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처도 그러려니
그날은 돌잔칫날이었다.
내 아이의 돌잔치.
마지막 관문 같았다. 정신없이 상견례하고 결혼하고
임신하고 태교여행 다녀오고 출산하고
백일잔치 해주고..
사회 관념상 그리고 개인적인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누구나 하는 마지막 관문.
그래서 더 신경 썼다.
회사는 육아휴직 중이기도 했으니
시간이 조금 더 생겨 선물들을 포장하고 이벤트들을 생각했다.
퀴즈는 뭘 내면 좋을까?
말도 못 하는 아이에게 혼자 물어도 보고
오랜만에 분주하게 준비했다.
돌잔치 날
한복은 결혼식 때보다 더 마음에 들었고
아이는 컨디션이 좋았다.
부모님들과 친척들, 회사사람들까지 생각보다 많이 와주셨다.
친정엄마, 아빠는 조금 늦게 오셨고 뒤이어 삼촌들, 고모들까지도 참석해 주셨다.
정성스러운 선물포장과 준비한 이벤트들에 모두 다 좋아해 주셨다.
한 시간 동안의 행사와 식사는 모두 잘 마쳤다.
모든 미션을 성공한 것 처럼
끝판왕을 깬 것 같은 후련함이었다.
그리고 그 며칠 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 엄마"
"아.. 빠.. 암 이래."
"응? 무슨 암?"
"폐암..."
"어떻게,, 언제.. 알았는데?"
"건강검진받았는데 큰 병원 가보라고 전화 와서 큰 병원 갔는데 거기서 폐암이라고 이라고 나왔어."
"다.. 퍼졌어.."
"오늘 결과 나온 거야?"
"아니.. 너.. 돌잔치하기 이틀 전에."
"응..?"
얼떨떨해져 있는데 엄마가 말했다.
"그래서, 그날 친척들 다 온 거야. 아빠 얼굴 본다고.."
"그럼 다 알고 있었어, 왜 나한테는 말 안 했어?"
"너 돌잔치하는데 기분 괜히 안 좋게 하지 말자고 해서.. 그래서.."
"아.. 그렇구나.... 어.. 알았어 엄마 끊을게.."
멍해졌다.
그날... 가족들은 다 알고 있었다.
나는 재밌다고 내 아들 1년 잘 키웠다고 자랑하던 그날에
아빠랑 친척들, 거기 있던 사람들 1/4은 아빠의 암을 알고 있었다.
아빠가 얼마 못 사실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빠는 그날 잘 웃지 않았다. 아이를 안아주지 않았다.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그날도,
난 울었었다.
돌잡이까지 하고 행사 마무리에 사회자가 하객들에게 한 마디씩 하라고 할 때,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1년 동안 키우느냐고 힘들었는데 이런 날이.. 오니"
.. 하면서 감격의 눈물인지, 그동안 흐른 시간들의 무게 때문인지, 눈물이 났다.
결혼식의 신부가 주인공인 것처럼
돌잔치의 엄마가 주인공인 것 마냥 나는 그날
기쁨의 눈물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빠의 암소식을 듣고
나왔던 눈물은 단순한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하염없이 바보같이 느꼈던 눈물이었다.
후회였고,
값싼 눈물을 흘린 나에 대한 미련스러움이었다.
겨우, 1년 아이를 키우고 스스로 기특해 우는 딸,
갑작스럽게 1년도 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을 받은 아빠.
누가 더 울고 싶었을까...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나는 마음이 아리다.
아빠의 눈빛과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엄마의 표정을
그리고 세상을 다 살아본 것 마냥 울고 웃던 나의 순간들이 생각나서.
아빠 미안해.
나만 몰랐어. 내가 젤 늦게 알았어.
그날.. 그렇게 우는 게 아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