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테이션 도실게요~
아기가 드디어 4개월이 넘어가면서부터는 패턴이 잡히면서 육아에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작은 울음에도 안절부절 쩔쩔매던 쌩초보엄마는 이제 졸업이었다.
신생아시기에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잠이었다. 밤에 잠을 잘 수 없는 것, 밤새 쭉 잘 수 없고 쪽잠을 자야 하는 것이 내겐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제발 4시간만 연이어서 쭉 자는 게 소원일 정도로 말이다. 여전히 새벽에 종종 깼지만, 그래도 토닥토닥해 주거나 팔베개를 해주면 다시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새벽수유도 1번만 하면 되니 신생아 시절에 비하면 수면의 질이 한결 나아졌다. 물론 이것도 뒤집기 지옥에 들어서면서 쉽지 않았지만 그래로 신생아 시절에 비교하면 훨씬 나았다.
엄마 품에 안겨야만 자던 낮잠도 누워서 잘 수 있는 날이 늘어났다. 이렇게 재울 수 있는 방법은 내 아이디어로 찾아냈다. 결국 아기는 엄마를 찾아야 안정감을 느껴서 잠에 들 수 있는 것 아니던가. 바디필로우 안겨서 옆으로 눕히기, 엎드려 재우기, 그냥 울리기 등등 인터넷 속 선배부모들의 팁을 모두 적용해 봤지만 우리 아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내가 찾아낸 방법은 바로 '엄마가 덮던 이불로 포근하게 감싸주기'였다. 아기가 졸려할 때 눕혀서 이불 덮어준 후에 태블릿으로 백색소음까지 틀어주면 스르르 잠에 들었다. 처음 성공했던 날 쾌재를 불렀다. 안아줘야만 자는 통에 혼자 뭐 하나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누워 자니 드디어 낮에 나만의 시간이 생겼다. 이 날을 어찌나 기다렸던지.
분유 먹는 시간, 기분 좋은 시간, 낮잠 자는 시간, 밤 잠자는 시간이 어느 정도 패턴이 잡혀서 일정해졌다. 물론 사람인데 당연히 칼같이 이 시간엔 뭐 하고 정해진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예측가능해지니 육아가 훨씬 수월해진 것이었다. 초보 부모가 쩔쩔매며 힘들었던 건 예측 불가한 상황이 아니었을까. 애는 우는데 대체 뭐 때문에 우는지 모르니 그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신생아시기보다 잘 자고, 분유 먹는 텀은 길어졌지만 깨어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기가 심심해했다. 이유 없이 칭얼댈 때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심심하다는 신호였다. 처음엔 안아 들고 이방 저 방 구경시켜 주면 참 좋아했다. 단점은 하루종일 안고 돌아다니기엔 엄마의 체력이 힘에 부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하나 둘 육아용품을 구입하면서 왜 요즘 부모들이 "육아는 템빨"이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템빨이라는 말은 게임용어에서 시작된 말인데 게임 속 아이템을 좋은 아이템(특히나 유료의 비싼 아이템)을 장착하게 되면 게임이 효율적이고 쉬워지는 데에서 시작된 말이다.
처음시작은 국민모빌로 불리는 유명한 음악이 나오며 자동으로 돌아가는 모빌이었다. 아이가 이렇게 좋아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도 좋아하는 것이었다. 잘 안 웃는 아기였는데 까르르 웃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이것도 하루종일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템빨의 맛을 알게 된 나는 하나 둘 '국민육아템'을 들이기 시작했다. 잠깐밖에 못쓰니 꼭 중고거래로 장만하라는 선배엄마인 친구의 조언에 따라 중고거래를 통해 집을 채워나갔다.
아기는 이제 아침 일찍 일어나 낮잠을 하루 세 번 1시간 정도씩 자고, 그 이외에는 깨어있었다. 분유 먹는 시간은 워낙 잘 먹는 아이라 5분 컷이었다. 그렇게 아기와 놀아주기는 하루의 큰 일과가 되었다. 아기가 졸려할 때까지 장난감과 놀이 순회를 돌게 되었다. 하루의 시작은 아기가 가장 좋아하는 모빌이었다. 아기도 눈빛으로 원하는 것을 표현했다. 아침에 분유를 먹고 나면 모빌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모빌
→아기체육관
→터미타임
→바운서
→쏘서
이렇게 로테이션을 돌았다.
이렇게 하면 오전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는데 문제는 오후시간이었다. 나도 아기와 그냥 있다 보면 심심하니 심심한 아이를 위해 다양한 놀이를 하게 되었다.
두부, 미역, 당근 등 식재료를 활용한 촉감놀이, 아기욕조에 물 받아 물놀이, 스텐쟁반놀이, 플라스틱 통 놀이, 휴지놀이, 공병놀이, 까꿍놀이, 책 읽어주기 등을 했다. 책 읽어주기는 구강기 아이가 종이를 자꾸 먹으려고 해서 결국 포기했고, 촉감놀이는 치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나중에 문화센터로 대체했다. 특히나 촉감놀이를 해주고 싶었던 이유는 내가 촉감에 예민한 편이라서였다. 어릴 때 그래서인지 편식이 굉장히 심했고 우리 아이는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보통의 사람들은 '편식 조금 하면 어때'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정도가 매우 심했어서 모든 일상생활이 스트레스였었다. 우리 아이는 그러지 않기를 바라면서 힘들어도 촉감놀이는 해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오후시간을 보내다 보면 나는 지치고, 아이는 심심해 칭얼대는 순간이 다가왔다. 그러면 나는 목이 빠지게 남편을 기다렸다. 왜냐면 신기하게도 칭얼대거나 심하게 울던 아기가 아빠가 나타나는 순간 울음(칭얼거림)을 뚝 그쳤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나 혼자만 감당해야 하는 시간이 아니게 되는 것이 그리도 반가울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물론 힘들게 회사에서 일하다 온 사람에게 쉬지도 못하고 아기 봐달라, 목욕시켜 달라, 집안일 좀 해달라고 하는 것이 많이 미안했지만, 나 역시 지쳐있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남편은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갈 수 있지 않던가.
아기를 돌보는 육아라는 것은 생각보다 자유를 억압당하는 느낌이 있었다. 온종일 엄마를 찾는 아기와 떨어질 수 없고, 한눈을 팔기도 어려웠다. 그러니 많은 엄마들이 산후우울증, 육아우울증을 겪는 것이 아닐까. 다행히도 나는 나의 이런 어려움을 이해해 주고 배려해 주는 남편 덕에 큰 우울증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내가 혼자 있는 시간, 사람과의 대화가 없는 시간을 잘 견디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들은 아기와 둘이 있는 시간들을 견디기가 힘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종종 들고는 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아기와 단둘이 온종일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사람과의 대화가 없는 하루를 온종일 보낸다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육아가 너무 힘든 사람들에게 나는 육아를 일종의 '육성게임'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제안해보고 싶다. 보통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여자들도 육성게임 즉 키우는 게임은 즐기는 경우가 많다. 아기의 행동을 관찰하고, 아기가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한 모습을 보다 보면 나름대로 아주 재밌다. 그게 쌓여서 1주일, 한 달이 되면 더욱 성장한 아기의 모습을 보며 뿌듯함도 커져나간다.
돌 전 육아의 꽃 이유식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