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학자가 숫자를 바라보는 방법

by 경규승

숫자를 자주 바라보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어릴 적부터 수를 좋아했고 표와 그래프를 읽어나가는 것 자체를 즐기기도 했다. 왜 좋아했는지 그 시작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숫자가 주는 명확함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숫자는 최대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했다. 개인의 편향된 경험을 경계를 넘어서 공감할 수 있는 세상을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은 수를 바라보더라도 개개인의 해석은 다르다. 같은 수를 바라보더라도 개개인의 경험이라는 필터를 통과한 의미는 다를 수 있다. 세상을 해석하는데 객관적인 도구인 숫자를 이용했기에 객관적으로 판단한다고 오해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주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십상이었다. 나 역시도 숫자를 통해 세상을 주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원하는 질문을 숫자로 대답을 받기 용이해진 세상이다. 그러다 보니 숫자에 접근하기 용이한 사람들에게 권력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숫자를 찾는다. 숫자는 객관적이라는 인식을 이용한다. 나 역시도 무의식 중에 숫자의 권위를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수가 내재한 의미를 찾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스스로 세상을 수를 통해서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이를 잘 표현하고 설명해서 공감을 얻고 싶다. 또한 수에 대한 다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가장 싱크가 잘 된 상태로 받아들이고 싶다. 세상을 이해하고 싶다.




수를 통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데 방해가 되는 본능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아래 해당하는 본능이 작동할 때, 세상을 왜곡해서 바라볼 수 있다고 인지한다면 사실에 충실하게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간극 본능: 한 집단을 이해할 때 극과 극을 비교해서는 안된다. 집단은 스펙트럼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 스펙트럼의 끝과 끝 부분보다 중간영역에 훨씬 많은 구성원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좌와 우를 단순히 나눌 수 없다. 두 가지로 집단을 나누어서 생각하기는 정말 쉽다. 하나가 아니면 다른 하나라고 편하게 사고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 혹시 그런 프레임을 누군가가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수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파악해 보라.


부정 본능: 좋아지는 것보다 나빠지는 것에 민감하다. 손실회피편향이다. 부정적인 것은 자극적이다. 주식 가격이 하락하는 뉴스와 상승하는 뉴스 어느 것이 많을까? 숫자를 비교해 보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다. 세상의 점진적 성장은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


직선 본능: 성장하고 있는 추세는 언제까지 지속되지 않는다. J-curve를 그리며 성장하는 기업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하지만 지금까지만 그럴 수도 있다. 언제까지나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가용 자원은 한정적이다. 하지만 가끔 우리는 이 당연한 사실을 잊고 지내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무시하기도 한다. 직선은 생각보다 세상에서 발견하기 힘들다. 직선을 발견하거든 다른 경향성의 일부라고 의심해보자.


공포 본능: 두렵다는 감정과 위험한 정도는 관계가 없다. 위험성은 실재 위험한 정도와 노출빈도와 관계가 있을 뿐이다. 감정은 편향된 선택을 강요한다. 두려운 감정에 휩싸인 상태에서는 결정을 유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스스로의 감정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크기 본능: 큰 숫자는 본능을 자극한다. 2017년 대한민국의 음악 수출액은 5억 달러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역시 음악이 한류를 대표하는 것일까? 아니면 방송일까? 음악은 해당 연도 콘텐츠 수출액 비중에 5.8% 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그럼 가장 큰 비중은 무엇일까? 게임이다. 67%나 된다. 2017년 자료니까 작년이랑 올해에는 BTS 때문에 다를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 조금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게임을 넘지는 못한다. 큰 숫자를 볼 때는 비율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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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 본능: 한 곳에서 먹혔던 방식이 다른 곳에서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한국 시장에서 효과가 있었던 제품이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하리라는 것은 너무도 안일한 생각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안다. 하지만 우리는 왜 그리도 다른 사람의 성공방정식을 찾으려고 할까? 분명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벤치마크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성공한 그 방법이 일반적인 방법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세상 어느 사람 한 명 같은 맥락의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나의 성공 방정식이 다른 사람의 성공 방정식이 될 수 없다.


운명 본능: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가끔 듣는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 관점에서 불편한 문장이다. 사람을 도구로 생각한다는 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 불편하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매일 만나는 사람은 변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를 돌이켜 보자. 1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많은 부분 다르다. 사람이 변한다면 문화도 마찬가지다. 문화도 변하고 국가도 변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


단일 관점 본능: 망치를 가지고 있으면 모든 문제는 박아 넣어야 할 대상인 못으로 보인다. 머신러닝, 딥러닝을 익히고 나서 대부분의 문제를 이 도구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단순한 것이 더 나은 경우도 있었다. 텃밭 가는데 굴삭기를 사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전문가의 의견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는 특정 영역의 전문가일 뿐이지 다른 영역에서는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다. 전문가라는 권위를 이용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가짜 전문가가 활동하기 편한 요즘 더욱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비난 본능: '문제를 책임지고 사퇴하다.' 문제를 회피하고 사퇴하는 것이 더 맞는 문장이 아닐까? 사퇴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문제가 일어난 시스템은 그대로라 재발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때 또 사퇴하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누군가를 비난하는 것은 가장 쉬운 해결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일어난 시스템은 변화가 없고 심지어 해결되었다는 착각에 반성할 기회마저 잃어버린다. 문제는 의도한 사람이 없어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다급한 본능: 촉박하게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서는 시야가 좁아진다. 그럴 때일수록 데이터를 확보하자. 홈쇼핑의 마지막 10개 상품, 오늘 PT를 신청하면 +2회 추가와 같이 빠른 선택을 강요한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정말로 기회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유를 가지고 살펴보면 대안이 생각보다 많다. 홈쇼핑 상품이 다 팔리더라도 다시 쇼핑몰에 올라온다. PT를 오늘 신청 못하더라도 다른 곳에서 PT를 해도 된다. 만약에 제한된 시간이 지나고 나서 꼭 그곳에서 하고 싶다면 기존 서비스보다 조금 비싼 가격만 지불하면 된다. 길게 볼 때 이게 절약하는 길이다. 더 영악하게 행동하자면 최초 헬스장에서 제시한 프로모션 기간이 지났다 하더라도, 내가 정말로 필요하다고 결정했을 때 다시 동일 조건으로 제시하면 된다. 예전에 +2회 해준다고 했는데 그대로 해달라고 요구해보자. 나중에 협상해도 괜찮다, 급할 것 없다. 상황에 주도권을 가진 상태에서 선택하도록 하자.


이상 10가지 본능을 인지하면 우리는 세상을 사실에 더 가깝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학교에서 배운 비판적 사고의 일부이다. 하지만 본능을 이겨내고 사고하는 습관을 가지기는 쉽지 않다. 사실에 근거한 사고의 틀과 사실과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법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사실에 충실하게 사고하려면 두 가지 태도가 도움이 된다.


첫 번째. 겸손이다. 본능적으로 사실을 안다고 결론 내어버리지 않고 사실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나의 무지를 인정한다.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의 의견을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이 바뀌었어.'라고 말해도 괜찮다. 또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에 내 견해를 가지지 않아도 괜찮다.


두 번째, 호기심이다. 새로운 정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내 경험과 부합하지 않더라도 사실이라면 이해하려 노력해보자. 나 이외의 사람들도 나만큼 똑똑하다. 왜 그런 방법으로 해결했는지 살펴보면 내가 모르는 세상의 지평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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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면 분명 세상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로 전환될 것이다.




Reference.

팩트풀니스 - 한스 로슬링

gapminder.org

한국콘텐츠진흥원 - 2018 콘텐츠산업 통계조사 (일반배포용)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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