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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이어 Jan 24. 2024

뒤집기 지옥

제발 누워줄래?

태어난 후 100일이 되면 100일의 기적이 온다는 말이 있다. 새벽수유를 하고, 새벽마다 수시로 깨던 아이가 100일이 되면 통잠(아침까지 쭉~자는 잠)을 잔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엄마들은 100일의 기적이라고 부르더라. 물론 100일의 기적이 오지 않는 아이가 더 많다고 한다. 우리 아이에게도 그 기적은 찾아오지 않았다.

여전히 새벽에 분유를 찾았으며, 여전히 수시로 잠에서 깼다. 물론 신생아 때에 비하면 좀 더 자기는 했으나 새벽에 깨야하는 입장에서는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없어져야 할 모로반사(아직 근육조절이 미숙한 아기들에게 나타나는 현상. 팔을 끌어안듯이 번쩍 들어 올리는 데 아기 스스로 놀라서 자다가 깨는 경우가 많다.)도 없어지지 않아서 자다가 놀라 깨는 일이 빈번했다. 그렇다고 싸개로 싸놓으면 힘이 어찌나 강한지 답답하다고 다 벗어던지는 통에 어떻게든 안아재우는 수밖에 없었다.

언젠간 얘도 통잠을 자겠지~하며 버티는 수밖에는 없었다.




통상 태어난 지 4개월쯤이 되면 아기가 뒤집기를 하게 된다. 누운 상태에서 엎드린 상태로 스스로 뒤집는 것이다. 워낙에 발차기도 많이 하고 터미타임도 좋아하는 아기라서 금방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눕히면 대자로 누워서 전혀 뒤집기를 시도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살짝 옆으로 높길래 엉덩이를 밀어줬더니 뒤집기가 됐다. 여기서 뭔가 깨달은 걸까? 뒤집기 시도를 하기 시작했다. 시도해도 뒤집기에 성공하지 못하니깐 간절한 눈빛을 내게 계속 보내는 것이 아닌가. 뒤집어달라는 무언의 신호였다. 몇 번인 가 뒤집어 주다가 애써 다른 데 관심 두는 척을 해보았더니 스스로 끙끙대다가 드디어 혼자 뒤집기에 성공했다!


왠지 내가 다 뿌듯한 느낌이었다. 아이가 인생에 있어 처음 도전하고 성공한 일이 아니던가. 아이도 그랬던 것일까, 워낙에 등센서가 심한 아이라 눕는 게 싫어서 그랬을까. 아이는 이제 시도 때도 없이 뒤집기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 때의 나는 그것이 지옥의 시작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의 뒤집기 사랑은 낮에도 밤에도 계속되었다. 눕혀서 기저귀를 가는 것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기저귀 가는 일이 세상 힘든 일이 되었다. 아이는 이제 절대로 누워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모빌도 엎드려서 고개를 치켜들고 보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는 귀여운 일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밤에도 계속 뒤집는다는 것이었다. 자야 하는 데 계속 뒤집어서 엎드려 있었다. 엎드려서 자는 아기들도 있다니까 그대로 자기를 바랐건만, 고개를 뻣뻣이 치켜든 채로 고개를 누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겨우 재우면, 자다가 갑자기 뒤집고는 혼자 놀래서 울어댔다. 밤새도록 수시로 뒤집어서 깨고, 겨우 재우면 또 깨는 '뒤집기 지옥'이 시작되었다. 또 하나의 큰 걱정은 '영아돌연사'였는데, 영아들이 이유 없이 갑자기 죽는 것을 영아돌연사라고 한다. 그중 큰 원인은 푹신한 베개나 이불 등에 파묻혀서 숨을 쉬지 못해 죽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엎드려서 재우는 것도 권장하지 않는데 자다가 갑자기 뒤집고 그러니까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뒤집기 지옥은 우리 아이만의 일은 아니고 되집기(뒤집은 상태에서 다시 눕는 것)를 하게 되면 괜찮다고 해서 되집기만을 기다렸다. 보통 되집기는 뒤집은 지 1~2개월이면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아이는 되집을 생각이 아예 없었다. 조리원에 있을 때부터 등센서가 남달랐던 아이. 그러니까 등 대고 눕는 걸 너무 싫어하는 아이였다. 그런데 스스로 뒤집을 수 있게 되니 얼마나 신났겠는가. 다시 누운 상태로 되돌아가는 게 싫은 것이었다.


어느정도였느냐 하면 다시 되집어 눕혀 주려고 하면 빠떼루자세로 버티는 것이었다.

레슬링 기술 빠떼루(par terre)

소아과에 영유아검진을 갔는데, 의사가 뒤집기 하는 거 확인 후 되집기 도와주려고 했더니 역시나 빠떼루자세로 아이가 버팅겼다. 아이의 버팅기는 힘에 의사도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겨우 5개월짜리 아이가 안 뒤집겠다고 버티는 게 귀엽고 웃기고 엄마 입장에선 참 힘든 일이었다. 가장 힘든 건 역시나 새벽이었지만 말이다.

신생아 때보다도 더 힘든 시간이었다. 수시로 일어나 아이를 다시 재우고 되집어 주는 일은 쭈욱 계속되었다. 아이는 2개월이 지나도 되집지 않았다. 3개월이 지나서야 마음껏 혼자 되집으며 뒹구르며 잤다. 눕는 걸 너무 싫어하는 아이다 보니 남들보다 길었던 지옥이었다.


뒤집기 지옥과 함께 시작된 지옥이 한 가지 더 있었으니 바로 토지옥이었다. 수유하고 눕히기만 하면 뒤집으니 배가 눌려서 계속 토하는 것이었다. 역류방지쿠션은 더 이상 쓸모가 없었다. 역류 방지하려고 눕히는 곳인 데 그냥 뒤집어서 계속 토하니 빨아도 더 이상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 토 범벅쿠션이 되어버렸다.


뒤집고서는 신나 하는 모습을 보면 이 모든 힘든 마음이 싹 가시는 게 가장 신기했다. 스스로 뒤집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어찌나 좋았으면 저리도 신나 할까 말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지옥을 만들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지만 이런 게 바로 육아 아닐까?

정말 힘들지만, 그 힘듦을 뛰어넘을 정도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 말이다. 외동이 많아지고 있다지만, 생각보다 둘 이상의 아이를 갖는 집이 많다. 낳지 않더라도 여건만 되면 낳겠다는 부모들도 많고, 둘째를 낳으려고 시험관시술까지 하는 집들도 있다. 그만큼 출산과 양육에서 오는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이다. 둘째를 또 생각하게 되는 이유기도 하다.

저출산 대책이라며 쓸데없는 정책들에 세금낭비하지 말고 결혼을 할 수 있는 사회 아이를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는 사회로 만드는 것이 먼저 아닐까.



육아에 드디어 적응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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