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의 방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나는 처음 보는 친척들의 품에 안겨 오래도록 울었다.
그들이 하나같이 나를 불렀다.
.
“미야…” -경상도에서 흔히 부르는 이름의 끝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마음이 툭 무너졌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다시는 누군가 나를 그렇게 불러줄 일이 없을 줄 알았다.
엄마와 외할머니, 내 인생에서 ‘미야’라는 이름은 두 사람만의 것이었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만난 친척들은 나를 여전히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이름이 다시 살아 돌아온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외할머니와 친구처럼 지냈다.
성격이 참 많이 닮았다.
밝고, 화통하고, 말이 많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무엇보다 꾸미는 걸 좋아했다.
“할매 구찌베니 바르는 거 봐라.”
할머니는 빨간 립스틱을 꼭 바르고, 분칠을 하고, 머리를 곱게 말고, 내 손을 잡고 장에 가시곤 했다.
바느질 솜씨는 또 얼마나 좋으셨던지.
내 옷 원단을 살짝 떼어다 치수를 재고,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만들어주셨다.
엄마가 바빴던 어린 시절,
그 정성 가득한 손길로 나를 키워주셨다.
나를 “미야~”라고 부르며 이마를 짚고,
등을 두드리며 웃던 할머니.
엄마가 투병하던 시절에도
“미야는 우예 살고 있노…”
걱정에 걱정을 더하던 그 따뜻한 시선이
지금도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반짝인다.
엄마가 난소암 수술을 받은 날,
마취에서 깨어난 엄마는 무의식 중에 이렇게 말했다.
“엄마 보고 싶어…”
그 엄마가 찾던 엄마.
바로 외할머니였다.
엄마와 외할머니는 애증의 관계였다.
같이 있으면 다투고, 떨어지면 보고 싶고.
두 사람은 서로에게 엄마이자 딸이었고,
또 어쩌면 인생의 짐 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다 알고 있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외할머니는 큰아들 내외와 시골로 들어가셨다.
평생 도시에 살며 사람과의 관계를 좋아하셨던 분이,
큰외삼촌의 손에 이끌려 친구도, 나들이도, 마트조차 갈 수 없는 산골로 들어간 것이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외할머니는 외로웠고, 우울증을 앓았고,
그렇게 천천히 고립되어갔다.
큰외삼촌은 어린 시절 알게 된 외할아버지의 외도에 분노를 품고, 평생 가족을 증오하며 살아왔다.
그 화살은 결국 외할머니에게로 향했다.
욕설과 폭력, 협박.
심지어 엄마가 암 투병 중일 때조차
외할머니를 차로 40분거리의 대구까지 보내주는 일조차 거절했다.
그 탓에 엄마와 외할머니는
딸과 엄마로서 마지막 작별조차 하지 못했다.
엄마는 죽음을 앞두고도 어머니를 보지 못했고,
외할머니는 그런 딸을 보내고도 제대로 슬퍼하지 못한 채, 그저 조용히 혼자 울었다.
시간이 흘러, 외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셨다.
그 무렵 섬망 증상이 심해졌고, 나는 서울에서 주말마다 의성에 내려갔다.
외할머니를 혼자 둘 수 없었다.
어느 날, 할머니는 또렷하게 말했다.
“소라가 보고 싶다.”
“동촌석이도 보고 싶다…”
그날 밤, 울리지 않던 엄마의 핸드폰이 1년 반 만에 울렸다.
무작위로 울린 전화가 아니었다.
외할머니의 동서, 동촌석이의 엄마였다.
“형님 소식이 궁금해서… 미야엄마는 아나 싶어서 수첩을 뒤졌는데, 니가 받았네.”
나는 모든 걸 설명했다.
엄마는 세상을 떠났고, 할머니는 곧 떠날 거라고.
그 전화는 끊긴 관계의 실을 다시 잇는 시작이었다.
그날 이후,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던 많은 친척들이 병원에 찾아왔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따뜻한 말과 손길을 남겼다.
그리고 7일 후, 외할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외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들었다.
누구보다 가까웠고,
누구보다 지켜보고 있었고,
누구보다 오래,
할머니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 책임은 내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눈을 떼지 않고
화장로의 불이 꺼질 때까지
모니터를 응시했다.
그토록 따뜻했던 손, 향기, 말투.
모든 것을 가슴에 새기고 싶었다.
그날 이후,
나는 더는 ‘미야’라는 이름을 듣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큰외삼촌의 화살로 연락이 끊긴 친척들이 외할머니의 장례식에 하나 둘씩 찾아오면서 그 품에서 그 이름을 다시 들었다.
그건 단순한 호명이 아니었다.
사랑의 부름이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이름이 다시 내게 왔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됐다.
사랑은,
어떻게든 길을 찾아 돌아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