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태릉국제스케이트장
할까 말까 고민을 한다는 건 아직 기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뭔가 선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럼 고민하지 말고 그냥 좀 해야 해요.
생뚱맞게 겨울도 다 지나고 꽃이 피는 시점에 시작한 스케이트 강습. 얼떨결의 선택이었지만 벌써 3개월 차 수강 중입니다. 엉금엉금 얼음에 서지도 못하던 시작이 벌써 혼자 트랙에 올라서는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주말을 이용한 강습이라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던 기간이었지만 많은 걸 느낀 시간들이었습니다. 단지, 아쉬운 건 얼음 관리를 위한 휴장 기간이 발생해서 다들 어리둥절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다들, 한창 뭔가를 해보려던 참인데...
얼음에 어떻게 서지? 어떻게 뾰족한 신발을 신고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 걸을 수가 있지? 심지어 몸의 중심을 옮겨가며 얼음을 탄다는 것! 상상하기 힘들었고 과연 나도 가능할까 의구심 가득한 채 시작했었습니다. 멋모르고(겁도 없이) 시작을 했으니 당연히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하지만 횟수를 반복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배우는 어느 시점, 처음에 넘어지거나 나중에 넘어지거나 순서와 횟수만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떻게만 다를 뿐 처음 하는 것에는 누구나 반복해서 실수하고 넘어집니다. 당연합니다. 때문에 결과가 나쁠까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고 다 비슷하게 지나가야 하는 과정이니까요.
기간이 지나고 조금 더 자세가 익숙해져서 몸이 기억하기까지는 누가 기본기에 충실하냐, 자세의 안정성을 갖추느냐의 문제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이 되면 결국 다 거기서 거기, 비슷해집니다. 속도는 아주 더 나중 문제입니다. 아마추어는 누구나 프로의 98%를 흉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머지 2%가 달라서 아마추어와 프로가 구분되는 거라는 강사님의 말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작은 숫자 안에 엄청난 차이가 단단히 응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개인의 피나는 노력이 몽땅 집약되어 만들어내는 완성도의 차이라 생각됩니다.
추가로 하나 더, 처음 크게 한번 넘어진 후 겁을 먹고 정해진 것 외 선뜻 새로운 자세 시도를 못하는 제 모습을 보아 버렸습니다. 소심하게... 몸이 잔뜩 긴장해서, 정해진 것만 하고 생각도 정해진 것만 하고 마는 건 아닐까 슬쩍 걱정이 되자 정신이 번쩍 들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해보겠다고 하면서 안전한(?) 상태로 배운 것만을 하려는 이상한 행위, 참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옵니다. 기회가 보이고 할까 말까 선택의 기로에 있다면 그냥 일단 좀 하기로 합니다! 선택지가 있어 고민을 한다는 건 배부른 고민이지만 기회가 있었음에도 결국 그저 아무것도 못하고 맞는 순간은 그야말로 비극입니다. 그땐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겨우 3개월을 배우고 난 후의 장황한 소감이지만 큰 소득은 자신김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직 뭘 배워도 좋은 나이라는 안도와 그나마 아직 할 수 있는 건강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겁니다. 의외로 몸도 쓸 줄 알고 있다는 것과 정확하게만 배우면 모든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는 것. 생각보다 겁낼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몸으로 직접 체험한 것입니다. 휴장이 지나고 나면 다시 재수강을 할 것이고 계속 얼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나는 스케이팅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생각과 달리 스스로 몸이 할 수 있는 것에 제한을 너무 많이 두었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는 할 수 있으면 그냥 해야겠습니다. 최소한 몸을 움직일 때만이라도 스스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 좋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몸에 적용해보려 합니다. 드디어 트랙에 서지 않았는가!
좀 이상하지만 휴장을 앞둔 마지막 강습 즈음 이제야 스케이트를 구매해 장착해 봅니다. 사람마다 발 모양이 달라 안정적으로 더 쉽게 적응이 된다는 걸 몰랐었습니다. 아, 스케이트를 혹시라도 배우고 싶다면 반드시 자신의 스케이트화로 배우길 추천합니다. 역시 운동은 장비발입니다. 보기 좋으라고 좋은 장비로 으쓱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운동을 위해 필요한 장비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습니다. 안되던 자세가 되고 안정적인 자세가 잡힙니다. 3개월간 한여름 더위를 뚫고 유목민처럼 빙상장 투어를 해야 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