 완성됩니다.
배추가 숨 죽기를 기다리는 시간, 무채가 붉게 물들어 가는 시간, 선생님의 시식이 끝나고 자기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모든 순간은 아이들에게 기다림이 곧 배움임을 알게 합니다.그리고 드디어.
약속처럼 '수육'이 등장합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기에 우리가 갓 담근 김치를 얹어 먹는 맛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긴 기다림 끝에 맛보는 따스한 한 점은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어려운 것일지도 모릅니다.
김장을 담그는 과정은 아이들에게 기다림이 곧 배움임을 알려주는 따스한 수업이 됩니다.
소금에 절여진 배추가 숨 죽기를 기다리고, 무채가 붉게 물들어가며 양념이 스며들어 맛이 깊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듯, 아이들의 발달 역시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배추가 준비되기를 조급하게 바라보던 아이들은 무를 썰고 양념을 만드는 활동으로 마음을 달래며 기다림을 다른 배움으로 전환합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요리 활동을 넘어 자기 조절을 배우고, 차례를 지키며 협력하는 법을 익히며, 오감을 통해 인지적 호기심을 확장하는 발달의 장이 됩니다.
선생님의 시범을 지켜보고 자신들의 작은 칼로 무채를 써내는 경험은 관찰과 모방, 시도와 실패를 통해 학습이 이루어지는 발달의 본질을 드러냅니다. 양념이 완성되기를 기다리며 매운 내음을 맡고, 차례가 오기를 기대하는 순간은 감정 조절과 사회적 기술을 배우는 시간이 됩니다. 마침내 배추와 양념이 만나고, 약속처럼 수육이 등장하는 순간 아이들은 기다림이 성취와 만족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경험합니다.
발달심리학에서 말하는 ‘발달적 성숙’처럼, 아이들은 내적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새로운 기술과 개념을 받아들이며 성장합니다. 선생님이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려줄 때,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배움을 내재화하고, 그 과정 속에서 존중과 신뢰, 사랑을 경험합니다. 결국 김장이 맛있게 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듯,
교육도 결과를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아이가 자라나는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일입니다.
오늘의 김장과 수육은 아이들에게 기다림이 곧 성장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따뜻하고 풍성한 배움의 장이 됩니다.
ㅣ 기다림을 통해 아이들이 성취감을 느끼도록 돕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ㅣ 기다림이 아이의 일상 속 작은 배움으로 이어지려면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