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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uwriting Feb 21. 2024

올해부터 삼재라는데?

삼재라서 뭐? 그게 어때서?


삼재_년 三災年  
명사  사람이 태어난 해를 십이지(十二支)로 따져 삼재의 불운이 드는 해. 사(巳)ㆍ유(酉)ㆍ축(丑)년 생은 해(亥)ㆍ자(子)ㆍ축(丑)년에, 신(申)ㆍ자(子)ㆍ진(辰)년 생은 인(寅)ㆍ묘(卯)ㆍ진(辰)년에, 해(亥)ㆍ묘(卯)ㆍ미(未)년 생은 사(巳)ㆍ오(午)ㆍ미(未)년에, 인(寅)ㆍ오(午)ㆍ술(戌)년 생은 신(申)ㆍ유(酉)ㆍ술(戌)년에 삼재가 든다고 한다.


운運   
1. 명사 이미 정하여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天運)과 기수(氣數).
2. 명사 어떤 일이 잘 이루어지는 운수.

- 표준국어대사전


" 엄마, 나 올해부터 삼재래"


"??? ... ?"



뜬금없이 삼재랍니다. 삼 년 간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러느라 우물쭈물 시간만 보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12개의 띠 중 하나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 12개의 띠들은 주기에 따라 반복적으로 삼재년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살아본 경험으로 볼 때, 어차피 인생은 매번 조심하고 살피며 살아야 한답니다.






무슨 핑계를 대고 싶은 건가?


살면서 바람 부는 날씨처럼 요동치는 순간이 자주 옵니다. 둥둥 떠다니는 꿈 앞에 성공보다 실패가 더 자주 등장합니다. 가끔은 자신의 탓이 아니길 바랍니다. 다른 이유가 있길 바라고 그 이유를 그 누구도 탓할 수 없길 바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또 자신의 삶에 운이 따라주길 바랍니다. 자신의 능력과 그 외의 다른 능력을 운에서 찾고 싶어 합니다. 그래야 실패를 해도 마음이 덜 상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린 가끔 핑계가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운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삼재를 믿지 않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살면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삼재라는 것! 그것에 얽매여 또 다른 핑계를 찾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람을 조심하고, 물을  조심하고, 불을 피해야 하고, 낯선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고심해야 하고...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제약이 우리 삶을 제한하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 사실 살다 보면 물도, 불도, 사람도, 차도 늘 조심해야 하고 새로운 시작이나 새로운 방향으로 삶을 바꿔보려 할 땐 충분한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요? 결국엔, 그저 당연한 소리일 뿐입니다.







삼재와 운을 얼마나 믿으시나요?


살면서 처음 점을 보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전 심리검사나 여론조사의 설문을 진행하다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감이 잡히면, 심통 맞아서 그런지 반복된 질문 속에서 일부러 요리조리 원하는 답을 피해 가곤 합니다. 크게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에 점은 더더구나 볼 일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의외로 요즘 젊은 층들이 꽤 많이 다니는 듯했습니다.)과 재미 삼아 우연히 보러 간 곳이었는데, 사주를 알려주고 가만히 그냥 앉아만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씩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말해 주더군요. 음 그럴싸하네? 그런데... 그리곤 제가 아무 말을 안 하고 질문이나 반응이 없으니 더 이상 진행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분의 점술이 시원치 않았던 건지, 제가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아서 말문이 막힌 건지 알 수 없지만, 주역을 바탕으로 한 것을 하나씩 읊으며 조심할 것도 알려주고 좋은 것도 추켜세워주며 흥이 나야 하는데 도무지 묵묵부답이니 점을 보시는 분은 흥이 바닥에 떨어집니다. 끝은, 말년에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는... 그냥 웃고 나왔습니다.



삼재는 살면서 계속 옵니다. 오고 가고, 세월이 가듯 그렇게 반복합니다. 누구든 가장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살아온 날도, 살아갈 날도 모두 자신을 속 깊이 들여다보면 현재의 상태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예상과 달리 갈 수도 있지만 그건 모든 것이 그렇듯 당연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 약간의 운이 따라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매일의 삶은 실든 좋든 스스로가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 문득 발견하는 행운의 클로버와 포춘쿠키가 말해주는 달콤한 예측들, 타로카드가 보여주는 앞날의 시간들, 동서를 막론하고 사람의 마음은 모두 같아서 어딘가에서 희망을 찾고 싶어 합니다. 시류의 하니이겠지만, 우린 왜 자꾸 어딘가에, 어떤 것에 기대려고 할까요? 핑계가 필요한 걸까요? 의지할 것이 필요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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