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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천군작가 Jul 03. 2016

책 사이 핀 꽃

비 나린 다고 슬플까

바람이 불어서 아플까

그 꽃이 백일을 간다 하여

그 향이 백일을 갈까

내 아픔 만지는 것이

너의 손길인 것을


어둠이 나린 다고 혼자일까

새벽이 온다 하여 적막한 것일까

이슬로 영롱하게 피는 꽃

밤이면 여문 몸뚱이로

우리를 보듬어주는 것이

세상에 피어난 人花인 것을


그래

어디에서 피어나더라도

너는 꽃이었다

비에 젖으면 어떤가

바람에 흐느끼면 어떤가

우리가 모두 꽃인 것을.


아침 한편의 글을 보고 한동안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 멍한 느낌이랄까. 단 한 번이라도 나는 누군가에게 꽃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늘 가지며 글을 썼는데... 비 오는 날 창가에 내어 놓았던 화분들을 보며 오늘은 내가 물 안 줘도 되겠네 라는 말을 하고 출근을 했는데 꽃집 앞 나무들의 잎이 오늘따라 푸르다는 생각도 함께 하며 출근을 했는데 하나의 글을 보곤 알 수 없는 먹먹함에 그냥 오전을 보내버렸다. 해마다 꽃은 피는데 그 꽃들이 이는 말들은 매번 다른데 늘 같은 꽃으로 보는 내가 싫어 그때그때 다른 의미를 혹은 다른 이야기라 생각을 하였는데 알고 보니 그 자리에는 그 꽃이 다시 피는 것이지 같은 꽃은 아니었구나 하는 맘으로 늘 꽃을 바라보았는데 아니 그 꽃을 선물하고 싶어서 글로 꽃을 피워 보았는데 누군가에게는 그 글꽃이 향기 나는 꽃이었다는 것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 내 아픔을 어루만져 주던 꽃이 나를 어루만지던 꽃이 누군가에게도 그랬다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루드베키아를 글로 피우려고 고민을 하고 있는데 글을 하나 보고는 단 한 번의 멈춤도 없이 이 글이 나오고 말았다. 어제 본 루드베키아가 나는 이라는 말을 하는 듯해서 어제부터 그 녀석을 떠 올리고 있었는데...

꽃을 피우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는데... 이 글은 너무도 쉬 써지는 것은 마음속에 피는 정이라는 꽃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꽃을 오늘은 책 사이에 곱게 세워 두고 싶다.


花落花開自有時 總賴東君主(화락 화개 자유시 총뢰동군주)
꽃이 철따라 피고 지지만 다 봄의 신이 하는 일.

송나라 관기였던 염예의 복산자라는 한시에 나오는 글귀가 떠 오른다.

해마다 꽃은 피는데 그 꽃이 같을 수는 없고 그 피는 이유가 다 봄을 앞장세운 이의 간절함에서다 라고 생각을 한다. 긴 장마가 지나가면 별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은 꽃댕강도 만나보고, 바람에 솜털 날리듯 하얀 개쉬땅도 만나고, 밥알을 붙여 놓은 듯 아름들이 구슬꽃 박태기꽃과 흰꽃이 더 예쁜 병꽃을 만나러 산을 가 봐야겠다.

그리고 글꽃으로 선물을 해야겠다.

장마가 지나가면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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